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치 앞서가는 일본, 점점 벌어지는 격차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16 15:05
  • 호수 177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선수단, 항저우아시안게임 목표가 미리서부터 ‘3위’인 이유
2014년까지 2위였던 한국, 2018년부터 일본에 추월당해

항저우아시안게임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단은 9월12일 결단식을 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코로나19 때문에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이후 5년 만에 펼쳐진다. 중국 저장성 성도 항저우를 포함한 6개 도시에서 9월23일 개막해 10월8일 폐막하는데, 한국은 39개 종목에 역대 최다인 1140명의 선수단을 파견한다.

이번 대회 목표는 ‘종합 3위’다. 아시안게임이 한국·중국·일본 3파전으로 전개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3위’라는 목표가 다소 의아스럽다. 3위는 사실상 중국·일본과 견줄 수 없다는 것을 미리서부터 인정한 꼴이기 때문이다.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 한국은 종합 3위(금 49개, 은 58개, 동 43개)를 했는데, 당시 4위가 개최국의 이점을 안은 인도네시아로 금메달이 31개(메달 총계 98개)였다.

중국이 아시아 스포츠 부동의 1위라고 할 때, 2위 다툼은 늘 한국과 일본의 싸움이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때 개최국의 이점을 안은 한국은 금메달 93개(은 55개)로 중국(금메달 94개)에 간발의 차로 2위를 차지했다. 당시 종합 메달 수(224개)로는 중국(222개)을 2개 차이로 제쳤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을 넘어서기가 버겁다. 중국은 1982년 인도 뉴델리 대회 때부터 늘 아시안게임 1위를 해왔다.

한국은 1994년 히로시마(일본) 대회를 제외하고 1986년부터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때까지 항상 2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지난 2018년 대회에서 전세가 역전됐다. 당시 일본은 금메달 75개, 은메달 56개, 동메달 74개를 따냈다. 금메달 수만 놓고 보면 한국과 무려 26개 차이가 났다. 한국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50개 미만을 기록한 것은 뉴델리 대회 이후 36년 만이었다. 세대교체 중이던 배드민턴에서 40년 만에 금메달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 등 충격파가 컸다.

대한민국 항저우아시안게임 출전 선수단 등 참석자들이 9월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제19회 항저우아시안게임 선수단 결단식’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뉴스1

한국·일본, 아시안게임 ‘2위’ 놓고 늘 숙명의 대결

체육계 관계자들은 이를 두고 “일본이 자국에서 열리는 도쿄올림픽(2021년 개최)을 앞두고 스포츠에 투자를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국이 아시안게임(1986년), 올림픽(1988년)을 연달아 유치하며 점진적으로 스포츠 인프라를 늘린 것과 비슷하다. 일본은 도쿄올림픽 때도 미국(금메달 39개), 중국(금메달 38개)에 이어 종합 3위(금메달 27개)에 올랐다. 올림픽 참가 사상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반면 한국은 금메달 숫자(6개)로 헝가리와 같은 공동 15위였다.

한국은 도쿄올림픽 때 양궁(4개), 펜싱(1개), 체조(1개)에서만 금메달을 땄다. 태권도·유도에서는 단 한 개의 금메달도 획득하지 못했다. 일본은 유도를 비롯해 탁구·복싱·체조·육상·농구·야구·소프트볼·레슬링·스케이트보드 등 다양한 종목에서 1위를 기록했다. 한국과 일본의 금메달 차이는 21개. 일본의 홈 어드밴티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격차다. 도쿄올림픽 이후 2년 만에 열리는 종합국제대회인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한·중·일 3국 중 꼴찌인 3위를 목표로 삼은 이유다.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목표 금메달 수를 45~50개로 잡았다.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와 얼추 비슷한 숫자다. 역시나 양궁·펜싱·태권도·소프트테니스 등 전통적으로 강했던 종목에 기대를 건다. 더불어 황선우 등 젊은 영자들이 포진한 수영에서도 깜짝 성적을 바란다.

수영 대표팀은 황선우, 김우진, 백인철 등을 앞세워 금메달 5개 안팎을 바라고 있다. 이번 대회 수영에는 총 41개 금메달이 걸려 있는데 한국이 기대한 성적을 거두려면 역시나 중국·일본을 꺾어야 한다. 2018년 대회 때는 일본이 중국과 똑같이 19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수영의 총 메달 수에서는 오히려 일본(52개)이 중국(50개)을 앞섰다. 한국은 단 한 개의 금메달(200m 여자 개인혼영 김서영)밖에 없었다.

한국은 태권도에서조차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장담할 수 없지만, 일본은 유도·가라테 등에서 꾸준히 성적을 내고 있다. 우상혁 정도에게만 기대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육상에서도 꽤 탄탄한 성적을 낸다. 2018년 대회 때도 금메달 6개(총 18개 메달)를 땄다.

축구·야구·농구·배구 등 구기 종목 등에서도 금메달 전망은 어둡다. ‘병역 혜택’이라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있으나 축구 전문가들은 이번 대회 8강도 장담하지 못한다고 내다본다. 야구 또한 국제대회 경험이 적은 24세 이하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어 성적에 물음표가 달린다. 김연경이 태극마크를 내려놓은 여자 배구의 경우 2006년 도하 대회 이후 처음으로 노메달 위기다. 아시안게임 전초전 격이었던 아시아선수권에서 사상 처음으로 4강 진출에 실패했다. 남녀 농구는 중국에 밀린다. 여자 핸드볼 정도만 금메달을 바라봐야 할 처지다. 하지만 핸드볼조차 현재 일본을 겨우 이기는 수준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딴 한국의 태극기가 금메달의 일본 일장기 옆에 게양돼 있다. ⓒ연합뉴스

일본, 2011년부터 기본계획 수립하고 선수들 육성

일본의 문부과학성은 2011년부터 5년 단위의 스포츠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국가전략으로서의 스포츠라는 정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사항들을 체계적으로 준비해 왔다. 2012년 제1기 계획(2012~16년), 2017년 제2기 계획(2017~21년)에 이어 2022년에는 제3기 계획(2022~26년)을 수립했다. 중장기 전략 아래 경기력 향상 지원 시스템을 확립해 올림픽에서 입상 가능한 수준으로 선수들을 키워왔고 그 성과가 도쿄올림픽에서 나왔다.

체계적인 시스템 아래에서 메달 입상 종목이 다양해진 점도 눈에 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는 13개 종목에서 메달을 땄는데, 도쿄올림픽 때는 입상 종목이 20개로 확대됐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1인 1기(1명당 1개의 스포츠)를 의무화하는 등 학생들의 ‘스포츠권’을 보장해준 것도 스포츠 저변 확대에 도움을 줬다. 일본은 제3기 계획에서 ‘스포츠를 통한 활력 있고 유대감이 강한 사회의 실현’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은 여러 시행착오 속에서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최근 열린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성적이 이를 방증한다. 체육회 쪽에서는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일본과의 금메달 격차를 10개 이내로 줄이면 2024년 파리올림픽 때 다시 아시아 2위 자리를 놓고 일본과 다툴 수 있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학생체육 전반을 아우르는 중장기적 스포츠 발전 정책 수립 없이는 치열했던 ‘한일전’의 역사는 그저 옛일이 될 수도 있다. 일본은 스포츠 저변이나 정책에서 저만치 앞서가 있다.

항저우아시안게임 선수단 본진은 9월20일 항저우행 비행기에 오른다. 대회가 끝나고 이들은 1년 후 열리는 파리올림픽의 희망을 품고 돌아올까, 아니면 2년 전 도쿄올림픽 때처럼 좌절의 아픔을 안고 돌아올까. 분명한 것은, 시민들은 메달이 아닌 피땀 어린 노력에 기꺼이 박수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항저우, 5년의 기다림이 다가오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