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당사자 아닌 관련 기관·업계로 흘러간 저출산 예산
  • 김원식 건국대 명예교수, Georgia State University 객원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1.20 11:05
  • 호수 1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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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예산 2006년 2조원→2022년 51조원으로 늘었는데 출산율은 1.13→0.78 수직 추락

국회예산정책처 발표에 의하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발표를 기준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포함한 저출산 예산이 2006년 2조1000억원에서 2022년 51조7000억원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출산율은 1.13명에서 0.78명으로 하락했다. 3.0 이상이던 출산율이 1977년 2.99로 2명대로 떨어지고, 1984년 1.74로 1명대로, 그리고 0명대로 떨어지면서 사실상 되돌릴 수 없는 출산율 하락에 직면하고 있다. 1970년 101만 명의 출생아 수는 지난해 25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성장과 반대되는 축소 지향형 국가가 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식적으로 소멸국가로 분류된 한국

해외 학자들도 공식적으로 우리나라를 소멸국가군의 하나로 보고 있다. 저출산 예산의 대폭적인 증가에도 출산율이 하락하고 출생아 수가 감소하는 것은 예산을 통한 저출산 정책의 약발이 없기 때문이다. 

예산은 국민들이 피땀으로 힘들게 벌어서 납부한 세금이다. 의례적이고 관습적인 저출산 예산의 증액이 낳은 참사다. 말로만 저출산 정책이었을 뿐이다. 추정컨대 대부분의 예산은 정작 필요한 출산 당사자들에게 돌아갔다기보다 출산 관련 업계나 공공과 민간의 이해당사자들에게 간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빈곤층을 보호한다고 엄청난 예산을 지출하면서도 빈곤층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첫째, 출산율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문제다. 출산을 돈만 주면 나오는 자판기로 생각하고 있다. 중앙정부도 지방정부도 내용을 알면서도 수십 년 동안 예산 타령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출산과 고령화의 위기가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상태에서 지출 효과에 관계없이 저출산 명목만큼 명분 있는 예산이 없다. 지금이라도 효과 있는 저출산 예산을 명확히 구분해 내고 국민에게 솔직한 예산을 보이는 것이 좋다. 시대 변화에 따라 청년층의 출산 의욕을 고취시키는 창의적 유인 정책 없이는 출산율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하락할 것이다.

둘째, 청년 정책과 저출산 정책의 괴리가 크다. 출산은 다른 세대가 누릴 수 없는 청년 고유의 특권이다. 청년 정책은 어떤 형태로든 출산 및 양육과 관련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청년 정책에는 저출산 해소를 위한 요소가 없고 저출산 정책에는 청년 정책이 없다. 게다가 개별법이나 시행령이 정하는 청년 정책의 대상이 15세부터 45세까지로 사실상 청년 아닌 청년이 대상인 경우가 많다. 청년 정책은 대상을 넓혀서 예산을 확보하는 수단일 뿐 청년의 진정한 니즈를 맞추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셋째, 저출산 정책과 고령화 정책은 전혀 다른 성격임에도 같은 유형의 것으로 일반화시키고 예산 확보에 있어서도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며 경쟁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청년 정책의 시야는 청년들이 앞으로 살아갈 모든 기간의 문제를 정책 기간으로 해야 한다. 반면 노인 정책의 시야는 노인들의 여명 기간 동안으로 상대적으로 짧을 수밖에 없고 내용도 그들이 안정적인 노후를 건강하게 보내는 데 그친다. 청년 정책에 있어 단순히 취업만 시키면 정부의 모든 책임을 다한 것이고 여타 문제는 부수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넷째, 1995년 이후 출생한 현재의 20대 청년들은 Z세대라고 한다. 이들은 1980년 이후 출생해 이미 중년에 이른 밀레니얼 세대와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이들을 MZ세대라고 뭉뚱그린 퍼주기 정책을 펴고 있다. Z세대는 zoom세대라고도 하고 www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전 세대는 인터넷도 없었고 가르칠 수도 없어 혼자 글로벌 정보화에 적응하고 성장한 세대다. 이들은 웹상의 모든 정보를 수집·분석해 완전한 예측력으로 스스로 결정한다. 기성세대가 제공하는 전통적이고 단편적 저출산 정책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출산은 청년세대가 누릴 수 있는 고유 특권

이제는 단시안적 청년 정책을 출산율을 제고하는 복합적 청년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많은 자치단체가 출산장려금을 주고 있다. 하물며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10조는 아동을 위한 200만원의 첫만남 이용권을 줄 수 있도록 법률로 정하고 있다. 합리적인 부부라면 200만원을 준다고 출산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나라 출산 정책의 현주소다.

효과는 없지만 정부의 애타는 노력에도 결혼한 부부로서 자녀를 낳지 않는 이유를 다방면으로 살펴 근본적 처방을 내려야 한다.

첫째, 자녀의 먼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공교육의 질은 점점 떨어지고, 사교육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청년 자신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연령도 평균 30세가 넘었다. 출산하면 적어도 30년 동안 자녀를 부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선진국은 우리 어린이들보다 1년 더 일찍 정규 학교에 가고 조기교육도 일반화돼 20대 초반에 사회에 진출한다. 자녀 독립 시점을 크게 낮추어야 출산 부담이 덜어진다. 게다가 자신의 자녀가 노인들을 위해 천문학적 적자 수준의 연금에 보험료를 갖다 바치는 불쏘시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출산 의욕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둘째, 자녀 양육 환경이 더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집값은 월급쟁이가 평생 저축해도 못 마련하는 수준이고, 설령 집을 마련해도 자녀들을 키우는 데 비좁기 그지없다. 국민주택 수준의 넓이로 두셋 이상의 아이를 키울 수 없다. 이를 생각하면 아무리 많은 출산지원금을 준다고 해도 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공공주택은 자녀 수에 따라 규모를 넓혀줄 수 있는 정책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

셋째, 건강하게 자녀를 키우려는 출산 부부의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환경오염, 노산 등으로 기형아 출산의 걱정이 많고, 성장 과정에도 많은 진료비가 들 수밖에 없는 질환 가능성도 크다. 자녀의 건강과 장애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출산은 결과적으로 경제적 파탄으로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정부는 자녀의 성장 과정에서 건강한 성장을 보장해줄 수 있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교육 시스템까지 갖춘 장기진료 어린이전문병원 등을 자치단체별로 설립하고 경제 사정에 따라 무상진료도 가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출산의 가장 큰 부담은 남성 대비 여성의 기회비용이다. 프린스턴대학교의 Kleven 교수팀(2023)은 우리나라 여성의 출산 페널티를 분석 대상 134개국 가운데 가장 큰 수준으로 추정했다. 지금까지 우리 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졌다고 하지만 출산만 하면 그렇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출산 당사자들의 사회적 피해의식이 줄지 않으면 출산율은 결코 회복되지 않는다. 농업사회에서 산업화가 진전될수록 출산 페널티가 더 커진다. 여성들의 사회경제적 페널티를 줄이는 혁신적이고 끊임없는 노력 없이 국가적 소멸은 피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임에도 역설적으로 인구가 자원인 세상이다. 저출산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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