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귀하신 자제분’에서 ‘사랑하는 자제분’으로 톤다운 된 김정은 딸
  • 이영종 뉴스핌 통일전문기자(북한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4.29 12:05
  • 호수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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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김주애 띄우기’ 수위 조절 나서…엘리트·주민 반발 의식한 듯
“잘 먹고 잘사는 귀족 얼굴, 밸이 난다” 내부 불만 목소리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를 공개 석상에 등장시킨 지 6개월째에 접어들었다. 4대 세습을 위한 탐색전이란 해석과 핵·미사일 도발자로서의 이미지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활용이란 관측까지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 김정은과 북한 권력층의 의중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모양새다.

하지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현장 참관이나 기념행사, 착공식 등에 거의 빠짐없이 대동하면서 공개 횟수가 10차례를 넘겼다는 점에서 단순한 대동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는 분석에도 힘이 실린다.

ⓒ조선중앙통신 연합
김주애가 4월18일 아버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의 국가우주개발국 현지지도에 동행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

“딸 등장, 여론 탐색용 이상의 활용 가능성도”

당초 지난해 11월18일 평양 순안공항의 ICBM 화성-17형 시험발사에 첫 등장했을 때는 김정은의 호전적 이미지를 상쇄시키려는 ‘신 스틸러(scene stealer)’ 역할을 맡긴 것이란 견해가 많았다. 일각에선 ‘딸 바보’ 김정은의 개인 행보일 뿐이란 진단까지 나왔다. 

이런 관측에 무게가 실린 건 후계구도를 겨냥한 것이라기보다 신중한 관망을 주문한 정부 대북 부처와 정보 당국의 판단이 한몫했다. 국가정보원이 같은 달 22일 국회 정보위에서 “둘째딸 김주애로 판단한다”면서도 후계구도와의 관련성 등에 유보적 입장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이후의 김주애 관련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양상을 띠면서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후계구도와의 관련성을 완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그만큼 김정은과 북한의 핵심층이 김주애에게 공을 들이고, 관련 선전·선동 동향을 각별하게 챙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4월17일 북한 관영매체가 보도한 김주애의 내각-국방성 간 체육경기 관람까지 모두 11차례의 공개활동 동선을 보면 미사일 발사나 군사훈련 참관 등 군 관련 동정이 8차례로 가장 많다. 그렇지만 2월과 4월 체육경기 관람과 2월 서포지구 새거리 건설 착공식 참관 등 관여의 폭을 넓히고 있는 모습도 드러난다.

특히 2월8일 북한군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김주애가 타는 백마가 등장하고, 이를 관영매체가 “사랑하는 자제분께서 제일로 사랑하시는 충마(忠馬)”라고 알린 건 이른바 ‘백두혈통’을 부각시킨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서포지구 착공식에 첫 삽을 뜨는 김주애에게 금장이 새겨진 삽을 준비해준 것도 북한이 뭔가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한 대북 정보 관계자는 “김정은이 딸 주애를 반년 가까이 수행시킨다는 건 여론 탐색용 기구인 ‘발롱데세(ballon d’essai)에 그치지 않고 더 이상의 활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향후 움직임에 따라 ‘후계수업’ 수준의 공개 석상 동반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열어놓고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전히 신중론에 비중을 둔다. 국정원은 지난 3월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김정은이 아직 젊어 후계를 조기에 구상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도 같은 달 언론 인터뷰에서 “김정은의 나이가 지금 40 정도 됐다”며 시기상조론을 제기했다.

그렇지만 김정은이 우리 당국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건강상 문제나 모종의 사유로 인해 후계를 챙겨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을 수도 있다. 김정은이 부인 리설주와 사이에 10세 안팎의 1남2녀를 두고 있다는 게 한미 정보 당국의 첩보지만 아들이 없거나 건강상 문제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의 박사는 “국정원이 과거 김정은의 이름을 ‘정운’으로 잘못 알고 있을 정도로 북한 권력 핵심부의 정보는 파악하기 쉽지 않다”고 귀띔했다.

김주애 등장 이후 북한 당국이 엘리트와 주민은 물론 한국 및 국제사회의 여론을 살피면서 민감하게 대응하는 대목도 주목된다. 김주애를 치켜세우는 호칭이나 수식 표현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조선중앙통신 연합
2월8일 건군절 열병식 행사에 참석한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

옷차림 바뀐 건 외부 여론에 민감하다는 방증

지난해 11월 첫 등장 때 ‘사랑하는 자제분’으로 지칭한 관영 선전매체들은 이후 △‘존귀하신 자제분’(11월26일 군 지휘관 기념촬영) △‘존경하는 자제분’(2월7일 군 창건 75주년 연회)으로 표현 수위를 높여 갔지만, 그 후 △군 창건 75주 열병식(2월8일) △내각-국방성 체육경기(2월17일) △서포지구 새거리 착공행사(2월25일) 등에서는 ‘사랑하는 자제분’으로 다시 수위를 조절했다.

이는 ‘존귀’ 또는 ‘존경’이란 표현이 10세 정도로 추정되는 김주애에게 지나치다는 지적이나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 3월 이후에는 아예 김주애에 대한 관영매체 보도를 하지 않고 사진만 공개하고 있다. 다만 한때 중심에서 밀려나는 듯하던 김주애를 4월 들어 다시 김정은 옆자리에 앉혀 챙기는 모습이 확인된다.

명품 브랜드인 디올의 키즈 재킷 착용 등으로 비판론이 제기되자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 등장하는 스타일의 블라우스 형태로 바꾼 것도 북한이 외부 여론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올 초부터 ‘아사자 속출’ 보도가 이어지고 대북 제재와 코로나19로 주민들이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김정은이 자신의 딸만 챙기고 ‘4대 세습’에 골몰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데 따른 비판을 의식한 것이다.

실제 대북 매체들은 북한 내부의 볼멘소리를 속속 전하고 있다. 지난 2월말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평안북도 주민이 식량 부족을 호소하며 “(김주애가) 잘 먹고 잘사는 귀족의 얼굴에다 화려한 옷차림이 텔레비전으로 자주 방영되니 밸이(화가) 나서 참기 힘들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김주애의 달덩이같이 살찐 얼굴에 비난이 쏠린다는 얘기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후계 문제는 최고지도자인 수령의 의중이 절대적이다. 김정은이 딸 김주애를 어떤 이유에서 등장시켰고, 왜 수위 조절을 하고 있는지는 가족 내부에서도 간파하기 어려울 수 있다. 김정은이 결심한다면 후계자의 나이가 어리다거나 여자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통념도 단박에 무너질 수 있다. 

한때 후계 1순위이던 이복형 김정남(2017년 2월 사망)을 따돌리고, 친형 김정철마저 누른 후 3대 세습 후계자 지위를 거머쥔 ‘백두집 막내아들’ 김정은의 승부수가 무엇일지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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