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인터뷰] “3개월간 한·미·일 연쇄 정상회담, 3국 현대 외교사에서 전례 없던 일”
  • 전영기 편집인·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9 07:35
  • 호수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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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워싱턴 선언’은 韓美의 최대공약수”
“尹, ‘외교의 부활’에 자만감·자족감 금물…치열한 토론 ‘일상화’해야”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지금의 포스트 탈냉전 시대를 수년 동안 수십 년간 나타날 위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시기라고 짚으면서 미국과의 공조를 강화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좌표에 대해 “지각 대변동과 같은 최근 국제정세의 본질을 냉철하게 잘 분석한 결과”고 평가했다. 윤 전 장관은 5월25일 수원시 광교 푸른숲도서관에서 진행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최근의 윤 대통령이 펼친 릴레이 외교에 대한 평가와 의미, 남은 과제 등에 대한 생각과 소신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윤병세 전 장관은 1981년 이후 대한민국 최장수 외교부 장관이다. 박근혜 정부 전체 임기인 4년 반을 꽉 채웠다. 박근혜 당선인 인수위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의 밑그림을 그렸고, 정부 출범 이후엔 대외 정책의 틀을 짜고 집행했다. 그는 4년 반 임기 동안 가장 인상적이었던 해외 지도자로 소리 없이 강한 리더십을 선보인 메르켈 전 독일 총리를 꼽았다. 장관 재임 중 쿠바와의 관계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도 밝혔다. 박근혜 정부 임기 중 고난도 외교가 펼쳐졌고 어떤 성과가 이뤄졌는지 전반적으로 평가받을 시기가 올 것이라고도 했다. 

윤병세 전 외교부장관 ⓒ시사저널 이종현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질서와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 회장은 역사를 보면 수십 년이 지나도 특별한 변화가 없는 시대가 있는 반면, 수년 동안에 수십 년간 나타날 위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시기가 있는데 바로 지금 전개되는 포스트 탈냉전 시대가 후자에 해당한다고 했다. 특히 향후 10년간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도 했다. 그 이유는 미·중 전략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지정학적·지경학적 도전뿐 아니라 기후변화, 전염병, 핵 사용 위협 등 글로벌 거버넌스의 약화에서 비롯된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좌표와 방향을 어떻게 평가하나.

“윤석열 정부가 미국과 중국의 관계,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포함한 지역 및 글로벌 의제에 관해 전략적으로 미국과의 공조를 더 강화하는 명료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지각 대변동과 같은 최근 국제정세의 본질을 냉철하게 잘 분석한 데 따른 것이라고 본다. 미국의 동맹과 우방국들을 포함한 국제사회 핵심 국가들의 행보 및 새 전략 개념과도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최근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는 릴레이 외교를 펼쳤다.

“지난 3월에서 5월까지 전개된 한·미·일 정상 간 연쇄 상호방문과 정상회담은 20세기 후반 이후 한·미·일 3국 현대 외교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들다. 이 추세가 지속되면 우리의 중요한 정책 이니셔티브가 어떻게 상호 신뢰를 높여서 선순환 외교를 추동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어떻게 지켜봤나.

“윤 대통령이 주도한 강제징용 해법이 국내에선 아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수교 이후 최악이었던 한일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해 전격적으로 방일이 성사됐다. 한일 관계 정상화를 인도·태평양(인태) 전략의 핵심으로 추진했던 바이든 행정부는 국빈방문이라는 형식과 ‘워싱턴 선언’이라는 핵협의 그룹 창설 합의로 화답했다. 이는 평소 신중한 기시다 총리로 하여금 조기 방한을 성사시켜 다시 윤 대통령의 방일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및 한·미·일 정상회담 개최와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공동 참배로 연결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워싱턴 3국 정상회담 조기 개최도 발표했다. 이런 추세라면 멀지 않은 장래에 3국 정상이 서로의 ‘퍼스트 네임(first name·이름)’을 부르는 날이 올 것이다.”

어떤 의미가 있었다고 보시는지.

“윤석열 정부 들어와 한미 동맹 복원, 한일 관계 정상화 그리고 한·미·일 3국 협력 강화라는 ‘3점 세트 전략’이 취임 후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본궤도에 올라 상승작용을 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이를 기반으로 더 큰 차원에서 글로벌 중추국가 이니셔티브와 한국형 인태 전략이 탄력을 받을 수 있는 핵심 인프라가 구축되고 있다는 의미도 있다.”

‘워싱턴 선언’의 의미와 한계도 짚어본다면. 

“워싱턴 선언은 형식과 내용, 여타 확장억제 협의체 선례들에 비춰볼 때 현시점에서 핵 억제(북한)와 핵 보장(한국)을 위해 한미 양국이 합의할 수 있는 최대공약수를 도출한 것으로 본다. 양자 차원의 별도 선언을 통해 ‘핵협의 그룹(NCG)’을 창설하고 미국 핵 자산과 전략에 대한 정보 공유, 공동 기획과 공동 연습 등 ‘협력적인 정책 결정’을 명시한 것도 그간 미국의 확장억제 제공 정책과 관행에 비춰보면 크게 진전된 내용이다. 한국에 전술핵이 배치되어 있지 않더라도 미국은 다양한 핵 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NCG 활동이 강화되면 다수 국가가 참가하는 나토의 핵기획 그룹(NPG)보다 더 효율적인 ‘한미 동맹 맞춤형’ 핵 협의 장치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과제는 무엇으로 보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NCG가 양국 최고지도부를 포함한 핵 정책 결정체계에서 핵심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미 동맹의 중추인 한미연합사령부가 국방장관 간 합의로, 차관급 확장억제 전략협의체(EDSCG)가 2+2 외교·국방장관 합의로 창설됐는데, 정상 간 선언으로 창설된 NCG는 차관보급으로 시작하더라도 정상들과 최고지휘부, 전략사령부, 한미연합사 등 핵심 외교·안보 시스템과 통합적으로 연계돼 일사불란하게 가동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김정은의 핵 단추와 하부 위임체계까지 염두에 두고 최고위급을 포함한 핵 사용 모의연습까지 발전될 필요가 있다.”

ⓒAP 연합
2016년 8월24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양자회담에 앞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기시다 외무상의 환영을 받고 있다. ⓒAP 연합

“워싱턴 3자 회담은 협력 정례화 의미”

한·미·일 워싱턴 3자회담이 곧 열릴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워싱턴 3국 정상회담 조기 개최를 발표했다는 사실은 여러 함의를 내포한다. 무엇보다 워싱턴 3국 정상회담은 모처럼 정상화되고 있는 3국 협력을 정상 차원에서 정례화, 상시화한다는 의미가 있다. 아울러 필요하면 제도화해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개국 안보협의체) 정상회의 체제와 함께 인태 지역에서 미국의 ‘통합적 억제 전략’을 이끄는 쌍두마차로 삼으려는 큰 그림의 일환으로도 보인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보나.

“그간 미·일 동맹은 인태 평화와 안전의 주춧돌, 한미 동맹은 핵심축으로 불렸다. 미국은 쌍두마차의 한 축인 한·미·일 3국 협력에서 가장 약한 고리였던 한일 관계가 회복되고 있는 모멘텀을 가속화하려고 할 거다. ‘행동하는 한미 동맹’이 ‘행동하는 3국 협력’으로 난이도가 적은 분야부터 점차 확장되어 나갈 것이다. 나아갈 방향과 로드맵은 작년 11월 발표된 ‘인도·태평양 한·미·일 3국 파트너십에 대한 프놈펜 성명’에 잘 나와 있다.”

우리가 얻는 만큼 해야 할 역할도 늘고 비용도 증가할 텐데.

“앞으로 3국 협력의 폭과 깊이가 확장되면 될수록 당연히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지역 및 글로벌 역할과 책임도 커질 것이다. 전후 미국의 ‘핵심축과 바퀴살(Hub and Spokes)’ 전략에서 종속변수였던 바퀴살들(한국, 일본, 호주 등) 간 연대 체제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는 의미다. 당연히 기회와 함께 부담과 도전도 늘 수밖에 없다. 우리로선 북핵 문제 등 한반도 평화안보와 경제안보 분야에서 안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확대된 보험에 드는 것이지만, 미·중 경쟁 심화 속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원칙과 정교함을 동시에 견지해야 하는 고난도 외교를 지혜롭게 펼쳐야 한다. 미국에 대해서도 동맹의 역할 증대가 어느 한쪽의 과도한 희생을 초래하지 않고 윈-윈 할 수 있도록 호혜성을 중시하고, 자국 우선주의를 경계하며 동맹에 대한 외부 압박에는 공동 대응하도록 조율해야 한다.”

 

“한중 공통 이해와 협력 분야 넓히면서 위기 예방 하는 노력 필요”

일각에서는 한·미·일 공조가 굳건해진 만큼 북·중·러의 견제와 도발이 강해질 것이라는 반작용을 우려한다. 동시에 ‘미국 일변도’로 읽히는 스탠스가 우리의 입지를 좁게 한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이런 논의를 접근할 때는 문제 발생의 원인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한·미·일 공조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NPT(핵확산금지조약) 의무와 중·러도 동의한 안보리 결의 의무 불이행 등 규범 위반과 실존적 위협에 따른 대응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양비론적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은 본말을 전도하는 셈이 된다. 또 국제사회의 중견국으로 성장한 한국 입장에서 유엔헌장을 위반하는 방식으로 현상 변경을 시도하는 세력들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하다.”

자세히 설명해 달라.

“우리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유엔총회 결의안에 기권하는 ‘회색지대 국가’에 가담할 수는 없다. 미·중 경쟁은 상당히 장기간 지속될 것이고 현재로선 협력보다 경쟁과 대립 요소가 더 많아 유사 입장국 간 연대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미국 일변도라고 말하기보다는 ‘규범 중시 연대 가담’이라고 하는 게 타당하다. 이 결과 중·러가 북한을 전략자산으로 활용하고 북한이 중·러 카드를 쓰게 된 것은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이다.”

중국의 반발이 거세지면 경제·안보 리스크 모두 급증할 수 있을 텐데.

“미·중 양국 모두 대결을 피하고, 전략경쟁을 책임 있게 관리하자는 데 어느 정도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전면적 관계 단절(decoupling)’이 아닌 ‘외교적·경제적 디리스킹(de-risking·위험 감축)’인 셈이다. 우리도 호혜와 상호존중 원칙 아래 한중 관계와 한·중·일 관계를 도모한다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한중 공통 이해와 협력 분야를 넓히면서 위기를 예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어떤 태도와 전략을 취하는 게 국익에 최선이라고 보나.

“우리 입장에선 러시아의 선제 핵 사용 위협이나 중국의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 불(不)배제 입장이 북한의 핵 선제 공격 정책과 핵무장 및 핵 위협을 정당화해 주고 오히려 부추기는 상황이 되는 것이 우려된다. 북한 입장에선 이러한 중·러의 위협이 현실화될 경우 자신의 목적을 위해 또는 중·러와의 공조 차원에서 대남 도발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는 그 자체로서 한미 동맹 및 우방국들을 포함한 국제 연대를 유지하면서 윤 대통령이 밝힌 우리의 지원 조건과 범위 및 수준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아울러 북한이 이런 상황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북·중·러 간 전략적 공조를 차단하기 위한 예방적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윤 대통령에게 딱 하나만 조언한다면.

“윤석열 정부 들어와 ‘외교의 부활’이라고 부를 정도로 외교가 다시 활성화되고 있다. 그간의 성과에 대한 자신감으로 외교 추진에 탄력이 붙기 시작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시점에 자만감, 자족감이 생기기 쉽고 그렇게 되는 순간 위기가 곧 오고 그간의 성과를 뒤덮어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정상외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데 복합위기 상황에선 통합적 시스템적 대응과 위기 관리가 중요하므로 주요 안건은 반드시 유관부서 장관이나 외교안보팀으로부터 공동으로 대면 보고를 받고 치열한 토론을 일상화했으면 한다. 그렇게 되면 어느 국제 외교무대에 가든 늘 준비된 지도자로서 주도할 수 있다. 대통령 지시로 움직이는 톱다운 방식은 예방외교와 위기 관리에 취약하다. 망원경과 현미경을 같이 활용하면서 대전략과 함께 악마라고 불리는 세부사항을 같이 들여다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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