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정하듯 정하는 최저임금제, 변화가 필요하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08 11:05
  • 호수 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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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적용할 최저임금 인상률 두고 평가 엇갈려…객관적인 지표에 근거한 금액 결정 시급

최저임금위원회가 2024년에 적용할 최저임금을 시간당 9860원으로 결정했다. 주 40시간 노동에 주휴수당을 더해 월 209시간 기준으로 하면 206만740원이다. 평가는 엇갈린다. 경제단체들은 인건비 상승에 따른 기업 경영활동 위축, 특히 영세기업과 소상공인들에게 미치는 타격을 우려했다. 그러나 당초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사용자 측의 입장이 더 많이 반영된 결정이다. 올해 9620원과 비교하면 겨우 240원 올라 인상률이 2.5%에 그친다. 2021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인상률이고 한국은행의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인 3.5%보다 낮다.

ⓒ연합뉴스
2024년 최저임금이 9860원으로 결정된 7월19일 시민들이 서울역 대합실에서 관련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인상률 2.5%로 역대 두 번째로 낮지만…

노동자 측은 처음에 26.9% 인상된 시간당 1만2210원을 제시했고 사용자 측은 동결을 주장했었다. 마지막으로 제시된 수정안은 노동자 측이 1만580원(10.0% 인상안), 사용자 측 9805원(1.9% 인상안)이었다. 최종적으로 합의에 실패하면서 공익위원들이 수정안을 토대로 제시한 심의촉진구간은 9820원(2.1% 인상안)∼1만150원(5.5% 인상안)이었다. 결정된 인상률은 심의촉진구간에서도 비교적 낮은 편에 가깝다. 노동자 측의 반발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저소득층의 임금 인상률은 물가상승률을 조금이라도 웃돌도록 맞춰야 현상이라도 유지할 수 있다. 물가상승률만이 아니라 내년부터 적용되는 산입범위 확대를 고려하면 사실상 삭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 현재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을 적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구매력을 고려한 대미 달러 균형환율로 계산하면, 2015년 이후 이미 일본을 넘어섰고 지금은 영국과 비슷하다. 실질적인 최저임금의 생계비 보장 수준을 의미하는 근로자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도 우리나라는 지난해 62.2%로 미국의 28%나 일본의 46%를 넘는다. 보통 최저임금 적정 수준의 상한선이라고 하는 게 60% 수준이다. 물론 단순한 국가별 비교가 큰 의미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나라마다 사회보장 시스템이 다르고 최저임금이 갖는 사회적 의미에도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제도의 영향을 받는 근로자의 95%는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최저임금의 대상이 되는 저숙련 노동자들은 특히 음식, 숙박업종과 유통업 등에 많다. 이런 산업에서 노동시장은 흔히 말하는 요소 독점적 시장이다. 정부의 개입은 노동시장에서 일어나기 쉬운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1988년부터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최저임금제는 헌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헌법 제32조 1항은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지고 있고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해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최저임금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노동시장에서 나타내는 효과가 확인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현실은 최저임금 상승률과 비례해 고용이 줄어드는 것으로 반드시 귀결되지는 않는다. 기업이 최저임금 인상을 흡수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자를 기계로 대체할 수도 있고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지만, 상품 가격을 올릴 수도 있다.

연구 결과는 일률적이지 않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 부담이 경제적으로 상대적 약자인 영세 중소기업, 자영업자 등에게 집중되는 것은 사실이다. 원칙적으로 임금 상승은 노동생산성 증가율과 맞춰야 한다. 생산성 증가율보다 높은 임금은 구조 개혁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구조 개혁이 소득이 낮은 저숙련 노동자에게 유리하지는 않다. 최저임금은 대략 334만7000명의 저소득 노동자가 적용 대상이 된다.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은 자칫 최저임금제도로 보호하려는 밑바닥 일자리들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갖는 한계다.

최저임금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가 늘어나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것도 옳지 않은 일이다. 2022년 기준 법정 최저임금액인 9160원을 받지 못한 근로자 비율은 12.7%에 달했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이 비율이 29.6%에 달했고 농림어업과 숙박 및 음식점업에서는 30%를 넘었다. 제도가 현실과 유리된 상황에서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최저임금제도는 공정하지 못하다. 어떤 경우에도 지켜야 할 수준에서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최저임금을 정하고 이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옳다.

 

文 정부 때도 개선 추진했다가 ‘흐지부지’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 심의는 노사의 소모적인 대립과 충돌을 반복해 왔다. 최저임금에 대한 합리적인 논의가 실종되면서 최저임금 결정은 전국 단위의 임금 협상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노사의 격렬한 갈등을 유인하는 지금의 최저임금 결정 구조에는 변화가 필요하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노동계와 사용자단체 추천 각각 9명,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 9명 등 27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번에도 역대 최장기간인 110일의 심의를 거쳤지만 타협은 없었다. 노동자 위원들이 처음부터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상안을 내놓는 것도 현실적인 모습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사용자 위원들도 그다지 합리적이지는 않다. 2007년부터 올해까지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고 사용자 위원들이 처음에 내놓는 제안은 언제나 삭감 내지는 동결이었다. 진지하지 못한 제안들을 던져놓고 대립하다 보면 실제로는 공익위원들이 인상률이든 뭐든 결정권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올해도 그랬다. 근로자와 사용자의 충돌 속에서 노사가 흥정하듯 최저임금을 정하는 현행 방식의 문제점은 정부도 알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2월 최저임금위원회를 이원화해 전문가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와 노사공익이 참여하는 결정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하는 방식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이후 흐지부지됐다. 말은 많았지만, 정부도 여당도 굳이 사회적 논란과 부담을 감수하면서 이를 해내야겠다는 의지가 없었을 것이다.

사실 최저임금 결정을 두고 반복되는 사회적 갈등은 노사 모두에게 부담이다.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 안정을 위하면서도 성장을 저해하지 않는 최저임금 결정이 필요하다.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경제지표에 근거해 합리적인 최저임금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 올해 최저임금의 사업 종류별 구분 여부는 부결됐지만, 업종별로 근무 강도나 평균임금, 생산성이 모두 다르고 지역별로도 주거비를 포함한 생활비에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지역별로든 업종별로든 차등 적용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당장 도입하는 것은 어렵다고 해도 최소한 논의는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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