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엔 약 있지만 마약중독엔 약이 없다 [쓴소리 곧은 소리]
  • 박재상 국립법무병원 의료부장 (drpark1017@naver.com)
  • 승인 2023.09.16 16:05
  • 호수 1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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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범죄 잡으려 잠입수사하다 되레 중독된 경찰관의 비참한 생활
방송·인터넷 광고 등으로 성인·청소년에 끊임없이 위험성 경고해야

작년 10월, 우리나라 법무부 장관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옛말에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란 말이 있다. 상대를 알아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데 근래 들어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마약 관련 사건 앞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마약에 관해 제대로 알고 있는지 짚어볼 문제다.

마약은 이제 소수 특정 집단에서나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살이 쪄서 고민되는 여성에게는 ‘다이어트 약’으로, 몰려오는 잠과 싸우고 있는 수험생에게는 ‘졸음 방지약’으로, 피로에 지쳐 있는 택시기사나 직장인에게는 ‘피로회복제’로 알게 모르게 노출되어 중독(中毒)되어 가고 있다. 오죽하면 ‘마약김밥’이라는 해괴한 이름까지 스스럼없이 생겨났을까(한 외국인 지인은 ‘마약김밥’을 말 그대로 ‘마약이 들어간 김밥’으로 오해했다).

그러나 마약에 한 번이라도 노출된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더 깊은 중독에 빠져 피폐해지고 만다는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있다. 마약사범을 잡기 위해 오랜 기간 위장수사를 해오던 경찰이 마약상의 의심을 피하고자 스스로 마약을 투약하다가 오히려 중독이 되어버린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2000여 명이나 되는 마약사범을 검거하며 50여 차례 표창장을 받아 ‘마약 잡는 귀신 경찰’이라 알려져 있던 그는 현재 이혼당한 채 쇼크사한 아버지를 비롯해 다른 가족들과는 단절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알고 있는 마약 환자는 자신의 의지와 치료진의 노력과 가족 간 유대로 어렵사리 마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다른 마약 환자들에게 조언도 해주며 나름대로 열심히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고 있었는데 마약인지 아닌지 알아봐 달라는 요청을 받고 마약 감별을 해주다가 그만 다시 마약에 빠져들고 말았다. 진료실에서 마주하게 된 그는 ‘마약은 천형’이라며 울부짖었다.

그만큼 ‘한번 마약 중독자인 사람은 평생 마약 중독자일 수 있다’는 뜻이다. 성공적인 단주(알코올중독) 모임이나, 단약(마약중독) 모임에서는 매번 “나는 영원한 중독자다”라는 구호를 외치고 모임을 시작한다. 자신이 과거 중독자였기에 앞으로도 중독될 수 있다는 인식이 치료 및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이노공 법무부 차관(앞줄 가운데)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2022년 7월18일 충남 공주시 국립법무병원에서 열린 비전 선포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환자 의지, 치료진 노력, 가족 유대로 극복해야

마약을 하게 되면 뇌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활성이 증폭된다. 일명 ‘쾌락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도파민은 쾌감과 활력, 집중력과 창의성을 발휘하게 만든다. 도파민은 행복감을 느끼게도 해주지만, 적게 분비되면 집중력과 의욕이 저하되며 운동능력을 감소시키고, 반대로 과도하게 분비되면 정신병, 불안장애 등 정신질환이 야기된다. 도파민은 마약을 비롯해 니코틴, 카페인 등과 같은 중독물질(물질중독)뿐만 아니라 게임, 쇼핑, 스마트폰 및 SNS를 할 때(행위중독)나 성행위 시(성중독)에도 분비되는데, 좋지 않은 행동임을 아는데도 그것들을 통해 강력한 쾌감을 느끼게 되어 결국 중독에까지 이르게 된다. 중독에서 오는 쾌락은, 내성(동일한 효과를 누리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양의 약물을 필요로 함)이 동반되어 더욱더 강도 높은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 마약으로 인한 쾌락의 끝에는 결국, 고통과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한번 마약에 빠진 사람은 재발할 확률이 적어도 50% 이상이다. 일반적으로 중독환자들은 치료하기도 어렵고 설령 치료된다고 하더라도 환경(마약, 술, 담배, 도박, 섹스 등)에 노출되면 다시 재발하기 쉽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지난 4월 정부는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기존에는 마약사범에 관해 단기적으로 접근해 ‘엄벌 중심 정책’을 펼쳤다면 이번에는 장기적으로 마약을 ‘범죄이자 질병’이라 보고 ‘사전 예방교육’과 ‘사후 치료나 재활교육’을 통해 줄여 나가겠다고 한다. 젊은 층에서 마약이 급속도로 퍼져 나가는 현시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마약중독은 중독치료 전문가라 자부하는 정신과 의사들조차도 기피 대상 1호다. 조현병에는 약이 있으나 마약중독에는 뚜렷한 약이 없다. 중독자는 대개 자신이 중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술중독자가 알코올중독이라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마약중독자도 스스로가 마약을 조절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렇기에 치료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관리와 치료가 불가능한 질환은 아니다.

마약중독자가 급격히 퍼지고 있는데 전문적으로 마약중독자를 다루는 병원과 의료진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법무부의 국립법무병원과 보건복지부의 국립부곡병원 그리고 민간병원인 인천의 참사랑병원 정도가 제대로 된 마약치료를 감당하고 있다. 참사랑병원은 계속되는 적자로 인해 병원 문을 닫느니 마느니 하고 있다. 마약 환자에게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과 노력은 상당히 많지만, 거기에 따르는 의료수가는 제대로 책정되어 있지 않아 사명감만으로 버티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마약중독 다루는 전문병원·의료진 절대 부족

우리나라에서 마약은 생산, 유통, 판매(구매), 소지, 투약 모두가 불법이다. 마약 밀매의 순환 구조를 살펴본다면 ‘생산-유통-소비-재투자’의 사이클을 보이는데 이 중에서 소비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확실한 대책은 무엇보다 마약 교육을 통한 사전 예방이다. 병도 걸리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크듯이 마약에 노출되기 전에 교육을 통한 선제적 예방이야말로 마약 밀매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특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학교나 인터넷(요즘은 인터넷에 의한 파급효과가 크므로)을 통해 마약의 폐해에 관해 정확하게 교육해야 한다. 호기심으로 한번 했다가는 평생 폐인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야 한다. 마약을 접하지 않는 성인을 대상으로도 지속적인 홍보가 강화되어야 하겠다. 방송 또는 인터넷을 통한 공익광고도 한 방법일 수 있다. ‘담배가 폐암 발병을 유발한다’는 강력한 경고의 공익광고로 인해 흡연율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약에서 벗어난 줄 알았으나 재발된 경우 ‘나는 역시 안 되는 인간인가 보다’라며 좌절감에 빠져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필자는 ‘누구나 다 그럴 수 있으니 다시 시작합시다. 포기는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다시 시작한다면 끊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 준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재상 국립법무병원 의료부장

■박재상은 누구

정신의학을 전공한 의학박사이며 교회사를 전공한 목사이자 철학박사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학제 간 연구에 매진 중. 민족대표33인 근곡박동완기념사업회(사단법인)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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