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여성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정의한 2023 월드컵
  • 최영미 작가/ 이미출판사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18 17:05
  • 호수 1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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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때리는 그녀들》은 인기인데 여자 축구는 보지 않고, 보여주지도 않는 이상한 나라.

인류 역사 이래 가장 큰 여성 스포츠 제전이었던 2023 여자월드컵이 어느덧 결승전을 앞두고 있다. 세계의 여성들에게 중요한 행사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아 유감스럽다.

콜린 벨 감독이 이끄는 여자 축구대표팀이 7월10일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월드컵 출전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기 전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콜린 벨 감독이 이끄는 여자 축구대표팀이 7월10일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월드컵 출전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기 전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아프리카대륙에서 나이지리아, 모로코,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이렇게 세 나라가 16강에 올라갔다. 지난해 FIFA 월드컵에서 아프리카 최초로, 아랍 국가 최초로 4강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한 모로코는 처음 출전한 여자월드컵에서도 새로운 역사를 썼다. 모로코 여자 축구팀은 첫 출전인데도 16강에 오르는 쾌거를 올렸다. 아랍의 힘이며, 아프리카 여성의 힘이며, 모로코의 힘이다.

조별 리그 첫 경기에서 독일에 6대0으로 완패했는데도 무너지지 않고 팀을 추슬러 한국을 이기고 조 2위로 16강에 오른 모로코는 어떤 나라일까. 언젠가 모로코에 가고 싶다.

머리에 히잡을 두른 선수를 월드컵 경기장에서 보게 될 줄이야. 이슬람의 상징인 히잡을 머리에 쓰고 뛰는 모로코의 여자선수는 아랍의 현실을 우리에게 각인시켜 주었고, 이번 대회를 다채로운 색깔로 물들이는 데 한몫했다. 수비수인 벤지나(Benzina)는 무슬림 여자선수들의 롤모델이라고 한다.

2023 여자월드컵은 남자월드컵과 다른 여러 가지 볼거리와 재미를 선사했다. 축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세계 여성들의 삶이 달라지고 있음을 나는 확인했다. 여자 축구가 최근에 많이 발전했고, 그동안 여자 축구의 변방이었던 아프리카와 남미 팀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 여자들의 기술도 남자선수들 못지않게 올라왔고 속도도 빨라졌다. 몸싸움도 예전에 비해 격렬해져 선수들의 부상이 걱정되었다. (미투의 영향도 있는 것 같은데) 그녀들의 얼굴은 자신감으로 가득했고 동작들은 더 커졌고, 골 세리머니도 더 격렬해졌다. 공을 차고 달리다 높이 솟아오르는 그녀들은 아름다웠다. 인형처럼 예쁘게 치장하고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잔디밭을 가로지르며 소리 지르고 움직이는 여성의 몸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스마트폰을 열고 인터넷으로 경기를 보는데 화면이 자주 끊겼다. 한국 방송사들은 한국이 16강 진출에 실패한 후부터 여자월드컵 중계를 하지 않았다. 지상파뿐만 아니라 스포츠 전문채널에서도 한국이 속한 조별 경기와 일본 대표팀 경기를 제외하고는 어떤 경기도 보여주지 않았다. 이러니 한국 여자 축구가 발전하지 못하는 거다.

대중이 많이 봐서 여자 축구의 인기가 높아져야 그 나라 축구의 수준도 올라간다. 경기를 보러 호주에 갈까? 고민하다 해결책을 찾았다. 인터넷에서 ‘sports bar’를 검색해 집에서 가까운 술집을 찾았다. 처음 출전해 소중한 승점을 따내고 마치 우승한 듯 기뻐하던 필리핀 선수들, 체격의 열세를 기술과 조직력으로 보완하고 수준 높은 경기를 보여준 일본 여자 축구에 찬사를 보낸다.

영국과 호주의 4강 경기를 앞두고 이 글을 쓴다. 영국이 우승할 것 같지만, 호주를 응원하련다. 샘 커(Sam Kerr)가 골을 넣어 그녀 특유의 골 세리머니 ‘backflip’(뒤로 넘는 공중제비) 하는 걸 보고 싶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정의한 2023 여자월드컵, 모든 경기가 흥미진진했다. 조별리그 한 경기도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체력이 달려 다 보지 못했다. 어떤 날은 너무 더워 오후 4시 경기는 포기하고, 7시에 시작하는 경기를 술집에 가서 보았다. 홍대 앞의 스포츠 바에서 북극바람 맞으며 (에어컨이 세서 카디건에 머플러까지 둘렀다) 불편한 의자에 걸터앉아, 앉다 서다를 반복하며 행복했노라.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br>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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