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장에선 낙마, 국무위원은 유지…여기자와 불륜설 친강 미스터리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05 12:05
  • 호수 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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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몰린 친강, 기밀 유출설까지…원인 제공자는 시진핑

7월2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표결을 거처 친강(秦剛) 외교부장이 면직됐다. 후임으로는 왕이(王毅)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임명됐다. 이런 중국 당국의 조치는 6월25일 친강이 마지막으로 공식 석상에 나타난 지 한 달 만에 이뤄졌다. 친강이 2주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7월 중순부터 중화권을 중심으로 친강에 대한 각종 소문이 불거졌다. 홍콩의 친중 매체는 친강을 적극 엄호했다. “친강이 코로나19에 걸려 휴양 중”이라는 구체적인 이유를 들면서 “조만간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대만과 서구 언론 대다수의 보도 방향은 전혀 달랐다. “한 방송국 여기자와 불륜을 이어오다가 최근 전모가 드러나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감금해 조사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여기서 불륜 상대로 지목된 기자는 홍콩 피닉스(鳳凰) 위성TV의 푸샤오톈(傅曉田)이다. 푸샤오톈은 2013년부터 각국 정계 지도자와 대담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지난해 초 당시 주미 중국대사였던 친강을 만났다. 같은 해 11월 미혼인 푸샤오톈이 아들을 낳았다. 올해 초 SNS으로 이 사실을 공개했지만,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일부 서구 언론은 성격이 전혀 다른 ‘기밀 유출’ 관련설을 보도했다. 이는 최근 중국 로켓군(火箭軍) 최고위급 장성들의 체포와 관련이 있다. 지난 4월 중순부터 류광빈(劉光斌) 로켓군 부사령관이 사라졌다. 6월 하순에는 리위차오(李玉超) 로켓군 사령관과 쉬중보(徐忠波) 정치위원이 사무실에서 체포됐다. 7월2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리위차오, 쉬중보, 류광빈 등이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기율감찰위원회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켓군은 육군, 해군, 공군, 전략지원군과 함께 중국의 5대군 중 하나로 손꼽힌다. 2015년 말 핵무기 운용부대로 창설됐지만,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위상이 급성장했다. 이를 보여주듯, 2018년 초대 로켓군 사령관인 웨이펑허(魏鳳和)가 국방부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이번 기밀 유출설은 미국에서 유학 중인 리위차오의 아들에게서 비롯됐다. 리위차오 아들이 로켓군 관련 정보를 떠들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지난해 10월 미국 공군대학 산하 중국우주항공연구소가 발간한 중국 로켓군 관련 보고서에는 매우 방대하고 구체적인 정보가 실렸다. 특히 기지의 위치, 미사일의 종류와 수 등 기밀정보도 포함됐다.

이러한 리위차오 아들의 동향을 당시 주미 대사였던 친강이 인지했지만, 제대로 조치하지 않았다는 것이 기밀 유출 관련설의 전모다. 결국 7월31일 시진핑 주석은 새로운 로켓군 지휘부를 임명했다. 사령관에는 왕허우빈(王厚斌) 해군 부사령관을, 정치위원에는 쉬시성(徐西盛) 남부전구 공군 정치위원을 발탁했다. 두 사람을 비롯해 부사령관 대부분도 과거 로켓군에서 복무한 전력이 없다. 이유가 어떠하든 이런 와중에 친강은 외교부장에서 해임됐다. 

최근 외교부장에서 면직된 친강(왼쪽 사진)과 후임으로 임명된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EPA 연합

반전에 반전 거듭하는 친강의 위상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연출됐다. 친강이 겸임하던 국무원 국무위원과 공산당 중앙위원 자리는 유지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고위직 인사가 낙마하면 국무원과 공산당의 겸직 지위가 동시에 면직된다. 하지만 친강은 두 자리를 모두 지키면서 외교부장에서만 해임됐다. 국무위원은 총리, 부총리 다음 직위로 5명밖에 없다. 오히려 국무원 내 여타 부처의 부장보다 한 직급 높다. 이렇게 다른 직위를 유지하는 친강의 사례는 전례가 없다. 전임 외교부장이었던 왕이를 다시 임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고위직이 낙마하면 그 자리를 권한대행 체제로 하거나 후임자를 물색하는 게 관례였다. 실제 친강과 경쟁했던 마자오쉬(馬朝旭) 외교부 제1부부장이 유력한 후보로 점쳐졌다.

게다가 그 후에 전개되는 양상이 이상했다. 7월25일 면직이 발표된 직후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친강의 활동에 관한 모든 정보가 삭제됐다. 그에 따라 외신은 “친강에 대한 정치적 숙청이 시작됐다”고 관측했다. 이런 외신의 전망을 뒷받침하듯, 중국의 일부 SNS 매체를 중심으로 친강의 불륜설 상대로 지목된 푸샤오톈의 성공 과정과 배경이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아들의 출생과 성장, 이를 공개한 SNS를 파고들면서 친강과의 연관성을 끊임없이 암시했다. 특히 4월11일(미국시간) 푸샤오톈이 트위터에 남긴 글과 사진에 주목했다. 푸샤오톈은 같은 내용을 웨이보(微博)에도 남겼다.

그러나 첨부한 사진의 일부가 달랐다. 트위터에는 아들 사진 위에 친강을 인터뷰하는 자신의 사진을 배치해 놓은 것이다. 중국 당국이 통제하는 웨이보에서는 이 사진을 쏙 뺐다. 푸샤오톈은 3월19일에도 누군가를 향해 아들 사진과 함께 장문의 생일 축하 메시지를 웨이보에 올렸다. 공개된 친강의 생일이 3월19일이다. 주목할 점은 이 같은 SNS 매체의 보도가 중국 포털사이트에도 노출됐다는 점이다. 중국인들은 SNS를 통해 관련 뉴스를 퍼날랐다. 모든 언론, 포털사이트, SNS 등을 철저히 통제하는 중국에서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7월28일 또 다른 반전이 일어났다. 외교부 홈페이지에 친강의 활동 내역이 다시 복원됐다. 같은 날 강경 국수주의 성향의 중국 언론인 글로벌타임스는 이례적으로 “중국 외교부의 홈페이지가 업데이트됐다”면서 “친강의 외교활동 목록이 실려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동시에 중국 SNS 매체에서 이어지던 푸샤오톈에 관한 보도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이렇듯 친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반전의 연속으로 인해 서구 언론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4월에 회사를 그만두고 잠적 상태인 푸샤오톈의 행방도 알 수 없기에 진실은 미궁에 빠졌다.

 

시진핑 1인 지배체제가 낳은 폐해

서구 일각에서는 최근 상황을 노선 투쟁의 결과라고 보고 있다. 비록 시진핑 주석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지만, 그 밑에서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체제처럼 여러 세력이 암투를 벌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중국의 현실과 동떨어진다. 실제로 친강은 지난해 12월말 주미 대사에서 외교부장으로 임명됐고, 올해 3월에는 국무위원으로 한 단계 더 승격했다. 이런 초고속 승진은 시 주석의 총애 덕분에 가능했다. 친강은 외교부 대변인 시절부터 강경하게 자국의 국익을 관철하는 중국의 ‘전랑(戰狼)외교’를 상징하면서 시 주석의 눈에 들었다.

그런데 각종 의혹과 연결되면서 7개월 만에 외교부장에서 해임됐다. 사람을 판단하는 시 주석의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이다. 따라서 ‘최고지도자의 인사 실패’라는 모양새는 피하면서 시 주석의 위신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나온 고육책이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그러나 시 주석은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과거에는 최고지도부인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이 토론과 합의로 인사를 결정했다. 지금은 상무위원 7명이 모두 시 주석 측근으로, 시 주석이 모든 걸 결정한다. 1인 지배체제가 제2, 제3의 친강 사태를 만들 수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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