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무대로 소환한 K팝 걸그룹의 조상들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1.05 11:05
  • 호수 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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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저고리시스터’부터 1970년대 ‘희자매’까지…‘쇼 뮤지컬’ 형식으로 재조명한 《시스터즈》 주목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위치한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는 현재 흥미로운 뮤지컬이 하나 공연 중이다. 지난 9월 개막해 11월11일 폐막을 앞두고 있는 뮤지컬 《시스터즈(SheStars!)》가 그 주인공이다. ‘쇼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표방하는 《시스터즈》는 한류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K팝 걸그룹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조명하고 있다.

창작진으로 참여한 박칼린 연출가와 전수양 작가는 이 작품의 최초 아이디어를 십여 년 전부터 함께 개발하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사료를 발굴했으며, 이를 종합해 대본화하고 무대 언어로 치환하는 작업을 했다. 그래서일까. 대학로 공연의 주 관람층은 2030 젊은 층이지만, 이곳에는 머리가 희끗한 중장년층이 객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시대별로 재현된 걸그룹의 역사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 최초 걸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1930년대 ‘저고리시스터’를 시작으로 1950년대 미국 진출로 한류의 원조를 이끈 ‘김시스터즈’, 1960년대 CM송 여왕이었던 ‘이시스터즈’, 베트남 위문공연으로 유명한 윤복희의 ‘코리아키튼즈’, 1970년대 비주얼 자매 ‘바니걸스’, 인순이가 데뷔한 혼혈그룹 ‘희자매’ 등 걸그룹이 공통적으로 시스터(자매)라는 팀이름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그리고 제목은 ‘Sister’와 발음이 유사한 ‘SheStars’로 시대를 초월해 대중문화의 최전선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해온 여성들의 성공담과 유대감을 표현하고 있다.

무대에는 저고리시스터와 희자매(인순이) 등 총 6팀의 걸그룹이 시대별로 등장해 각각의 탄생 비화, 스타덤에 오르는 과정, 전성기 대표곡을 10인조 라이브 밴드의 연주에 맞춰 재현한다.

1932년 오케(OKEH) 레코드사 설립자 이철이 운영하는 조선악극단이 당대 유명 여가수를 모아 프로젝트팀으로 결성된 저고리시스터가 가장 먼저 소개된다. 여기에는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을 필두로 《오빠는 풍각쟁이야》의 박향림, 《연락선은 떠난다》의 장세정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당시 시대 상황에서 일본 고관대작들 앞에서 군국가요를 불러야 했지만, 그 사이에 금지된 아리랑 곡조를 끼워넣으면서 나라 잃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관객들에게 무대의상인 저고리와 함께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두 번째 팀은 해방이 되고 혼란기 속에 터진 한국전쟁으로 힘들게 순회공연을 하던 이난영이 함께 데리고 다녔던 딸들을 키워 데뷔시킨 김시스터즈다. 친딸인 김숙자, 김애자 그리고 조카 이민자 등 3인조로 구성된 이들은 이난영으로부터 도제식 연희 교육을 받고 나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오늘날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지는 아이돌그룹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미8군 무대의 인기를 기반으로 1959년 우리나라 걸그룹 최초로 미국에 진출해 라스베이거스 공연을 가졌고, 애드 설리번 TV쇼에도 무려 22번이나 출연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이미 시스터라는 이름을 달고 많은 걸그룹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차별 포인트로 노래와 춤은 물론이고 직접 악기 연주까지 하면서 무대를 장악했다.

세 번째 팀은 주한미군의 클럽 공연 무대가 월남전을 맞아 베트남 위문공연과 미군이 주둔하는 동남아 전역으로 확대되는 분위기 속에서 결성된 코리아키튼즈다. 이를 주도한 사람은 1963년 미8군 에이원 쇼단으로 해외공연을 떠났던 윤복희로, 이듬해 싱가포르에서 무용수(서미선, 김미자, 이정자)들과 함께 자신이 메인보컬을 맡은 걸그룹을 결성하고 영국과 미국 TV쇼와 베트남 위문공연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무대에서는 이후 솔로 활동에 나서 현재까지도 가수와 뮤지컬 활동을 하고 있는 윤복희의 육성을 들려준다.

네 번째는 당시 대형 기획사 화양에서 걸그룹 트리오를 론칭하기 위한 오디션에 합격한 수도여고 3학년 김명자를 중심으로 결성된 이시스터즈(김명자, 김천숙, 이정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의 힛트곡은 번안가요 《워싱톤 광장》과 수많은 라디오 CM송을 거쳐 《울릉도 트위스트》로 대박을 낸다. 이 작품 안에서도 가장 흥겨운 장면으로 펼쳐진다. 특히 이 노래는 당시 전후 경제를 재건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였기에 신나는 트위스트 리듬의 밝고 경쾌한 노래가 국가적으로도 장려됐는데 그러한 분위기를 타고 큰 인기를 끌었다.

다섯 번째는 라디오에서 TV로 대중매체가 옮겨오며 본격적인 비주얼 시대가 시작된 1970년대를 풍미한 부산 출신 미모의 쌍둥이 자매 바니걸즈(고정숙, 고재숙)의 차례다. 이들은 1973~74년에 TBC 7대가수상, MBC 10대가수상, KBS 가요대상 중창단 부문 등 당시 3대 방송사의 시상식을 휩쓸었다. 극 중에서는 한 몸과도 같았던 언니가 타계하고 홀로 남은 동생이 올해 솔로 앨범을 발표하는 이야기까지 보여준다.

 

11월12일까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

마지막은 가수 인순이로 잘 알려진 김인순이 몸담았던 걸그룹 희자매의 이야기다. 1978년 결성된 희자매(인순이, 김영숙, 김재희)는 혼혈인으로만 구성된 팀이었다. 김인순 역시 흑인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 어두운 얼굴색과 흑인 특유의 머리카락 때문에 외모로 인한 대인기피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이를 극복하고 오히려 개성으로 스타덤에 오르게 되고 솔로 활동으로 더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유신시대에 항거하는 여공들의 모습과 펄시스터즈의 노래 《커피한잔》이 교차되는 장면을 통해서는 동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는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것은 6명의 여배우가 각각의 그룹에서 중심인물을 맡아 연기하면서도 나머지 멤버들의 역할도 다역으로 소화해 낸다는 점이다. 게다가 회차별로 각각의 배우들이 연기하는 그룹도 바뀐다. 여러 번 관람해도 매번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구성이다. 작품 전체의 해설자이자 흥행사, 프로듀서로 활약하는 유일한 남자 배우(황성현)는 마치 교양강좌를 진행하듯이 관객들에게 관련 영상과 함께 시대상과 각종 정보를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역할을 한다.

뮤지컬 《시스터즈》는 시대를 망라하는 한국의 대중음악에 관한 창작뮤지컬이어서 객석에는 부모님과 함께 관람하러 온 자녀도 많다. 과거 걸그룹의 인기 비결과 성공에 이르는 과정은 현재와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래하고 춤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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