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의 발끝에 달린 아시안게임 축구 금메달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09 11:05
  • 호수 1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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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아시안게임에 뜨는 별들⑥] 자신의 출전 의지 매우 강해…16강 토너먼트부터 나설 듯
유럽파 홍현석·정우영, 국내파 엄원상·조영욱·고영준 등 진용 탄탄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한국 축구가 놓쳐선 안 되는 중요 과제다. 세계의 축구 기준에서 보면 월드컵·올림픽·아시안컵보다 비중이 훨씬 떨어진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의무 차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 ‘그들만의 대회’임을 증명한다. 아시아권에서도 반응이 엇갈린다. 23세 이하 선수와 연령 초과 선수(와일드카드)로 구성할 수 있음에도 21세 이하 팀만으로 출전하는 국가가 다수다. 그러나 한국은 늘 진지했다. 소집 가능한 최정예 멤버를 짰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에는 병역특례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1년6개월의 병역 문제는 유럽파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한국 축구의 현실적 고민이다. 이것을 해소할 가장 확률 높은 대회가 바로 아시안게임이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과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축구가 잇달아 금메달을 따며 유럽파 증대의 발판이 깔렸다. 기존의 유럽파는 안정적으로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할 수 있게 됐고, 병역 문제에서 자유로워진 어린 선수들은 적극적으로 유럽 진출의 문을 두드렸다. 전자는 손흥민·황희찬 등이고, 후자는 황의조·이재성·김민재·황인범 등이다.

이번 항저우아시안게임에 나서는 황선홍호의 목표는 유일하고 확고하다. 오직 금메달뿐이다. 그것을 위해 와일드카드와 해당 연령 유럽파를 총동원한다.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3연속 제패에 성공함으로써 최다 금메달 기록을 이어가야 한다.

6월20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한국과 엘살바도르의 경기. 이강인이 슛을 한 후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6월20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한국과 엘살바도르의 경기. 이강인이 슛을 한 후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다 금메달 한국, 한 번도 쉬운 길은 없었다

한국 남자축구는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다섯 차례 금메달을 따냈다. 4회의 이란을 앞서는 최다 우승 기록이다. 방콕에서 개최된 1970년과 1978년 대회에서 각각 미얀마(당시 버마), 북한과 공동 우승을 차지했다. 1986년 서울 대회에서는 개최국으로서 강력한 동기부여를 갖고 금메달에 도전해 처음으로 단독 우승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20년간 금메달은 한국의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1998년까지 아시안게임은 연령 제한 없이 A대표팀이 그대로 나설 수 있음에도 중요한 타이밍에 일격을 맞으며 무너졌다. 1990년 베이징 대회 때는 준결승에서 이란에 패해 3위에 그쳤고, 1994년 히로시마 대회에서는 사실상 결승전으로 여겨진 개최국 일본과의 8강전에서 승리하고도 준결승에서 다크호스 우즈베키스탄에 일격을 맞았다. 1998년 방콕 대회 때는 8강에서 개최국 태국에 충격적인 패배를 경험하며 탈락했다.

2002년 부산 대회에서는 홈이라는 기세에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박지성, 이영표, 이운재, 이천수 등을 앞세우고도 이란과의 준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2006년 도하 대회도 중동세인 이라크, 이란에 패해 4위에 그치며 노메달 수모를 겪었다.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는 동메달을 따는 데 만족해야 했다.

아시안게임 잔혹사를 끊은 것은 최근 두 대회를 통해서다. 2014년 인천 대회는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완벽한 성과를 냈다. 조별리그부터 결승까지 7경기를 실점 없이 전승으로 이겼다. 당시 대표팀을 지도한 고(故) 이광종 감독은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로서 장시간 관찰해온 선수들과 완벽한 하모니를 이뤄냈다. 가장 큰 고비는 북한과의 결승전. 남북 대결에서 필사적으로 나선 북한의 수비에 막혀 결국 연장전까지 간 경기는 종료 직전 터진 임창우의 극적인 골로 승부가 갈렸다.

4년 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도 남자축구는 금맥을 캤다. 토트넘에서 전성기를 열어가던 손흥민의 병역 해소 여부에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린 이 대회에서 김학범호는 조별리그에서 복병 말레이시아에 패하는 등 천신만고 끝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결승에서 숙적 일본을 만난 한국은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이승우, 황희찬의 연속 골로 2대1로 승리하며 정상에 섰다.

3회 연속 금메달에 도전하는 이번 항저우 대회는 준비 과정부터 혼란과 악재가 이어졌다. 당초 2022년 열려야 했던 대회가 코로나19 여파로 1년 연기됐다. 그러면서 기존 23세 이하가 아닌 24세 이하로 연령 제한이 변경됐다. 선수 선발에서는 대한축구협회의 결정적 실책이 나왔다. 음주운전 전력이 있는 수비수 이상민의 선발이 국가대표 운영규정 위반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 이미 와일드카드를 포함한 최종 명단이 발표된 시점이다 보니 부상자 발생 시에만 선수를 바꿀 수 있다고 규정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의 예외 적용 승인이 필요했다. 한 달 넘게 노심초사하며 기다린 끝에 선수 교체 승인이 나 김태현을 새로 발탁했다.

6월20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한국과 엘살바도르의 경기. 이강인이 슛을 한 후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8월25일 파리 생제르맹FC 캠퍼스에서 재활훈련을 하고 있는 이강인 ⓒ파리생제르맹 FC 홈페이지 캡쳐

이강인·정우영·홍현석 등 유럽파 공격 2선 ‘최대 경쟁력’

황선홍호는 이전 대회처럼 최정예 멤버를 꾸렸고, 그 중심에는 ‘골든 보이’ 이강인이 있다. 2001년생인 이강인은 1999년생이 주축인 아시안게임 멤버에서 어린 축이지만 기량 면에서는 단연 에이스다. 황선홍 감독도 지난 수개월 동안 이강인의 차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마요르카를 떠나 파리 생제르맹(PSG)으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이강인은 PSG에 아시안게임 출전에 협조한다는 내용을 우선적으로 강조했다. 최근 프랑스 리그1 경기 중 입은 왼쪽 대퇴근 부상으로 A대표팀 차출은 무산됐지만, 이강인은 아시안게임 출전에는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황선홍 감독은 이강인이 조별리그부터 참가하긴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PSG 구단과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9월17일 열리는 리그 일정을 마치고 중국으로 이동하는 조건으로 차출 막판 협의를 진행 중이다. 부상을 입은 이강인의 몸 상태도 면밀히 체크해야 한다. 따라서 쿠웨이트(9월19일), 태국(21일), 바레인(24일)과의 세 경기는 이강인을 제외한 21명의 선수로 뚫어내야 한다.

아시안게임 3연속 금메달의 기본 플랜은 조별리그 통과 후 긴장감이 높아지는 토너먼트부터 이강인의 압도적인 개인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최대 변수는 공격진이다. 2014년 김신욱, 2018년 황의조를 와일드카드로 불러들여 효과를 본 것과 달리 황선홍 감독은 최전방을 연령별 선수인 박재용, 안재준에게 맡긴다. K리그 최고의 토종 골잡이인 주민규 선발을 검토했지만 현실화되지 않았고 결국 센터백 박진섭, 풀백 설영우, 미드필더 백승호로 와일드카드를 구성했다. 김승규, 조현우 같은 A대표팀 주전 골키퍼를 와일드카드로 부른 이전 두 대회와는 확실히 전략이 다르다.

대신 역대 최강의 2선 공격 자원으로 상대의 밀집수비를 깨야 한다. 이강인 외에도 유럽에서 활약하는 홍현석과 정우영, 국내파의 핵심인 엄원상·조영욱·고영준 등 상대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다양하다. 상대와 치고받는 아슬아슬한 난타전보다 중원에서의 확실한 우위로 경기를 지배하겠다는 게 황 감독의 목표다. 홍현석은 소속팀인 벨기에의 헨트에서 최근 멀티골을 기록하는 맹활약으로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에도 선발됐다. 정우영도 아시안게임 대표팀 합류 전에 새 소속팀인 슈투트가르트에서 도움을 기록했다. 국내 선수들도 저마다 좋은 감각을 유지 중이다.

승부처에서 가장 기대를 모으는 것은 역시 이강인의 왼발이다. 2019년 폴란드 U-20 월드컵, 2022년 카타르월드컵 등 큰 대회에서 목표를 달성할 때마다 탁월한 기술·패스·드리블이 빛났다. 세트피스 처리 능력도 걸출한 만큼 날카로운 킥을 이용해 중요한 타이밍에 상대를 무너트리는 모습을 아시안게임에서 보여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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