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 작가의 K오컬트, 세계인 홀릴 수 있을까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01 11:05
  • 호수 17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악귀》로 돌아온 오컬트 장르 드라마, 공포에 더해진 시대정서가 만들어낸 시너지

김은희 작가가 돌아왔다. 2021년 방영된 《지리산》 이후 약 2년 만이다. 그가 가져온 작품은 《악귀》다.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귀신이 등장하는 오컬트 장르다. 물론 김은희 작가의 전매특허인 범죄 스릴러도 빠지지 않는다.

범죄와 오컬트의 결합은 이미 김홍선 감독의 《손 the guest》에서도 시도된 바 있다. 박일도라는 막강한 힘을 가진 귀신에 빙의된 자들의 살인과 그를 추적하는 영매, 사제, 형사의 협업을 그렸던 작품이다. 《악귀》 역시 예사롭지 않은 댕기를 만진 후 귀신이 든 구산영(김태리)과 귀신을 보는 민속학자 염해상(오정세), 강력범죄수사대 이홍새(홍경) 경위가 여기저기서 발생하는 의문의 죽음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빙의 개념은 비슷하지만 《악귀》에 등장하는 귀신은 《손 the guest》의 박일도와는 결이 다르다. 이 악귀는 자신이 깃든 자의 욕망을 들어주면서 점점 커진다. 즉 구산영이 갖고 있는 욕망이나 세상에 대한 분노 같은 것들에 악귀는 반응한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에게 보이스피싱을 하고도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남자는, 구산영이 “없어졌으면” 하는 마음을 갖는 것으로 무언가에 홀린 듯 돈을 찾아 건물에서 흩뿌린 후 자살한다. 그런데 자살처럼 보이는 이 사건이 사실은 자신의 욕망이 불러낸 악귀의 힘에 의해 벌어진 살인 사건이라는 걸 구산영은 조금씩 알게 되고, 그로 인해 갈등하게 된다.

드라마 《악귀》의 한 장면 ⓒSBS 제공

범죄 스릴러에 ‘귀신’ 장르 더해

‘욕망을 들어주며 커지는’ 악귀라는 설정은 이 드라마가 사회성을 갖게 되는 이유가 된다. 속에 있는 불만과 분노가 악귀를 통해 밖으로 튀어나와 문제를 만들어내는 설정을 가진 이 드라마는, 그 악귀가 깃든 구산영이라는 흙수저 청춘의 감정을 야기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꺼내 놓는다. 가난한 이들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는 현실처럼, 범죄도 부자들이 아닌 가난한 이들을 더욱 겨냥한다. 보이스피싱 같은 범죄가 가난해서 유일한 희망이 가족일 수밖에 없는 이들의 간절함을 파고들고, 반지하 같은 공간에 사는 이들이 더 몰카 범죄에 노출되며, 가난은 심지어 아동학대 같은 범죄의 빌미나 변명이 되기도 하지 않던가.

《악귀》에서 김은희 작가는 범죄 스릴러와 오컬트를 엮어, 범죄를 둘러싸고 생겨나는 분노와 욕망이 악귀를 불러내는 방식으로 풀어내기도 하고, 때로는 이를 뒤집어 억울하게 죽은 원귀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겪은 범죄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풀어내기도 한다. 전자가 빙의 개념이 들어간 《손 the guest》의 방식으로 악귀의 무서움을 드러낸다면, 후자는 《전설의 고향》에 종종 등장하던 원혼의 청을 들어주는 원님 이야기 방식으로 귀신보다 더한 인간의 무서움을 보여준다.

사실 《악귀》 같은 오컬트 장르는 주로 B급 마이너 장르로 인식돼온 게 사실이다. 서구의 《엑소시스트》(1973)나 《오멘》(1977), 《써스페리아》(1977) 같은 오컬트 영화들이 대표적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공포 장르 자체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기 쉽지 않은 마이너 장르처럼 치부돼 왔다. 그럼에도 거의 독보적으로 우리네 오컬트의 전통이자 보고가 된 드라마는 바로 《전설의 고향》이다. 구미호 이야기부터 “내 다리 내놔”로 잘 알려진 덕대골 이야기 등등 전국 방방곡곡에 전해 내려오는 민담, 전설, 설화를 극화한 이 시리즈는, 1977년부터 12년간 매주 579편을 방영했고, 1996년부터 1999년까지 70여 편을,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도 여름철 납량특집으로 방영되곤 했던 고전 중 고전이다. 이 작품 속에서 탄생한 구미호 같은 설화 속 캐릭터는 그래서 현재까지 《구미호뎐》 《구미호뎐1938》 같은 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원천이 되기도 했다.

오컬트 장르가 더 이상 마이너가 아닌 메이저로 떠오르게 된 데는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공포 같은 마이너 장르도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에서는 분명한 취향을 가진 이들이 열광하는 작품이 됐다. 당연히 저변도 넓어졌다. 달라진 오컬트에 대한 관심 속에서 K콘텐츠는 일련의 놀라운 성과물들을 내놨다.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은 무당, 퇴마사, 귀신 같은 한국적 무속신앙이 접목된 작품으로 이른바 K오컬트의 포문을 열었다. 국내에서는 호불호가 엇갈렸지만 칸영화제에서 시사회가 끝난 후 세계 언론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이후 《손 the guest》, 연상호 감독의 《방법》 《지옥》 같은 작품들이 K오컬트의 세계를 공고히 이어가면서 오컬트 장르는 K콘텐츠에서 중요한 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영화 《곡성》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드라마 《방법》의 한 장면 ⓒtvN 제공
드라마 《손 the guest》의 한 장면 ⓒOCN 제공

《전설의 고향》에서부터 이어진 K오컬트의 전통

그런데 김은희 작가는 어째서 《악귀》라는 작품을 통해 오컬트 장르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싸인》이나 《유령》 같은 다소 하드보일드한 범죄 스릴러를 주로 해왔던 김은희 작가는 《시그널》을 하면서 장르의 확장을 도모하는 진화를 시작한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무전기라는 판타지 설정이 들어간 《시그널》은 범죄 스릴러가 다른 장르와 합쳐져 어떤 변주를 가능하게 하는가를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드라마화된 《킹덤》 역시 마찬가지다. 2015년에 원작 만화 스토리를 썼던 김은희 작가는 이를 드라마화하면서 더 촘촘한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취재와 연구를 했다. 조선 사회에 대한 민속학부터 지리학까지 이어진 연구에서 무속적인 부분들도 빠지지 않았다.

《킹덤》에 등장하는 생사초 같은 설정에서는 여러모로 민속학에서 뽑아져 나온 오컬트적 요소가 담겨 있다. 춥고 음기가 강한 곳에서만 자라는 이 풀은 죽은 자를 살리는 효능을 갖고 있어 생사역이라 불리는 조선판 좀비를 탄생시킨다. 그저 물려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려는 욕망이 탄생시키는 《킹덤》은 그래서 역시 K오컬트의 피가 흐른다. 북방에서 탄생한 아신(전지현)이라는 복수의 화신의 탄생기를 그린 《킹덤 아신전》에서도 이러한 오컬트적 요소는 여지없이 발견된다.

《악귀》는 그래서 《킹덤》의 잔상이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킹덤》의 좀비들이 저마다 갖고 있던 배고픔이나 분노 같은 정서들이 《악귀》의 몇몇 귀신에게는 고스란히 느껴진다. 또한 정반대로 구산영이라는 청춘이 가진 사회에 대한 갈증과 분노는 악귀라는 존재를 통해 세상 밖으로 토로된다. 《전설의 고향》 시절부터 그랬던 것처럼 좀비나 귀신을 그려도 그들의 감정과 정서가 전해지는 K오컬트의 전통이 《킹덤》은 물론이고 《악귀》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이것은 K오컬트가 가진 차별점이고 세계인들을 매료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멜로부터 장르물에 이르기까지 K콘텐츠는 특유의 ‘감정과 정서’를 깊게 담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가져왔다. 그것은 이제 심지어 K오컬트 같은 공포 장르에서조차 시도되고 있다. 《악귀》의 구산영이라는 인물을 보라. 때론 악귀에 빙의되어 더할 나위 없이 살벌한 공포를 드러내지만, 자신으로 돌아왔을 때는 힘들어도 씩씩하게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청춘의 명랑함이 겹쳐지지 않는가. 물론 그 간극에서 느껴지는 비애와 연민 같은 감정은, 왜 이 청춘이 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만들려는 작가의 의도가 들어있는 것이지만.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