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증오와 혐오를 파는 ‘유튜브 정치’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kjm@jbnu.ac.kr)
  • 승인 2023.10.06 17:05
  • 호수 1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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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 대선에서 유튜브가 동영상 중심으로 ‘보고 느끼는’ 이미지와 감성 중심의 정치담론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만든 걸 가리켜 ‘정치의 유튜브화(Youtube-ification of politics)’라는 말이 등장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다른 나라들도 크게 다를 건 없겠지만 한국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자면, 증오·혐오의 선전·선동이 정치의 주요 콘텐츠와 소구점이 된 걸 가리켜 ‘정치의 유튜브화’라고 말하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증오·혐오는 대중정치의 탄생 이래로 정당이나 정치인이 지지자들을 확보하고 동원하는 주요 메뉴이긴 했지만, 어느 정도 사회적 통제하에 놓여 있었다. 주요 언론매체는 나름의 정파적 편향성을 갖고 있을지라도 권위·신뢰·품위라는 상징 자본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감히 증오·혐오를 직접적·노골적으로 팔아먹을 생각은 하지 않았으며, 정당과 정치인의 그런 시도도 방관하지 않고 비판하는 최소한의 윤리와 양식은 갖고 있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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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통해 뉴스 접속” 한국인 53%, 세계 평균 30%

수용자들도 그런 윤리와 양식을 공유하고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수용자 의식을 포함해 수요 측면의 기존 질서를 깨뜨리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를 이끈 주범이 바로 유튜브다. 어떤 새로운 매체 기술이 법적 규제의 대상이 되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이게 바로 유튜브가 누린 최대 경쟁력의 원천이었다. 기존 언론매체는 비교적 엄격한 규제하에 놓인 반면, 유튜브는 거의 완전한 자유를 누렸고 이게 바로 수용자들을 사로잡은 비결이었다.

‘디지털뉴스 리포트 2023 한국’에 따르면 한국에서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비율은 약 53%로 46개국 평균인 30%에 비해 훨씬 높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건 바로 정치뉴스·평론의 ‘예비군복 효과’다. ‘예비군복 효과’는 “멀쩡한 사람도 예비군복만 입으면 모두 개가 된다”는 속설을 가리켜 나온 말이다. 그 이유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지만, 중요한 건 언론인, 유튜버, 정치평론가를 포함한 사람들 다수에게 유튜브를 예비군복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유튜브 출연자나 제작자는 “누구나 다 거칠게 말하는 공간인데, 뭐 어때?”라는 심리 상태에 빠져드는 것 같다. 그래서 사석에서도 잘 쓰지 않는 거친 표현으로 노골적인 정파성을 드러내 강성 지지자들을 만족시킴으로써 사실상 증오·혐오를 부추기는 걸 마다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9월11일 “정당 뉴스, 국민은 TV로 보는데 민주당원들은 유튜브로 본다”는 제목의 시사저널 기사는 의미심장하다. 유튜브 선호는 국민의힘 당원들도 비슷할 것이기에, 이는 상호 소통이 불가능한 정치적 양극화의 고착화를 시사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기존 언론사들은 ‘유튜브 시대 생존전략’의 일환으로 유튜브를 보완매체로 활용하면서 가장 잘 팔리는 정치적 갈등의 판매에 뛰어들기도 하지만, 윤리와 체면마저 완전히 내던질 수는 없어 ‘장사’를 하는 데엔 명백한 한계가 있다. 유튜브의 여러 장점을 살리는 좋은 유튜브 채널이 꽤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전망은 밝지 않다.

유튜브 규제가 강화된다 해도 이미 수년간 규제의 무풍지대에서 형성된 매체 이용 행태, 즉 ‘증오·혐오를 찾는 수요’는 ‘정치의 전쟁화’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실력은 없고 싸움질만 잘하는 정치인들이 득세해 그런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다. 그런 증오·혐오가 말과 글에만 머무를 뿐 물리적 폭력으로 나타나진 않는다는 점에 안도하며 감사해야 하는 걸까?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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