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호남 포기’ 전략을 포기해야…국민 위에 군림하려고 해선 필패”
  • 이원석·김종일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3.09.26 07:35
  • 호수 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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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정현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委 부위원장 
“국민의힘, 호남에서 2석 이상 얻어야…여의도에서 나와 국민 속으로 들어가야 ‘문제 해결’할 수 있어”

총선이 200일 앞으로 훌쩍 다가오며 정치의 계절이 찾아왔지만 정작 정치는 실종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념 전쟁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 투쟁으로 상징되는 극단적 대치는 시간이 갈수록 더 가팔라지는 모습이다. 정치의 실종 상태에서 여야는 양극단의 강성 지지층에 휘둘리며, 유권자들이 정치를 외면하는 경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모두가 유불리와 판세만을 점치는 지금, 국민을 위한 정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까.

그래서 시사저널은 이정현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 부위원장을 찾았다. 이 부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역임했고, 여당 대표도 지냈다. 보수진영의 일원으로서 정치권력이라는 산의 정상에 올라봤고, 또 하산도 경험해본 그다. 정치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한 베테랑 중진 정치인인 그에게 총선을 앞두고 지금 정치권이 꼭 해야 할 일과 피해야 할 일을 들어봤다. 이 부위원장은 야당은 물론 자당을 향해서도 묵직한 메시지를 던졌다. 자신의 고향인 호남에 대해 토로할 때는 그의 진심과 열정이 느껴졌다. 인터뷰는 9월18일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서 진행됐다.

9월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 지방시대위원회에서 이정현 지방시대위원회 부위원장이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9월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 지방시대위원회에서 이정현 지방시대위원회 부위원장이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지금은 정치 부재의 시대…상대는 ‘적’이 아냐”

이재명 민주당 대표 단식 상황을 비롯해 일련의 정치 상황들을 두고 ‘정치가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저도 정치권에 오랫동안 몸담은 사람으로서 지금 정치, 정치력, 정치인 부재의 시대를 맞이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여야의 공동 책임이라고 본다. 다만 윤석열 정부 지난 1년4개월을 되돌아보면 민주당은 다수당의 의회권력을 가진 채 대선이 끝나자마자 대통령 퇴진을 얘기하고 장관 탄핵을 시도했고 최근 국무총리까지 몰아내겠다면서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통령 가족을 비난하면서 날을 세우지 않았나. 이는 대선 불복이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정상적인 정치가 싹틀 수 있겠나. 과거 어떤 야당 지도자 시절에도 이렇게 심각한 적은 없었다.”

여권의 잘못은 뭔가.

“대통령이 가급적이면 정치보다는 정책에 집중하고, 야당보다는 국민을 상대로 일하도록 여당은 야당을 라이벌이자 파트너로 대해야 한다. 정치 상대는 에너미(적)가 아니다. 여당이 지금 그 역할을 제대로 못 해주고 있어 안타깝다. 여당과 야당의 역할에 대한 분명한 인식의 차이가 있어야 한다. 집권하게 돼 여당이 되면 대통령의 공약을 실천하는 데 최고의 조력자가 돼야 하고, 국민 속에 들어가 의견을 듣고 정책화·입법화 노력을 해야 한다. 야당은 국민의 애로에 대해 정부·여당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게 역할이다. 극명한 차이다. 이제 국민의힘이 엄연한 여당이 됐음에도 자신들이 야당인 것처럼 내부적으로 대통령이나 서로를 비판하거나, 상대를 지나치게 공격하고 비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내년 총선 판세나 구도를 예측한다면.

“선거 전에 결과에 대한 전망을 하지 않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후보도 안 정해졌고, 선거구도 확정되지 않았는데 정치권이 유불리를 따지는 것 자체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선거 구도 면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중간 평가, 정권에 대한 심판의 성격도 있겠지만, 야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줬더니 대통령을 완전히 무기력하게 만들려는 기도(企圖)가 너무 다양하고 강하다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이 있을 거라고 본다. 앞서 언급한 대로 교만하게 야대(野大)의 칼을 휘둘러온 야당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 있지 않을까 싶다.”

핵심적인 변수가 있을까.

“중도다. 중도의 향배가 내년 총선의 결과를 좌우할 것이다. 중도는 지금 침묵하고 있다. 이른바 개딸(민주당 강성 지지층)이나 극우 세력은 많아봤자 각각 20%다. 이들은 시끄러운 소수다. 나머지 60%가 침묵하고 있는 다수다. 중도의 힘을 보여준 가장 큰 사례가 지난 대선의 정권교체라고 본다. 문재인 정권에서 대통령 지지율 40%에, 당시 민주당 차기 주자들의 지지율이 80% 가까이 되면서 정권교체 가능성은 제로 이하였지만, 7개월 만에 정권을 교체한 무서운 중도의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정치권이 알아야 한다. 뚜껑을 열기 전엔 아무도 판단할 수 없다.”

국민의힘은 지금 총선 대비를 잘하고 있다고 보나.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나 지금의 모습으로는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 선거에 이기고 싶다면 두 당 모두 어떤 형태로든 변화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답은 뻔하다. 국민들은 기득권을 갖고 있는 지금의 정당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변화는 불가피하고 변화를 선택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본다.”

총선 승리를 위해 국민의힘에 제언한다면.

“당을 현대화해야 한다. 정치인, 후보를 현대화해야 한다. 오래됐다고, 유명하다고 쓰면 안 된다. 정책도 현대화해야 한다. 또 국민 위에 군림하려고 해선 안 된다. 제일 잘못된 건 국민 속으로 들어가고 있지 않다는 거다. 무조건 여의도에서 나와 국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당 지도부가 언제든 지방에 있어야 한다. 아울러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건 193개 유엔 가입국 중 유일한 우리의 국민 구성이다. 불과 40~50년 사이에 대한민국이 후진국과 중진국, 선진국을 거치면서 각 세대가 태어난 환경이 다르다.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각 세대의 희망과 바람도 다르다. 서로 통역이 있어야 말이 통할 정도로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각 세대를 대변하고 통역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공천과 정책에 이 점이 반영돼야 한다.”

 

“‘호남·노동자·젊은 표는 비우호적’ 인식 깨야”

당내에서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 의중)’ 논란이 반복되면서 ‘용산(대통령실) 공천’에 대한 우려도 큰데.

“외교와 국정을 돌보느라 바쁜데 윤 대통령이 무슨 관여를 하겠나. 총선 개입과 관련해선 아직 근거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하지 못해, 또다시 여소야대가 되면 식물 대통령, 레임덕이 올 수 있는데 대통령 입장에서도 그저 바라만 볼 수 있겠나. 더군다나 대통령은 제1호 당원 아닌가. 대통령에게 바라만 보고 있으란 것 자체가 모순되는 말이다. 인적 물갈이나 정책에서 교감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진영에 대한 호남 민심은 어떻게 느끼고 있나. 과거에 비해 변화가 있다고 보나.

“호남에서 젊은 MZ세대를 포함해 합리적인 시민이 많이 불어나면서 변화의 조짐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호남의 민심이 변했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내년 선거에서 민주당 외에 다른 정당이 호남에서 당선될 수 있느냐를 쟁점으로 본다면 큰 변화는 없다고 본다. 선거는 한 표라도 상대방보다 더 얻어서 당선될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표만 좀 더 얻었다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민주당 외에) 다른 당에서 당선자가 나올 때 비로소 호남이 정치적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의힘이 호남 표심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와 당의 더 적극적인 서진(西進) 정책이 필요할까.

“저는 서진 정책이란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마치 군사작전 하듯 선거 때 맞춰 어떤 전략과 전술을 쓴다고 하는 건 그 자체로 지역민들로부터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성공할 수도 없다. 그 자체가 국민의힘으로 하여금 호남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거다. 일시적으로 호의를 베푼다고 호남 사람들이 마음을 열지 않는다. 모든 걸 떠나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다. 제대로 된 후보를 내야 한다. 민주당 후보가 8이면 9~10에 가까운 더 뛰어난 후보를 내서 선택받을 생각을 해야 한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내년 총선 때 호남에서 2석 이상만 얻는다면 국민의힘의 승리라고 본다.”

내년 총선에서 다시 호남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안다. 험지인 호남을 계속 두드리는 이유가 뭔가.

“호남에서 총선에 출마할 것이다. 지역구는 아직이다. 선거구가 확정되기 전까진 광주·전남 전체가 제 지역구라는 생각으로 뛸 것이다. 저는 보수정당 소속으로 호남을 단 한 번도 험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선거는 어디든 다 어렵다. 저는 전국 정당이 아니면서 집권당인 것은 온전한 집권 세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후보를 내고 전국 정당을 지향해야 하는데 보수정당들은 그동안 호남에 대해 사실상 포기해 왔던 게 사실이다. 아주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호남 포기 자체가 전국 정당을 포기한 것이고 집권을 하면서 상당한 결함을 갖고 출발한 것이다. 호남 포기 전략을 포기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국민의힘이 취해야 할 정치적 자세라고 본다.”

실제 국민의힘 내 호남에 대한 적대적 인식도 강한데.

“호남이 험지라고 느껴진다면 더 많은 지원과 더 많은 관심, 더 좋은 인물을 내세울 생각을 하는 것이 순서지 호남이 표를 안 준다고 투덜거리거나 그런 말을 다른 지역에 가서 하는 건 지역감정 조장이다. 호남 또는 노동자, 젊은 표는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다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가장 깨부숴야 할 구태다. 극복해야 한다.”

 

“尹 정부 인사, 널리 구하고 폭넓게 써야”

최경환 전 부총리, 우병우 전 민정수석, 안종범 전 경제수석 등 친박(親박근혜)계 인사들이 총선을 준비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서로 교감은 없나.

“먼저, 소위 친박계가 움직인다고 하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고 본다. 개별적으로 뛰어난 분이 많고, 정치를 해왔던 분들이 자격이 돼서 다시 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건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지 세력화에 대해선 들은 바가 없다. 그렇게 가지도 않을 거라고 본다. 친박계는 동교동(DJ)·상도동(YS)·친이계(MB) 등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책과 신념, 의지, 이런 것이 좋아서 스스로 왔다가 또 싫으면 떠나는 게 친박계다. 어떤 결사체나 조직체가 아니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모여 ‘무언가를 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최근 유인촌 문체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비롯해 이동관 방통위원장 임명 등 MB(이명박) 정권의 인사들이 다시 쓰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데.

“인재를 널리 구하고 폭넓게 쓰려는 노력은 다양화·다원화된 세상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어떤 대통령은 관련 분야 인사들에게 9명을 추천받고, 또 다른 팀에 그들 중 3명을 골라 달라 하고, 또 다른 팀에 그중 1명을 고르게 해 그 사람을 임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임명 후에는 전적으로 다 맡겼다고 한다. 최고를 찾고 다 맡기는 인사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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