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의 치욕 ‘위성정당 선거법’을 수술하라 [쓴소리 곧은 소리]
  •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db827@naver.com)
  • 승인 2023.11.17 16:05
  • 호수 1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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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민주당 원로 유인태가 “천벌 받을 짓”이라고 한탄했겠나
송영길 등 비리 의혹 대상자들의 정치 재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어

국회는 2019년 12월 민주당과 범여 군소 정당들의 주도로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면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했다. 연동형은 지역구에서 의석수를 정당 득표율만큼 채우지 못할 경우 의석을 정당 득표율만큼 채워주는 제도다. 전체 의석(300석)이 아닌 비례대표 의석(47석)에 대해서만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배분했던 기존 병립형 비례대표제보다 ‘비례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였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제189조 제2항에선 정당이 받은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수를 산출한 후 그 의석수의 50%를 각 정당 의석으로 배분하는 방식을 규정하고 있다. 100% 배분이 아닌 50%이기 때문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불린다. 또 연동률 50%를 비례대표 47석 가운데 30석에만 적용하기로 상한선도 설정했다. 나머지 17석은 기존 병립형 방식으로 정당 득표율에 따라 단순 배분하기로 했다.

이런 선거제 개편의 취지는 비례성을 강화해 소수 정당의 국회 진출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거대 양당은 지역구 의석을 많이 확보할수록 비례대표 의석을 손해 보는 구조를 깨기 위해 꼼수로 사상 초유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만들어 준연동형제도의 비례성 강화 취지를 무력화시켰다. 민주당은 열린시민당,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미래한국당이라는 위성정당을 만든 다음, 선거 후 합당이라는 일련의 행위를 통해 초과의석을 확보했다. 한마디로 적대적 공생관계를 강화해 견고한 양당 체제를 구축했다. 여하튼 민주당은 자신이 주도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법을 개혁해 놓고 꼼수를 써서 ‘비례 위성정당’을 만든 것에 대해선 비판받아야 한다. 오죽하면 민주당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지난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만든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를 향해 “천벌 받을 짓”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
10월27일 국회의장실에서 김진표 국회의장(가운데) 주재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새로 선출된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만나는 모습 ⓒ연합뉴스
ⓒ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
11월1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노동당·녹색당·정의당·진보당 등 진보 4당과 2024정치개혁공동행동 관계자들이 대표성과 비례성을 보장하는 선거제 개혁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헌재, 전원일치로 위성정당 개선 필요성 적시

헌법재판소는 올해 7월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성정당’ 논란을 불렀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다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초래한 위성정당 창설에 대해선 제도 개선 필요성을 분명히 했다. 헌재는 “21대 총선에서 거대 정당의 위성정당이 창당되어 비례대표 선거에만 후보자를 추천하는 현상이 발생하였고, 다른 어느 때보다 양당 체제가 심화한 결과를 보여주었다”며 “선거법 189조 2항의 의석 배분 조항이 무력화되지 않고 선거의 비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거대 정당의 선거 전략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따라서, 여야는 한국 민주주의에서 위성정당이라는 치욕적인 흔적을 남긴 기존의 기형적인 선거제를 조속히 개편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 내년 총선 선거제 개편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하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포함된 현행 방식을 유지하되 위성정당 창당을 금지하는 것이다. 민주당 의원 30명이 11월15일 ‘위성정당 방지법’을 당론으로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민주당 이탄희 의원은 지역구 다수당과 비례대표 다수당이 합당할 경우 국고보조금 50%를 삭감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위성정당 방지법’을 발의했다. 거대 양당이 꼼수로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별도로 창당한 후 선거 후 합당하는 방식으로 의석수를 부풀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심상정 의원은 거대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 추천을 의무화하는 등 ‘위성정당 방지법’을 제출했다.

 

이탄희 의원, ‘위성정당 방지법’ 당론 요구

문제는 준연동형이 유지될 경우 위성정당의 출현을 막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다. 위성정당이 거대 정당의 꼭두각시 정당이나 각종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정치인들의 피신처로 전락하는 퇴행적이고 역설적인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으로 탈당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가면 전국용 비례 신당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조국 전 장관과 비례 신당을 함께 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했다. 부패 막말 운동권이 위성정당법을 활용해 정치 재개를 모색하려는 추악한 의도가 드러났다. 조국 전 장관도 대중의 증오를 조직화하면서 중앙정치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으로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개편 논의는 위성정당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폐지하고 ‘병립형 비례제’로 회귀하는 것이다. 병립형은 각 정당이 지역구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전체 비례 의석수를 정당 득표율만큼 가져가 거대 양당에 유리한 제도다. 여야 거대 정당에서 이준석 신당, 조국 신당이 현실화할 경우 비례대표 의석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에 병립형 회귀론이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비례성을 높여 다양한 민심을 담기 위해 단순 병립제 회귀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만일 연동제에 문제가 있어 병립제로 전환하면 일본이 채택하고 있는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검토해볼 만하다. 일본은 지역구 289명, 비례구 176명으로 11개 권역으로 나눠 실시하고 있다. 거대 정당에 유리할 수 있는 소선거제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군소 정당 후보의 당선 기회를 보장하고자 도입한 제도다. 12월12일이 내년 총선 예비후보자 등록일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여야는 시급히 선거제도 개편과 선거구 획정을 처리해야 한다.

위성정당은 국민을 대표할 정당을 ‘선거꾼 집단’으로 전락시키고, 비리 연루자들이 자신의 정치 재개와 중앙정치 진출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며, 국민의 다양한 정치 의사 반영을 방해하고, 소수 정당의 정치적 기회를 박탈하는 등 정당 정치 질서에 큰 해악을 끼치게 된다. 비례대표 정신을 누더기로 만든 위성정당법은 바꾸어야 한다. 이재명 대표는 작년 9월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확대와 위성정당 방지를 통해 국민의 다양한 의지와 가치가 국정에 수렴될 수 있게 선거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변화와 개혁을 줄기차게 부르짖는 민주당은 아직 ‘별다른 실천’이 없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혁신위가 출범했지만 영남 중진 및 지도부, 친윤 핵심의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 권고에만 골몰하고 있다. 양당이 진정 혁신을 하려면 위성정당 방지를 비롯한 공천제도 개혁 등에 앞장서야 한다. 다만, 지난 총선 때와 달리 ‘게임의 룰’인 선거법만은 여야 합의로 처리한다는 헌정사의 ‘관습법’을 꼭 지켜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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