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상속세에 쑥대밭 된 재계…넥슨발(發) 과세 개편론 급부상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0 07:35
  • 호수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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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 거액 상속세 물납으로 기재부가 2대 주주 등극해 뒷말
재계, 세계 최고 수준 상속세, 가업 승계·경영권 위협 등 하소연 
“다른 OECD 국가들처럼 과세 제도 현실적으로 손봐야”

최근 기획재정부가 게임 업체 넥슨의 2대 주주가 되면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별세한 고(故) 김정주 넥슨 창업자 유가족이 수조원대에 달하는 상속세를 NXC 주식으로 납부(물납)하면서다. 넥슨의 지배구조는 NXC→넥슨재팬→넥슨코리아로 연결돼 있다. 비상장 지주회사인 NXC가 넥슨재팬 지분 47.15%를, 넥슨재팬이 비상장기업인 넥슨코리아 지분 100%를 보유하는 형태다. 

NXC는 김정주 회장(67.49%)과 부인 유정현 이사(29.43%) 등이 사실상 100%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 김 창업주 타계 후 유 이사는 4.57%의 지분을 상속받아 지분율 34%의 최대주주가 됐다. 두 자녀 역시 각각 30.78%의 지분을 물려받아 NXC 지분을 31.46%로 늘렸다. 하지만 막대한 상속세가 기다리고 있었다. 유족들은 기재부에 NXC 지분 29.3%를 물납했다. 이렇게 정부는 국내 최대 게임 업체 넥슨그룹 지주사의 2대 주주에 올랐다. 

ⓒ일러스트 김세중
ⓒ일러스트 김세중

상속세 낼 돈 없어 주식으로 물납 

유족들이 NXC 주식 물납으로 상속세를 납부한 이유는 김 창업주가 남긴 자산 중 NXC 주식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김 회장 가족들이 낸 상속세 규모는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5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주주총회 특별결의사항 요건인 3분의 2 지분을 지키고, 나머지 지분을 모두 물납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고액의 상속세로부터 기업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마지노선을 택한 것이다. 넥슨 안팎에서는 “김 창업주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유족이 상속세를 낼 현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던 만큼 NXC 주식을 물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기업들은 현재 막대한 상속세를 물납으로 해결하고 있다. 물납은 상속인이 일정 요건에 따라 현금 대신 유가증권이나 부동산, 미술품 등으로 상속세를 납부하는 절차다. 지난해 국세청에 따르면 2021년 상속세 물납 규모는 5320억원으로, 전년(846억원)에 비해 무려 4456억원이나 증가했다. 주식이 4103억원으로 물납 전체의 77%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난다. 물납된 주식은 기획재정부에 귀속되며, 매년 국유재산법령에 따라 물납 기업의 가치 및 수익 가치를 고려해 한국자산관리공사를 통해 공개 매각한다. 

현재 기재부는 166개 기업의 물납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시사저널이 국유재산포털을 통해 확인한 결과, 기재부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기업들의 주요 주주인 것으로 확인된다. 대표적인 게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자로 알려진 고(故)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18.3%)이다. 박주환 회장을 비롯한 박연차 회장 유족은 6000억원 이상의 상속세 중 절반인 3000억원대 세금을 태광 비상장주식으로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 안마의자로 유명한 휴테크산업(30.3%), 베지밀 두유를 생산하는 정식품(7.9%), 교과서 전문업체 교학사(11.7%),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한 것으로 법원 판결이 내려진 자동차 부품 업체 다스(19.9%) 등의 주식을 현재 기재부가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는 상속세를 주식으로 물납 받으면서 수많은 기업의 주주 자리를 꿰차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시선이 복잡하다. 특히 최근 기재부가 대형 게임 회사 2대 주주에 오르는 진풍경이 펼쳐지면서, 한국의 무거운 상속세가 도마에 올랐다. 세수 확보 편의성 차원에서 주식을 물납 받았지만, 과도한 상속세가 기업 경영권 포기를 넘어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 서열 1위인 삼성가조차도 수년째 막대한 상속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2020년 별세한 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오너 일가는 12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부과받았다. 5년 동안 6회에 걸쳐 2조원씩 나눠 내기로 했다. 2011∼20년 10년간 한국의 연간 평균 상속세수 2조2500억원에 육박하는 액수를 삼성그룹 상속인들이 내는 것이다. 아무리 국내 최고 재벌이라고 해도 한 번에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대출까지 끌어다 쓰는 실정이다. 최근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상속세를 내기 위해 2조원이 넘는 추가 대출을 받았다. 아울러 이재용 회장 등 삼성가 상속인들은 계열사 지분 매각, 보유 주식 담보대출, 배당으로 상속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구광모 LG 회장을 비롯한 LG그룹 상속인들도 9000억원이 넘는 상속세를 주식담보대출 등을 통해 나눠 내고 있는 실정이다. 

재계 1위 삼성도 막대한 상속세에 골머리 

이 같은 과도한 상속세는 오너 일가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권까지 흔들 수 있다. 김정주 회장 유족들이 넥슨 지주회사 NXC 지분의 29.3%를 상속세로 물납하면서 향후 누가 2대 주주가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 NXC 지분이 외국계 경쟁사나 기업사냥꾼에게 넘어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현재 물납 주식 공매 입찰 기준에는 외국 자본 및 기업사냥꾼 배제 조항이 없다. 물론 넥슨 오너 일가 지분이 70%를 넘어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지킬 수 있지만, 향후 새로운 2대 주주가 투자금 회수를 요구하거나 지분 확보를 위한 각종 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경영권을 매각한 기업도 적지 않다. 콘돔 업체 유니더스, 밀폐용기 업체 락앤락, 종자 업체 농우바이오, 손톱깎이 업체 쓰리쎄븐 등이 상속세를 내기 위해 사모펀드와 해외 기업 등에 경영권을 매각했다. 모두 특정 분야에서 국내외 점유율 1위를 달렸던 강소기업이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상속세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과세표준이 30억원을 넘을 경우 세율은 50%, 기업 경영권까지 물려받으면 10%포인트가 할증돼 60%로 높아진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일본(55%), 프랑스(45%), 미국·영국(40%) 등도 상속세율이 높은 편이지만 공제 혜택이 커 실제로 부담하는 상속세율은 한국보다 낮다. 일본은 비상장기업의 경우 세액 80%의 납부를 유예했다가 5년 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면제해줘 실효세율은 11% 정도다. 프랑스와 영국의 가업 상속 실효세율도 각각 11.25%, 20%에 그친다. 미국에선 자녀가 부모로부터 2340만 달러(약 306억원)까지 세금 없이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다.

아울러 세계적으로 상속세 부담은 줄어드는 추세다. 포르투갈·슬로바키아(2004년), 스웨덴(2005년), 체코(2014년) 등이 2000년 이후 상속세를 폐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15개국에는 상속세가 없다. 스위스 등 5개국은 상속세가 있지만 자식에게 물려줄 때는 상속세를 물리지 않는다. 이미 여러 국가에서는 상속세를 걷는 것보다 가업을 이어받아 법인세를 더 내고, 일자리를 만드는 게 사회에 이익이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악명 높은 세금 정책으로 유명한 스웨덴이 대표적인 사례다. 상속세율이 70%에 달하던 스웨덴이 상속세를 없앤 데는 제약사 아스트라 상속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 중요한 계기가 됐다. 1984년 아스트라 지분을 물려받은 자녀들이 상속세를 내기 위해 주식을 팔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결국 주식 대부분을 팔아도 상속세를 마련할 수 없었다. 이 회사는 나중에 영국의 제네카에 인수돼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아스트라제네카가 됐다.

경제계에서 상속세를 둘러싼 논란은 크게 3가지다. 첫째, 부의 재분배 효과에 대한 의문이다. 당초 상속세는 불로소득으로 간주하고, 세금을 부과해 부의 격차를 줄이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현재 상속세 유지의 중요한 논거는 부유층들이 ‘공짜로 얻은 재산’에 세금을 물려 부를 재분배하는 것이 정의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상속세수는 3조9000억원으로 전체 국세의 1.4%에 불과하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속·증여세 비중도 0.5%에 그친다. 

이 때문에 상속세가 부의 재분배, 사회적 불평등 해소에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히려 막대한 상속세를 걷는 것보다 지속 가능한 기업 경영을 보장해 법인세를 안정적으로 걷고, 양질의 일자리를 통해 소득 세원을 탄탄히 다지는 게 빈부 격차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두 번째는 과도한 상속세로 인한 부정적 효과다. 상속을 통해 오너 일가 지분이 줄어든 기업을 겨냥해 국내외 행동주의펀드 등의 공격이 이뤄지면 기업은 배당 등 곳간을 열어 이들을 달래야만 한다. 일부 오너는 상속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영업이익을 초과하는 천문학적인 배당금을 챙기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기업 경쟁력 강화에 투자해야 할 돈이 경영권 방어, 세금 낼 비용으로 쓰이는 셈이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상속세 마련을 위한 과도한 배당은 기업에 부담이 되고, 주식 매각을 택하면 경영권 승계 및 방어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과도한 상속세가 기업의 자원 배분을 왜곡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이나 혹은 이를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비효율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중견·중소기업들이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가족 명의 자회사를 세워 일감을 몰아주는 편법 승계가 대표적인 사례다. 

세 번째는 막대한 상속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원인으로 꼽힌다는 점이다. 한국 증시가 경제 수준이 비슷한 나라에 비해 저평가받는 게 상속세 탓이라는 것이다. 상속·증여세가 높다 보니 대주주는 주가가 오르는 게 달갑지 않다. 주가 부양에 도움이 되는 배당 등 주주환원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며, 한국 기업 오너들은 오히려 낮은 주가를 선호한다. 대주주와 소액주주 간 이 같은 이해관계 불일치는 자본시장 전반의 활력을 둔화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해법은 결국 과도한 세금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상속세제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기업의 역사가 선진국에 비해 짧은 한국에서 ‘100년 기업’을 늘리고 키워내기 위해서는 2000년 이후 과세표준, 세율을 23년째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상속세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넥슨코리아 본사 건물 ⓒ시사저널 박은숙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넥슨코리아 본사 건물 ⓒ시사저널 박은숙

경영·학계, 상속세 대폭 축소 한목소리  

현재 정부와 국회에서 대표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게 유산취득세 제도 도입이다. 우리나라는 피상속인의 전체 상속재산을 기준으로 상속세를 계산하는 유산세 방식이 1950년 제정돼 지금까지 70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다. 반면 유산취득세 방식은 상속인이 각자 취득하는 개별 상속재산을 기준으로 상속세를 계산하기 때문에 여러 명에게 분할할수록 상속세 부담이 감소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상속을 받는 자가 상속받는 액수만큼 세금을 납부하는 응능부담 원칙(납세자의 능력에 맞게 공평하게 과세하는 원칙)을 고려하더라도 유산취득세가 맞다고 주장한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6월14일 열린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조세정책 방향’ 토론회에서 “최근 한 기업인의 유족들이 높은 상속세를 감당하지 못해 이를 주식으로 납부하면서 정부가 2대 주주가 된 사례가 있다. 과세 방식을 유산세 방식에서 개인의 납세 능력에 따라 세금을 납부할 수 있도록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경쟁국에 비해 불리한 조세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우리 기업의 활력을 높이고 외국인의 국내 투자를 활성화해 국가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주제 발제자로 나선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도 같은 의견을 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법인세율을 20% 단일세율 체계로 개편하고 최저한세제 합리화, 연구개발(R&D) 조세 지원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의 법인세제는 기업 실적에 따라 등락이 큰 법인세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안정적 재원 조달의 불확실성이 크다. 복잡한 법인세율 체계와 높은 실효세율로 투자 위축을 초래하고 있다. 비합리적인 조세특례제도로 경제 전반의 효율적 성장을 유인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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