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킬러’의 족쇄에 걸려버린 교육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10 08:05
  • 호수 1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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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똑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냥 넘기기엔 상황이 여간 심상치 않다. 이른바 수능 ‘킬러 문항’을 향한 정부·여당의 집중 성토가 하도 뜨겁고 집요해서다. 이 ‘킬러 문항’이란, 주무 부처의 수장인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말에 따르면 “공교육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을 담은 수능 문제를 일컫는다. 이 장관은 “킬러 문항은 물수능, 불수능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공정성의 얘기이니 난이도가 좀 낮더라도 배배 꼬거나 교육과정에서 없던 내용을 넣으면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맨 처음 수능 문제를 화두에 올렸던 윤석열 대통령은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아예 다루지 않는 비문학 국어 문제”를 콕 짚어 예로 들기도 했다. ‘킬러(killer) 문항’이란 단어의 뜻 그대로 풀이하면 ‘누군가를 죽이는’ 문항이다(개인적으로 이처럼 자극적인 말 대신 ‘초고난도 문항’ 정도로 순화해 표현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현재의 상황은 수능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출제되는 이 킬러 문제를 ‘킬(kill)하자’는 방향으로 논의의 초점이 모아진 형국이다. 다른 여러 제도적 문제는 ‘킬러 문항’이란 압도적인 프레임에 갇힌 채 주목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다.

이른바 ‘킬러 문항’ 논란으로 거대해진 사교육 시장에 대한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모습 ⓒ연합뉴스
이른바 ‘킬러 문항’ 논란으로 거대해진 사교육 시장에 대한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모습 ⓒ연합뉴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어의 ‘비문학 영역’을 킬러 문항의 일례로 거론한 만큼 그에 대한 궁금증이 한껏 커져 있던 차에 지인인 전직 고교 국어 교사를 한 모임에서 만났다. ‘국어에서 비문학 영역을 다루면 문제의 난도가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냐’고 그에게 물었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어는 궁극적으로 여러 문법 관련 문제는 물론이고 문장에 대한 이해력, 즉 문해력 혹은 독해력을 가르치는 분야인데, 문학, 비문학을 굳이 가릴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만약에 교과서에서 다루는 내용만으로 문제를 낸다면 국어마저 자칫 암기 과목으로 전락할지 모른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국어의 문학, 비문학 영역 문제를 떠나 당장 수능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이 명칭도 고약한 ‘킬러 문항’이 입시 정책의 절대적 열쇳말로 떠올라 있는 모습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 교육이 떠안고 있는 병폐가 수능 문제의 기조를 부분적으로 바꾼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님은 누구나 다 알 만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호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킬러 문항’으로 상징되는 대입 관련 부분을 일부 손본다고 해서 과연 우리 교육 문제의 핵심이 해결될까. 베스트 시나리오가 된다고 해도 일시적으로만 문제가 해결되는 ‘증상 치료’ 정도”에 그칠 수도 있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이미 자사고·외국어고·과학고 등 특수목적고 출신 학생들의 명문대 입학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특이 사항을 빼놓고 입시를 다 말했다고 할 수는 없다. 초·중등학교에서부터 혹독한 경쟁 체제에 갇혀 지내야 하는 학생들의 고통 또한 우리 교육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이다.

정녕 우리 교육을 사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당연하게도 좀 더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국가교육위원회라는 좋은 기구가 있는데, (대통령이) 거기서 심도 있게 논의해 달라고 말하지 않은 게 아쉽다”는 경남도교육감의 지적 등 현장의 목소리에도 더 많이 귀를 기울어야 한다, 4년 전 국회에서 입법된 ‘대입전형 4년 예고제’의 취지도 되새겨보면 좋겠다. 지금 우리 사회에 정말 절실한 것은 특정 부분을 겨냥한 ‘핀셋 치료’가 아니라 교육 개혁이라는 ‘전면 치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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