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근사(近思) 대 원려(遠慮)
  •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oxen7351@naver.com)
  • 승인 2023.06.02 17:05
  • 호수 175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논어』 자장(子張)편은 공자가 세상을 떠난 이후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 중요성이 다른 편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을 받지만 꼼꼼히 읽어보면 같은 공자의 가르침이 제자들 개성에 따라 어떻게 달리 이해되었는지를 살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중 자하(子夏)와 자장(子張) 간 대화 하나를 살펴보자. 그에 앞서 이 두 사람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갖추는 것이 그 대화를 제대로 음미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가 종종 사용하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도 이 두 사람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논어』 선진(先進)편에서 자공(子貢)이라는 제자가 이 두 사람을 지칭하며 “누가 더 뛰어납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자장은 지나치고[過] 자하는 못 미친다[不及]”고 답했다. 이에 자공이 “그러면 자장이 더 낫다는 말씀이십니까?”라고 물었고 이에 공자는 둘 다 적중함[中]을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지나침은 못 미침과 같다[過猶不及]”고 말했다.

하지만 『논어』 전반을 읽어보면 역시 자장이 자하보다는 앞서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지금 살펴볼 자장편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임을 보게 된다.

자하의 제자가 자장에게 사귐[交]에 대해 묻자 자장은 대답에 앞서 이렇게 묻는다.

“자하는 뭐라고 하던가?”

이에 그 제자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자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귈 만한 자는 그렇게 하고 사귈 만하지 못한 자는 물리치라고 하셨습니다.” 얼핏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자장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스승님께) 들은 바와는 다르다. 군자는 뛰어난 이를 높이고 뭇사람들을 품어주며 좋은 사람은 아름답게 여기고 능하지 못한 사람은 불쌍히 여기라고 하셨다. 내가 크게 뛰어나다면 다른 사람에 대해 포용하지 못할 바가 무엇인가? 내가 뛰어나지 못하다면 다른 사람들이 장차 나를 물리칠 것인데 어찌 이에 내가 다른 사람을 물리칠 수 있겠는가?”

실제로 공자는 이 문제와 관련해 학이(學而)편에서 “널리 무리를 사랑하되 그중에서 어진 사람을 제 몸처럼 여기라[汎愛衆而親仁]”고 말한 바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누가 보아도 자장이 자하보다 윗길임을 알 수 있다.

사귐과 관련한 이 두 시각은 고스란히 국가 간 사귐에도 적용된다. 먼저 우리 스스로 뛰어나야 한다. 그 뛰어남의 척도는 다름 아닌 부국강병이다. 스스로 부국강병을 이루지 못하면 주변국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자하처럼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 두게 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걸핏하면 제기되는 반미·친미, 반일·친일 논란이 그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정치권의 586세대가 조선시대 사림의 행태와 유사함을 지적하는 책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유성운 지음 『사림, 조선의 586』(이다미디어)이 대표적이다. 특이하게도 주자학의 원조인 주희는 하고많은 공자 제자 중에서 자하를 높이 평가했다. 그래서 자기 책 제목도 『근사록(近思錄)』이라고 이름 지었다. 근사(近思)란 말도 자장편에 나오는 자하의 얘기다.

“널리 배우고[博學] 뜻을 도탑게 하며[篤志] 절실하게 묻고[切問] 가까운 자신부터 생각한다면[近思] 어짊은 그 안에 있다.”

근사(近思)해서일까? 주희에게는 원려(遠慮)가 없다. 오늘날 정치권 586세대가 보여주는 행태 그대로다. 당장의 정치적 이해만 생각한다. 말 그대로 근사(近思)라 하겠다. 이제라도 자장, 아니 공자 생각으로 돌아가 원려(遠慮), 즉 우리 스스로를 강하고 부유하게 하는 일에 힘을 쏟을 때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br>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