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실패로 더 강해지다…배드민턴 세계 1위 등극한 안세영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13 13:05
  • 호수 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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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항저우아시안게임에 뜨는 별들②]
세계배드민턴연맹, ‘멈추지 않는’ ‘무결점의’ ‘저거너트’로 격찬
“내 성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냐, 세계 1위에 6년 걸렸다”

한국 여자 배드민턴 간판 안세영(21)에게는 늘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방수현 이후 처음’이 그것이다. 방수현은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단식 금메달리스트다. 4년 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단식 선수로는 유일하게 세계배드민턴연맹 ‘명예의 전당’에 올라있기도 하다.

안세영은 지난 3월 전영오픈에서 1996년 방수현 이후 27년 만에 여자단식 금메달을 따냈다. 7월 코리아오픈과 일본오픈에서도 연달아 우승하며 7월31일 일본의 야마구치 아카네(26)를 제치고 세계랭킹 1위로 올라섰다. 이 또한 1996년 9월 방수현 이후 27년 만이다. 남자 선수까지 포함하면 2017년 9월 남자단식 1위에 올랐던 손완호 이후 처음이기도 하다. 안세영의 세계 첫 랭킹은 1335위(2018년 2월)였다. 5년5개월의 피, 땀, 눈물로 당당히 세계 최정상에 섰다. 야마구치는 지난해 9월6일부터 11개월가량 세계 1위를 지키고 있었다. 

안세영은 올해 참가한 11개 국제대회에서 우승 7차례, 준우승 3차례를 기록했다. 나머지 한 개 대회에서도 3위에 올랐다. 세계배드민턴연맹(BWF)은 10번의 결승 무대에서 7번 승리한 안세영을 두고 ‘멈추지 않는(No Stopping)’ ‘무결점의(Impeccable)’라는 표현을 썼다. ‘저거너트(The juggernaut·우주의 주인)’라는 말까지 동원해 최근 안세영의 거침없는 행보를 묘사하기도 했다. 그만큼 9월 항저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7월30일 일본오픈에서 우승한 안세영 ⓒAP 뉴시스
7월30일 일본오픈에서 우승한 안세영 ⓒAP 뉴시스

중3 때 최연소 국가대표…드라마 《라켓소년단》 모티브 돼

안세영은 어릴 때부터 돋보였다. 풍암초등학교 1학년 때 복싱선수 출신이자 배드민턴 동호회 회원이었던 아버지(안정현씨)를 따라다니다가 라켓을 처음 잡은 후부터 ‘셔틀콕 신동’으로 불렸다. 만 15세에 참가한 배드민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고등학교·대학교·실업팀 선수들을 모조리 꺾었다. 중학교 3학년 단식 선수가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전승을 거둔 것은 한국 배드민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연맹 추천이 아닌 선발전을 통해 중학생 신분으로 최연소 배드민턴 국가대표가 된 그때가 2017년 12월이었다. 2021년 방영된 SBS 드라마 《라켓소년단》에는 중학생 배드민턴 국가대표 한세윤이 나오는데 안세영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었다. 한세윤은 우승한 후 안세영이 고등학교 때 했던 세리머니를 똑같이 재현했다. 

어린 나이에 태극마크를 달고 가족과 떨어져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생활할 때는 너무 힘들어 밤에 별을 보면서 울기도 했다. 고민을 털어놓을 또래 친구조차 없어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꿋꿋하게 버텼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때는 첫 경기에서 0대2로 완패하며 ‘광속 탈락’했다. 아무래도 경험 부족이 컸다. 상대는 안세영보다 4세 많은 천위페이(중국)였다. 세계의 벽을 확인한 안세영은 “하루도 안 쉬고 (도쿄올림픽을) 준비하겠다”고 다짐했고 3년간 그 약속을 지켰다. 그럼에도 1년 늦게 치러진 도쿄올림픽(2021년) 단식 8강전에서 또다시 천위페이를 만나 0대2로 졌다. 2세트 막판에 발목을 다쳐 응급치료를 받고 코트에 나설 만큼 전의를 불태웠으나 결과는 ‘패’였다. 

경기 후 눈물을 펑펑 쏟은 안세영은 “쉬는 날 없이 계속 훈련했는데 기대만큼 성과가 안 나온 것 같아 너무 많이 아쉽다”고 털어놨다. 그렇다고 좌절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후회 없이 준비해 이 정도의 성과가 나왔다. 그렇게 준비해서도 안 됐으니까 더 열심히 준비해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7월19일 전남 여수 진남체육관에서 열린 2023 배드민턴 코리아오픈선수권대회 32강전에서 안세영이 벨기에의 리안 탄과 경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빅4’ 천위페이·야마구치·타이쯔잉에 올해 상대 전적 모두 앞서 

안세영의 장점은 강한 체력과 함께 넓은 코트 커버력을 이용한 전천후 수비다. 상대의 공격을 물샐틈없이 방어해 내면서 범실을 유도한다. 하지만 수비력에 비해 스윙 스피드가 느리고 공격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아시안게임, 올림픽 무대에서 자신의 실력을 깨달은 안세영은 단점 보완에 나섰다. 그리고 2023년 공격적인 면에서도 한층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무대에서 연달아 비수를 꽂은 천위페이도 넘어섰다. 2022년까지 겨우 1승(8패)밖에 거두지 못했지만, 올해는 4승(2패)이나 올렸다. 또 다른 숙적 야마구치와는 통산 성적에서 8승12패로 밀리지만 올해만 놓고 보면 3승2패로 앞선다. 세계 여자 배드민턴 ‘빅4’ 중 나머지 한 명인 타이쯔잉(29·대만)에게는 올해 5승(1패)을 챙기면서 자신감을 더욱 끌어올렸다. 통산 상대 전적은 8승2패. 안세영은 천위페이·야마구치·타이쯔잉과 비교해 제일 어리다는 장점이 있다. 전성기에 막 돌입했다는 점도 있다. 

세계 1위로 올라선 안세영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세계배드민턴개인선수권대회(8월21~27일)를 준비하고 있다. 이 대회는 랭킹 포인트가 높아 야마구치 등 다른 상위권 선수에게 우승을 내줄 경우 1위 자리를 뺏길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기세로 우승을 차지하면 ‘안세영 시대’를 선언할 수도 있다. 아시안게임을 앞둔 전초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중요도가 더 높다. 2024 파리올림픽까지도 여파가 이어질 수 있다. 배드민턴 여자단식에서는 아시아 1위가 결국 세계 1위이기 때문이다. 

안세영은 “나의 성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여기(세계 1위)에 도착하는 데 6년이 걸렸기 때문에 꿈이 실현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여정에는 최연소 배드민턴 국가대표라는 영광도 있었지만, 아시안게임 32강전 탈락, 올림픽 8강전 탈락의 아픔도 있었다. 실패의 경험 속에서 훈련에 매진했고, 비로소 숙원이던 세계 정상에 섰다. “패한 경험이 많아 독하게 준비한다”는 안세영이다. 이제는 세계 1위가 결코 우연히 이뤄진 게 아니라는 점을 증명할 일만 남았다. 

■ 명예 회복 벼르는 한국 셔틀콕

한국 배드민턴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때 단 1개의 메달도 따내지 못하는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이번 항저우아시안게임 때는 7개 세부 종목에서 모두 입상을 바라보고 있다. 안세영과 함께 여자복식은 유력한 금메달 주자다. 여자복식 세계 2위가 이소희-백하나, 3위가 김소영-공희용 조다. 세계 1위는 중국의 천칭천-자이판 조인데 일본오픈 준결승전에서 백하나-이유림 조가 꺾은 바 있다. 여자단식, 여자복식과 함께 여자단체전 또한 금메달을 노린다. 남자복식에서는 세계 9위 강민혁-서승재 조, 혼합복식에선 세계 5위 서승재-채유정 조에 기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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