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애, 아직 ‘후계자’는 아니지만 ‘후계수업’은 맞을 수도
  • 이영종 뉴스핌 통일전문기자(북한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24 10:05
  • 호수 177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어린 나이 등은 큰 걸림돌 안 돼
“한때 후계 1순위 꼽히던 김여정 힘 빠진 건 확실”

이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길에 동행한 여동생 김여정의 존재감은 확 떨어졌다. 카메라 앵글 속에서 그녀의 모습을 찾기는 어려웠다. 공식 수행원 그룹과 한참 벗어난 거리에서 초점을 벗어난 장면이 가끔 포착됐다. 한때 북한 최고권력자 김정은의 후계 1순위로까지 꼽히던 위상과는 차이가 확연해진 것이다.

북·러 정상회담이 열린 9월13일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미리 기다리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환영을 받은 후 방명록에 서명하는 김정은의 곁에서 몽블랑 펜을 챙긴 건 노동당 부부장 김여정이었다. 푸틴이 준비한 공식 연회에도 김여정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어찌 보면 의전을 전담하는 현송월 당 부부장과 별반 차이가 없는 존재감에 머물렀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과 이듬해 2월 하노이 회담 때도 김여정은 오빠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의전을 도왔지만, 그때는 회담 준비를 주도하는 듯한 최고 실세로서의 모습이 역력했다. 취재진과 현장 관계자의 이목을 한눈에 끌던 그였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의 3차례 정상회담 때도 마찬가지다.

9월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딸 주애가 참석한 가운데 9ㆍ9절 열병식이 열렸다. ⓒ연합뉴스

김주애, 숨고르기 후 재등장해 김정은과 나란히

김여정의 지위에 이런 변화가 생긴 건 지난해 11월 조카인 김주애가 전면에 등장하면서다. 10세 정도로 우리 정보 당국이 추정하는 김주애는 아버지인 김정은의 손을 잡고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장인 평양 순안비행장 활주로를 거닐었다. 북한의 관영 선전매체들은 무더기로 사진을 쏟아내며 김주애를 띄웠다.

급기야 김주애가 후계자로 점쳐진다는 한국과 서방의 언론보도와 일부 전문가 진단까지 나왔다. “후계자는 아닐 것”이란 국가정보원의 국회 정보위 보고와 “젊은 김정은이 후계를 조기 거론해 권력을 누수시킨다는 건 상식 밖”이란 신중론도 묻혀버릴 정도다. 무엇보다 김주애를 동행시키며 애드벌룬을 띄우는 듯한 김정은의 의중에 관심이 쏠렸다.

딸 주애를 내세우는 김정은의 행보는 후계 구축 움직임으로 읽힐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것도 사실이다. 단순히 자신을 쏙 빼닮은 딸을 자랑하려는 ‘딸 바보’ 차원이라면 군 열병식의 가운데 자리에 앉히고 “존귀하신 자제분”과 같은 존칭까지 관영매체들이 쓰도록 하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란 점에서다.

자칫 자신의 권력 누수로 치닫거나 해석될 수 있는 후계 문제라는 부담까지 떠안으며 딸을 챙길 이유는 없어 보인다는 게 대북 정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특히 최우선 후계자로 꼽히던 김여정의 위상을 굳이 깎아내리는 듯한 모양새를 취한 건 김주애 띄우기의 배경이 단순치 않음을 암시한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첫 등장 이후 김주애의 공개 석상 등장 패턴이나 이미지 연출 전략을 분석해 봐도 김정은과 북한 권력 핵심부의 치밀한 계획이 깔려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김주애는 △미사일·위성 시험발사 △군 열병식 참관 △체육경기 관람 등의 일정을 김정은과 함께했지만, 5월16일 군사정찰위성 발사준비위원회 방문 이후 석 달 넘게 잠적했다. 과도한 노출에 따른 부작용을 점검하고 엘리트와 주민의 반응을 살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군절을 맞아 8월28일 해군사령부를 방문한 김정은은 딸 주애를 재등장시켰다. 10대 초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훌쩍 성숙해진 스타일로 나온 김주애는 김정은의 바로 곁을 지켰고 군 고위 간부들의 의전을 한 몸에 받았다. 부인 이설주도 중심에서 밀려났고, 여동생 김여정은 당 간부나 수행원 수준으로 비칠 법한 모습이 포착됐다.

물론 이런 정황에도 현재로서는 김정은이 김주애를 후계자로 낙점했거나 내정했다고 볼 수 있는 결정적 근거가 없다. 폐쇄적 체제 특성상 은밀한 권력 후계 문제가 바깥 세상에 공개되기는 어렵다. 노동신문 등을 통해 “혁명의 계승” 운운하는 암시라도 나온다면 분위기가 감지될 수 있겠지만 징후는 아직 드러나지 않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뇌졸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2008년 여름 이후 아들 김정은(당시 24세)을 후계자로 최종 낙점했고, 결국 3년 후 숨졌다. 또 김일성 주석은 아들 김정일이 22세 되던 1974년 2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그를 후계자로 내정했다. 만일 39세 김정은이 어린 딸에게 서둘러 후계수업을 시켜야 할 사정이 생겼다면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거나 통치에 어려움이 있을 모종의 내밀한 사정이 생겼다는 얘기가 된다.

ⓒ연합뉴스
9월8일 열병식 중 박정천 당 군정지도부장이 한쪽 무릎을 꿇고 김주애와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미래세대의 상징이나 이미지 메이커” 의견도

한미 정보 당국과 전문가 그룹이 김주애 등장을 두고 “주목되는 행동이지만 후계 문제로 보긴 어렵다”고 입을 모으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대북 정보 관계자는 “아직은 후계자로서가 아닌 ‘미래세대’의 상징이나 이미지 메이커 정도로 보는 게 맞다”고 귀띔했다. 김정은이 미사일 시험발사 현장에 김주애를 동행시키면서 “핵과 미사일 개발에 힘을 쏟는 건 어린 세대들의 미래를 위해서다”라고 강변하는 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는 얘기다.

김정은이 딸 주애를 후계자 차원에서 등장시켰다면 러시아 방문 일정에 동행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교 무대에 당장 내세우기는 어렵더라도 푸틴과의 만남에 동반하거나 보스토치니 우주센터 참관이나 블라디보스토크 북한 유학생과의 면담 자리 등에는 자리하도록 했을 것이란 의미에서다.

한미 정보 당국의 판단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수집된 휴민트(humint) 등 대북 첩보와 감청 정보 등을 종합한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김주애의 후계자 지위 가능성을 아직은 낮게 보면서도 ‘현재까지는’이란 단서가 붙어있다는 점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주애가 여성이기 때문에 후계자가 되기 어려울 것이란 통념도 맞지 않는다. 북한은 내부 자료에서 후계자의 자격과 관련해 ‘그가 수령의 풍모를 닮고 자질을 갖췄다면 남자이던 여자이던 상관없다’는 논리를 이미 세워뒀기 때문이다. 한 고위 탈북 인사는 “김일성대학에서는 학부 때 이미 후계자론을 가르치기 때문에 엘리트 계층은 물론 주민도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애의 어린 나이 또한 김정은의 전례로 볼 때 큰 문제가 되지 않아 보인다.

결국 관건은 김정은의 의중과 결심이다. 봉건 왕조의 세습 과정은 물론 기업이나 문중의 가업 계승도 결국 결정권자가 내리는 고독한 선택에 의해 좌우된다. 후계자로 최종 낙점되는 과정에서 “믿을 건 핏줄뿐”이란 북한 권력의 정서를 스스로 체감했을 김정은의 향후 선택이 주목된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