[전영기의 과유불급] 트럼프와 이재명, 비슷한 점과 다른 점
  • 전영기 편집인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3.04.07 09:35
  • 호수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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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개 범죄 혐의로 기소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워낙 디테일한 증언과 증거들이 차고 넘쳐 일부라도 유죄 판결이 내려질 것은 확실해 보인다. 죄책감이나 진실의 문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한 삶을 살아온 트럼프로선 이번 재판도 그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뒤집으면 그만인 게임에 불과할 것이다. 정치의 승리로 사법의 패배를 뒤집겠다는 게 그의 전략 아닐까.

삼권분립을 발명한 미국 자유주의에서 정치에 의해 사법이 무력화되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런 상상을 하고 있다. 적어도 그의 상상력에 감염된 묻지마 지지층은 사법 체계를 부정하고 무너트리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다는 자세를 갖고 있다.

이른바 성추문 입막음 의혹으로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기소인부절차 하루 전인 3일(현지 시각) 뉴욕 트럼프타워에 도착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AFP=연합뉴스
이른바 성추문 입막음 의혹으로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기소인부절차 하루 전인 3일(현지 시각) 뉴욕 트럼프타워에 도착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정치의 승리로 사법의 위기를 뒤집겠다는 전략

트럼프 현상에서 1920년대 독일 민주주의의 파멸이 오버랩된다고 하면 너무 과할지 모르겠다. 국가전복 혐의로 피고석에 앉은 히틀러의 선동 연설이 불안과 궁핍 속에서 메시아를 찾던 대중에게 통했다. 히틀러는 순식간에 무조건 충성집단의 교주가 되었다. 그의 법정 선동은 미국 뉴욕타임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로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다. 1년간 형을 살다 나온 히틀러가 10년도 안 돼 바이마르 민주공화국을 붕괴시키고 미치광이 나치 시대를 열었던 건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다시 미국의 현실로 돌아오면 정치적으로 트럼프는 그리 나쁜 상황이 아니다. 그는 뉴욕 맨해튼 지방검찰청과 판사가 내리는 조치들을 “바이든 민주당 정권의 정치탄압” “선거개입”으로 몰아가 짭짤하게 재미를 봤다. 묻지마 지지층의 결집 효과가 나타나 내년에 있을 미국 대선의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가 1위 후보가 되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다른 한편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민주당도 대선에서 트럼프와 재격돌하는 게 싫지 않은 기색이라고 한다. 유죄 판결을 받은, 혹은 그럴 가능성이 있는 트럼프의 재등장은 첫 번째 등판 때보다 적은 표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상식 때문이다. 민주당 지지층은 과거보다 더 똘똘 뭉치고 중도층이 가세해 공화당의 집권이 저지될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에도 지난해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한테 간발의 차이로 패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있다. 이재명 대표는 ①소속 의원들이 취임 1년도 안 된 현직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해도 방치하는 등 사실상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있다는 점 ②대장동·성남FC 등 범죄 혐의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 내용을 판사 앞에서 다투지 않고 법정 밖에서 “정치탄압”으로 대중 선전을 하고 있는 점 ③개딸과 같은 충성집단의 힘으로 당내 도전 세력을 제압하고 압도적 지위를 확대하고 있는 점 ④본인의 사법적 위기를 여론전이나 내년 총선에서의 정치적 승리를 통해 뒤집으려 하는 점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 언행에서 죄책감을 찾아볼 수 없고 진실보다 승리에 몰두하는 모습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측근의 열린 입, 이재명 측근들의 다문 입

뉴욕타임스 4월5일자 기사에 따르면 트럼프의 재판 전술은 공격(attack)과 지연(delay) 두 가지로 요약된다. 공격은 검찰과 판사를 향한 노골적이고 지속적인 비난이다. 상대방을 두렵게 만들고 주도권을 쥐며 지지층의 여론을 일으키기 위한 심리전이라고 한다. 지연은 작은 꼬투리라도 나오면 말이 되든 안 되든 끝까지 물고 늘어져 판결을 늦추는 것이다. 시간을 무한대로 끌다 보면 예기치 않은 상황이 생겨 재판을 유리하게 바꿀 수 있다는 계산법이다. 수십 년간의 소송 체험에서 우러난 트럼프식 재판 전술은 이재명 대표의 행태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 다른 점도 있다. 트럼프는 가장 믿었던 측근의 배신으로 유죄성 입증이 상대적으로 손쉬울 것으로 보이는 반면, 이재명은 2~4명의 측근이 충성스럽게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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