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컷은 페미고, 페미는 맞아야 한다고? [김동진의 다른 시선]
  • 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1.21 13:05
  • 호수 1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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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머리 여성이 남성에게 당한 무차별 폭행에 경악
우리 사회의 성별 고정관념 및 편견 여실히 드러내

한밤중, 조용할 것 같은 편의점에서 예기치 않은 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11월4일 새벽 경남 진주의 한 편의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술에 취한 20대 남성이 상품을 마구 던지며 소란을 일으켰고, 이를 막으려던 20대 여성 직원은 갑작스럽게 폭행을 당했다. 이 남성은 편의점 직원의 짧은 머리카락에 대해 ‘머리가 짧은 걸 보니 페미니스트’라며, ‘나는 남성연대인데 페미니스트는 좀 맞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 옆에서 이를 말리던 50대 남성에게는 ‘남성이 남성을 도와야지 왜 끼어드느냐’며 폭행을 이어갔다.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폭행을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 혹은 성적 괴롭힘을 포함한 각종 괴롭힘 등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일은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필자 역시 여성으로서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이번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이 사건이 보도된 이후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이 충격을 받았으며, 진주 지역 여성단체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 범죄를 명백한 여성혐오 범죄로 규정하고 대책을 촉구했다. 또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피해자에게 연대하고, 이 사건과 같은 페미니즘 백래시에 맞서는 의미로 온라인에서 ‘#여성_숏컷_캠페인’이 빠르게 퍼져가고 있다.

이 사건은 명백한 여성혐오 범죄다. 만일 어떤 이들이 이 범죄가 왜 여성혐오 범죄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는 지금까지 대한민국 사회의 일원으로 사회화되어 살아오면서 의식·무의식중에 학습한 성별 고정관념 및 편견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숏컷을 한 여성은 페미니스트이며, 페미니스트는 때려야 한다는 위와 같은 비합리적인 신념에 기저하는 성별 고정관념은 무엇일까? 일단 우리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에게 머리카락 길이가 갖는 의미가 무엇일지부터 생각해 보자.

ⓒX 캡쳐(과거 트위터)
SNS에서 전개되고 있는 ‘여성 숏컷 캠페인’ ⓒX 캡쳐(과거 트위터)

이분법적 사고방식 자체가 비합리적

얼마 전 지정 성별이 남성인 필자의 지인이 자신의 SNS에 자신의 헤어스타일 뒷모습을 사진 찍어 올렸다. 그는 어깨 아래로 내려오는 길이로 머리카락을 기르고 다녔는데, 지인들이 집게핀을 추천했다면서 집게핀으로 머리를 틀어올린 뒷모습 사진을 올렸다. 머리카락 길이에 관한 성별 고정관념을 해체하고자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이 사회에서 사회화되어 살아오고 있는 인간이기에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사진을 보고 들었던 첫 번째 느낌이 ‘어머, 뒷모습은 꼭 여자 같다’였으니.

그런데 사실 우리 주변에 머리카락 길이가 긴 남성도 찾아볼 수 있다. 어깨 아래로 내려올 만큼 긴 길이가 아니어도 어깨 위의 단발 길이, 혹은 약간 긴 정도의 숏컷 스타일을 한 남성들은 길을 걷다가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또한 남성 배우나 가수 등 연예인은 어떤가. 전인권에서 시작해 윤도현, 김경호 같은 장발의 남성 로커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너무 많아 다 열거할 수도 없다. 또한 남성적인 매력으로 어필하는 배우 김우빈이 어깨 아래로 내려오는 길이의 긴 머리를 하고 찍은 화보 사진을 SNS에 올리자 91만 개가 넘게 ‘좋아요’가 달리기도 했다.

이렇듯 머리카락 길이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도 아니며 사람마다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기에, 머리카락 길이로 인간의 성별을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해진다. 단지 머리카락 길이가 짧은 남성의 수가 더 많다는 이유만으로는, 머리카락 길이가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러니 우리가 필자의 지인과 같은 경우처럼 머리카락 길이가 긴 남성을 볼 때 누구나 ‘여자인가’ 하며 흠칫하는 것은 머리카락 길이와 관련된 뿌리 깊은 고정관념이 우리 모두의 의식·무의식 속에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머리카락 길이와 여성 집단에 관해 생각해 보자. 특히 위 범죄 사건의 남성 가해자는 ‘머리가 짧으면 페미’라고 했다. 일단 애초에 여성이라는 거대 집단을 ‘페미니스트’와 ‘페미니스트가 아닌’ 여성의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는 이분법적 사고방식 자체가 비합리적이다.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벨 훅스의 정의를 빌려오자면 페미니즘이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 및 억압을 끝내기 위한 운동’이다.

 

숏컷 여성 폭행은 엄연한 여성혐오 범죄

그런데 여성들 가운데서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고 모든 종류의 성차별주의에 대항하는 일을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혹은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 있는 여성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여성들도 있다. 예컨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인정하지는 않지만 직장에서 여성으로서 부당한 경험을 했을 때 문제 제기를 하거나, 일상생활에서 남성 배우자나 시부모와의 가부장적인 관계를 바꿔보려는 노력을 하는 여성들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런 여성들은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인가? 직장과 가정에서 성차별주의를 없애기 위해 행동한다는 측면에서는 페미니스트의 정의에 부합한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그 여성은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인가? 페미니스트와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의 기준은 도대체 누가 정하는 것인가? 과연 그 집단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이에 더해, 숏컷의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위 사건의 남성 가해자는 ‘숏컷’이란 표현을 썼다. 이는 2021년 안산 선수의 사례를 생각나게 한다. 대한민국 올림픽 양궁 역사상 최초로 단일대회 3관왕의 금메달리스트인 안산 선수에게, 머리가 숏컷인 것을 보니 ‘페미’가 틀림없다며 남성 누리꾼들이 비난을 퍼붓고 공격했던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다. 일단 숏컷이면 페미라는 여성혐오적 사고방식 및 그에 따른 언행은 뿌리 깊은 고정관념에서 온 것이다. 즉 ‘여자라면 긴 머리를 해야지’라는 성별 고정관념이다. 흔히 우리가 ‘원래 그런 것’이라고 퉁치는 많은 것이 이런 고정관념에 해당한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본다면, 왜 꼭 여성은 긴 머리를 하고 반대로 남성은 짧은 머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객관적·과학적·합리적·이성적인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그저 사회적 통념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그저 ‘통념’이기에 무비판적으로 따르고 있는 성별 고정관념이 매우 많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것에 질문을 던져본다면 알 수 있다.

위 사건의 남성 가해자는 ‘나는 남성연대인데 페미니스트는 맞아야 한다’고 했다. 페미니스트든, 여성이든, 그 어떤 인간이든 맞아야 하는 존재란 없다. 오히려 엄중히 처벌해야 할 것은 위와 같은 여성혐오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다. 또한 남성연대라는 커뮤니티에 대해서도 이 기회에 면밀히 조사해,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여성혐오를 확대 재생산하는 커뮤니티가 이 사회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와 같은 범죄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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