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사랑을 표현한다" 한 문장으로 '로코 웹툰' 만든 AI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3.05.16 10:2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콘티 제작 AI 프로그램 '투툰'이 만든 첫 번째 단편 《행운량 보존의 법칙》  최근 공개
오는 10월 상용화 예정..."텍스트 분석 AI 기술의 확장 가능성 증명해 보이고 싶다”

남성과 여성이 손을 마주잡고 서로를 애틋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 뒤에는 회전 관람차가 돌아가고 있다. 이 그림은 웹툰에서 ‘썸 타는 사이’를 표현한 한 장면이다. 그런데 웹툰의 작가는 해당 장면을 그린 적이 없다. 작가가 한 건 붉은색으로 배경을 색칠하고 “둘은 썸 타는 관계가 되었다”란 대사를 삽입한 게 전부다. 이 장면은 콘티 제작 인공지능(AI) 프로그램 ‘투툰(TooToon)’이 그린 것이다. 작가는 해당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투툰에 ‘남녀가 사랑을 표현한다’는 열 글자만 입력했다고 한다.

최근 투툰으로 제작한 약 100컷짜리 로맨스코미디 단편 웹툰 《행운량 보존의 법칙》이 공개됐다. 국내 스타트업 오노마에이아이(Onoma AI)가 개발한 투툰은 텍스트를 이미지로 변환해주는 AI 오픈소스 모델 스테이블 디퓨전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현재 스테이블 디퓨전을 활용한 이미지 생성 방법은 상당히 많이 공개돼 있다. 하지만 이를 토대로 한 콘티 제작 프로그램은 전 세계에서 투툰이 유일하다.

AI 웹툰 제작 프로그램 '투툰'으로 만든 단편 웹툰 《행운량 보존의 법칙》의 일부 장면. "남녀가 사랑을 표현한다"란 문장을 입력하자 투툰이 위 그림과 같은 콘티를 만들어냈고, 작가가 이를 웹툰의 한 장면으로 이용했다. ⓒ 오노마에이아이 제공
AI 웹툰 제작 프로그램 '투툰'으로 만든 단편 웹툰 《행운량 보존의 법칙》의 일부 장면. "남녀가 사랑을 표현한다"란 문장을 입력하자 투툰이 콘티(위)를 만들어냈고, 작가가 이를 웹툰의 한 장면(아래)으로 이용했다. ⓒ 오노마에이아이 제공

 

AI, 2주 만에 웹툰 한 편 뚝딱 만들어내 

투툰으로 행운량 보존의 법칙을 만든 이종환 작가(31)는 “단순 반복적인 웹툰 제작 공정을 AI가 효과적으로 대행해준다는 얘기에 흥미가 생겨 작업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작가는 “생각하는 컷을 30자 이내의 문장으로 풀어쓴 뒤 투툰에 입력해 원하는 콘티를 골라 썼다”며 “원래 생각하던 시나리오를 투툰이 그려 주니 최종 작품을 만들기까지 약 2주밖에 안 걸렸다”고 했다.

채색의 경우 이 작가가 직접 했다고 한다. 투툰에 채색까지 맡기면 너무 ‘고퀄리티’로 나와 귀엽고 가벼운 느낌을 구현하기 힘들었다는 이유에서다. 이 작가는 “투툰을 직접 쓰다 보니 AI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졌다”며 “AI가 직업을 창출하는 훌륭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추후 단편작품을 만들 때 또 투툰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송민 오노마에이아이 대표는 “투툰은 스토리텔링 능력에 비해 그림 실력이 다소 부족한 작가들에게 웹툰의 진입장벽과 비용 부담을 크게 낮춰 주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프리랜서 고용 플랫폼 등에 따르면, 콘티에 대해 외주를 맡길 경우 인물만 그리는 데 한 컷당 비용은 약 1만~3만원이다. 배경 묘사와 채색까지 맡기면 5만원이 훌쩍 넘기도 한다. 연출에 힘을 실은 장편 웹툰 한 편은 평균 100컷 안팎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콘티 제작에만 수백만원이 들어가는 셈이다. 반면 투툰을 쓰면 비용 측면에서 전기료 정도만 걱정하면 된다.

송민 오노마에이아이 대표가 5월9일 오후 서울 신촌 사무실에서 AI기술을 이용한 웹툰 제작 프로그램 '투툰(TooToon)'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송민 오노마에이아이 대표가 5월9일 오후 서울 신촌 사무실에서 투툰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기자가 투툰에 "사랑하는 여자와 남자가 노을지는 해변가를 거닐고 있다"란 문장을 입력하자 약 30초만에 생성된 6가지 콘티 중 하나. ⓒ 오노마에이아이 제공
기자가 투툰에 "사랑하는 여자와 남자가 노을지는 해변가를 거닐고 있다"란 문장을 입력하자 약 30초만에 생성된 6가지 콘티 중 하나. ⓒ 오노마에이아이 제공

 

투툰은 단순히 스테이블 디퓨전의 인터페이스만 바꿔 내놓은 프로그램이 아니다. 접근성을 대폭 개선한 것은 물론이고 채색과 컷의 각도·표정·포즈 등을 원하는 대로 구현할 수 있게 만들었다. 웹툰 특성화 프로그램답게 말풍선을 넣거나 원하는 그림체를 구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송 대표는 “특정 작가의 스타일이 드러난 그림 10장만 투툰에 입력하면 자동 학습을 통해 해당 스타일을 재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웹툰 진입장벽 낮추고 근로환경 개선할 것으로 기대

송 대표는 “투툰이 웹툰 산업의 근로 환경 개선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말도 했다. 업계에 따르면 웹툰의 뼈대인 콘티가 작품 제작 공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 이상이다. 그래서 콘티만 전문으로 그리는 작가도 있는데, 그 수로 따지면 국내 전체 작가 중 10% 미만에 불과하다고 한다. 2020년 국내 웹툰 시장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섰는데 콘티 담당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현업 웹툰 작가들로 구성된 사단법인 웹툰협회는 “살인적인 고강도 업무 환경”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송 대표는 “웹툰 시장에서 최소 콘티라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았다”고 했다.

송 대표는 연세대 인공지능학과 교수를 겸직하고 있다. 텍스트 분석 전문가인 그는 지난해 10월 이미 글을 이모티콘으로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을 선보인 바 있다. 송 대표는 “투툰을 통해 텍스트 분석 AI 기술의 확장 가능성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투툰의 상용화 시점은 오는 10월 말로 예정돼 있다. 향후 여러 전문학교와 업무협약을 맺고 예비 웹툰 작가들이 투툰을 써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계획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