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다고 생각할 정도의 획기적인 저출생 위기극복 정책 내놔야”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3.04.24 11:05
  • 호수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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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 인터뷰
“기본법 뜯어고치는 땜질식 처방으론 안 돼…패러다임 바꿔야 한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한 방이 있어야 한다.”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은 한국의 저출생 위기를 극복하려면 우리 사회 패러다임의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15년간 정부가 28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하고도 문제 해결의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이유는 기존 틀은 그대로 둔 채 부분만 수정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 원장은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은 인구구조 변화 문제에 기업이 힘을 보태야 한다는 취지로 지난해 10월25일 출범한 사단법인이다. 대한민국 1세대 여성 경제학자였고 국내 첫 여성 민간 출신 통계청장을 지내며 ‘최초’라는 무게에 도전해온 이 원장이 이번에는 인구 문제 연구기관의 초대 원장을 맡아 저출생 해결에 뛰어들었다. 4월11일 그를 만나 우리 사회에 닥친 저출생 문제의 진단과 처방을 들었다. 

ⓒ시사저널 박정훈

“기업의 환경이 출산 친화적으로 바뀌어야”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초대 원장을 맡게 된 계기는.

“대학에서 한국경제론을 가르칠 때 항상 ‘저출산 고령화’를 한 섹션으로 다뤘다. 정년퇴임 후 우연히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과 식사를 하게 됐는데, (나에게) 이 자리를 권유했다. 시중은행의 작은 연구소 연구원으로 시작해 한국경제연구원,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 대학 교수, 통계청장 등 여러 직업을 거치며 치열하게 살아와서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기업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김 회장의 말씀에 꽂혔다. 기업이 나선다면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나서서, 내가 가진 인적·사회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할 수 있는 보람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었다.” 

연구원이 출범한 지 반년이 됐다. 지난 6개월의 성과는.

“지난 6개월은 ‘셋업(setup)’에 집중하는 기간이었다. 사단법인은 창립 후 설립 목적에 부합하는 주무관청의 인가를 받아 법인을 설립한다. 인가를 받아 하드웨어를 구축했고, 많은 사람을 만나 연구원의 출범 취지를 설명하고 동참을 구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사단법인 인가를 받았는데, 국회 사무처나 기획재정부 관련 부서에서 많이 노력해준 것을 보면 그만큼 저출생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해 한국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1명 미만을 기록하면서 ‘국가위기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어떻게 보는가.

“유목민에서 농업사회로, 다시 산업화로 가면서 인구구조 변화를 겪는다. 다른 나라들도 산업화 이후 인구가 줄어들었지만 대부분 합계출산율 1.3명에서 위기를 막아 턴어라운드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3명 밑으로 계속 내려가고 있고, 이대로 가면 변곡점이 없다. 턴어라운드가 안 되는 상황이다. 생산연령 기준으로 10년 후에는 부산 정도의 인구가 없어지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다.”

한국의 인구 감소가 이례적인 속도를 보이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보나.

“우리나라와 비슷한 현상을 겪는 동아시아 국가들과 공통점을 찾자면 급격한 산업화와 유교문화다. 결혼을 해야만 아이를 낳는 문화를 가진 나라들이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 0.78명은 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자녀 수이고, 유배우자 출산율은 1명을 넘는다. 결혼을 해야만 아이를 낳는 문화가 있어 합계출산율과 유배우자 출산율 차이가 큰 것이다. 과거 서구 국가들도 우리나라와 비슷했지만 현재 프랑스는 전체 출산의 60%가 비혼 출산이고, 가톨릭 국가인 칠레도 비혼 출산율이 전 세계 2위다. 이런 부분에 대한 인식도 깨져야 할 부분 중 하나다.”

저출생 문제가 이토록 심각해진 원인과 관련해 경험적으로 느낀 바가 있다면.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 육아를 하면서 직장생활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점을 많이 느낀다. 육아의 상당 부분이 엄마 몫인데, 이 몫을 덜어주지 않으면 20·30대 가임기 여성들이 애를 낳지 않는다. 소위 ‘독박육아’를 한번 겪어보면 애 낳으라는 말을 못 할 것이다. 한국만 유난히 M자 커브(여성 고용률이 특정한 연령대 구간에서 크게 떨어지는 것)가 개선이 안 된다. 다른 나라들도 M자 커브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둥그런 역U자 커브로 바뀌어 나가는데, 우리나라는 결혼을 늦추면서 M자 커브가 옆으로 이동하기만 한다. 그만큼 육아 환경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미다.”

예산 280조원을 투입해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기업의 동참을 끌어내 이루고자 하는 것은.

“출산은 개인이 사회·경제적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온 의사결정이다. 그 의사결정의 결과가 국가 소멸 위기까지 불러온 상황에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 정치권은 남녀 갈등, 세대 갈등, 소득계층 갈등, 중소기업과 대기업 갈등을 만들고, 인구 문제마저 불평등 문제로 만들어버렸다. 국회에서 인구위기특별위원회도 만들었지만 모여서 사진 찍고 캠페인하고 끝난다. 진정성이 없다. 가임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하루종일 몸담고 있는 기업의 환경이 출산 친화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기업이 어떤 부분을 바꿔야 할지 아카이브(기록 보관·검색 파일)를 만든 후 정책을 건의하고, 주요 의제로 만들어 국민의 이해 증진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효과 있는 제도 마련을 위해 어떤 기업이 어떤 출산 친화제도를 갖고 있는지 100대 기업에 대한 실태조사부터 할 계획이다.”

 

“국회는 저출생 문제를 악화시킨 장본인이다”

장기적으로는 노동 개혁과 교육 개혁 등 우리 사회 시스템의 전반적인 변화를 통한 인구정책의 ‘리셋’을 주장했는데, 무엇인가. 

“철학을 바꿔야지, 옛날에 만든 기본법을 조금씩 뜯어고쳐 봐야 소용없다. 현 정부가 저출생 문제와 관련한 큰 흐름을 바꿔야 한다. 일하는 여성 입장에서 선택적 근로시간을 늘리고, 법적으로 육아휴직을 2년 보장해 주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정부가 자녀가 18세 될 때까지 100만원씩 주자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가능하다고 본다. 노동력 확보를 위한 이민도 과감히 받아들여야 한다. 누가 봐도 미쳤다고 생각하는 아주 획기적인 정책을 내놔야 한다.” 

대통령 직속기관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가 내놓은 위기 극복을 위한 과제는 어떻게 평가하나.

“실망했다. 방향은 옳으나 한 방이 없었다. 도망갈 구멍으로 2차, 3차 안이 나올 거라고 했다. 여론 눈치 봐가면서 하겠다는 거다. 그러나 국가 소멸론이 나올 정도의 위기 상황이면 강력하게, 획기적으로, 지속성 있게 가야 한다. 눈치 봐선 성공할 수 없다. 장관급이 다 모이고, 민간위원만 10명 넘게 앉아있었는데, 저고위 발표시간이 고작 7분이었다. 제대로 토의조차 안 했을 것이고, 전시성 행정에 그쳤다고 본다.” 

정부와 여야가 내놓는 방안이 현실성이 없거나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문제 접근 방법이나 해결책 제시에서 달라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국회는 저출생 문제를 악화시킨 장본인이다. 위원회 만들어서 하는 보여주기식 정치, 남의 정책 헐뜯는 행위는 그만해야 한다. 그러는 동안 저출산 골든타임을 놓쳤다. 지자체별로 첫째 낳으면 얼마, 둘째 낳으면 얼마 식으로 나눠주기 경쟁하는 것이야말로 ‘땅 따먹기’다.”

한국에 적용할 수 있는 해외 사례가 있다면.

“1934년 스웨덴에 인구 위기가 왔을 때 스웨덴의 경제학자인 군나르 뮈르달과 사회학자 알바 뮈르달 부부가 내놓은 책 《인구문제의 위기》를 참조할 수 있다. 이 부부는 당시 두 세대 이후 스웨덴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 대가족이 수행하던 역할을 사회 전체가 맡고, 기혼여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사회가 지원하고, 선별적 정책보다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정책을 펴야 한다는 등의 조언을 했다. 이 진단과 처방을 계기로 스웨덴은 초당파 국가연구위원회가 마련한 인구정책 백년대계를 시행해 위기 극복에 성공했다.” 

저출생 고령화 문제와 관련해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구 감소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는 부류도 있다. 그러나 부양비율이 높아지면 노령자에 대한 증오가 증폭되면서 사회 갈등이 커진다. 행복한 사회가 되려면 적정한 부양비율이 유지돼야 한다. 아이 출생을 위해 들어가는 세금에 대해 정부가 돈을 쓴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라는 인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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