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강국’을 ‘모두를 위한 스포츠’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 홍덕기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장(경상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1 13:05
  • 호수 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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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복귀하는 ‘제 식구 감싸기’에 피해자는 ‘학습된 무기력’만

한국 사회의 스포츠계 ‘인권침해’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지도자의 성폭력 사건(2019년), 철인3종경기 선수 사망 사건(2020년), 프로배구 쌍둥이 여자 선수 학폭 사건(2021년), 유소년 축구선수 사망 사건(2022년) 등 매해 굵직한 스포츠 인권침해 이슈들이 등장했다. 스포츠 분야의 인권침해는 과거와 비교해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매우 광범위하고 일상적이며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민체육진흥법 개정, 스포츠윤리센터 설립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정부의 다양한 노력에도 스포츠계 인권침해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스포츠계 인권침해 원인이 단순히 가해자 개인의 인성 문제가 아닌 스포츠 분야의 구조적 문제에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는 선수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13년형을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폭력은 ‘대물림’되는데 은폐에만 급급

스포츠 분야의 인권침해는 어떠한 구조 속에서 발생할까? 스포츠계에서 인권침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구조를 살펴보면 운동부만의 관행과 위계 문화가 강하게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스포츠에서 경쟁은 필연적이며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과도한 승리 지상주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선수 관리와 통제의 효율성이나 전통과 예의라는 명목하에 폭력적인 위계 문화가 조성되는 것이다. 때로는 혹독한 상황에서 이를 참고 견디는 것도 훈련의 일부로 용인되는 과정에서 폭력과 훈련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모호해지기도 한다. 정신력 강화와 단합을 이유로 체벌이나 폭력은 훈련으로 둔갑한다. 선수들은 폭력을 필요악으로 여겨 순응하거나 오히려 일부 선수나 지도자의 경우 선후배 간 위계질서 등을 이유로 폭력을 옹호하고 정당화한다. 일상생활 전반에 걸친 스포츠 분야의 폐쇄성은 폭력을 내면화하고 결국 피해자는 미래의 가해자가 되는 폭력의 대물림이 발생한다. 대물림의 고리는 견고해 개인이 끊기 어려워진다.

일단 스포츠 분야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하면 은폐 구조가 작동하게 된다. 수요자인 선수, 공급자인 지도자, 관리자인 체육단체는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어 어느 한 문제를 푼다고 일이 해결되는 구조가 아니다. 스포츠윤리센터 등 인권침해 사실을 신고할 수 있는 기관이 있지만, 좁고 폐쇄적인 운동부의 특성상 피해자의 신원이 쉽게 노출될 가능성이 있고, 신고로 인한 불이익 등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신고하기 어렵다. ‘2차 피해’를 유발하는 상황으로는 ‘피해 원인을 피해자의 잘못으로 돌리는 경우’, ‘피해의 무게를 피해자 이외의 사람이 판단해 축소하는 경우’, ‘가해자를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경우’, ‘피해 사실을 소문내거나 피해자를 비방하는 경우’, ‘피해자를 협박, 회유하거나 보복하는 경우’ 등을 들 수 있다.

피해자가 용기를 내서 신고한다고 해도 처리 기간이 오래 걸리거나 처리 결과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체육단체에 권고하더라도 강제성이 없어 권고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기관에서 사건에 대해 철저하고 신속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대한 신뢰 없이는 피해자가 신고하기 어렵다. 또한, 체육의 공정성을 저해하는 스포츠 비리도 문제다. 이는 운동 중에 발생하는 승부 조작, 편파 판정, 심판 매수, 불법도박 등 운동경기의 공정한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와 회계 부정, 배임, 횡령 및 뇌물수수, 입시 비리, 부정 입학, 사문서 위조 등 체육단체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저해하는 행위를 포함한다. 일부 스포츠 현장에서는 여전히 체벌이나 언어폭력이 용인되고 있으며, 이러한 인권침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 오히려 정신력이 나약하다고 폄훼하는 인식의 결핍이 존재한다. 가해자에 대한 징계가 이런저런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스포츠 분야 인권침해 판결 내용을 살펴보면 가해자가 초범이고, 반성하고 있으며, 국위선양에 기여했다는 등의 이유로 처벌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가해자가 스포츠 현장에 다시 복귀하는 ‘제 식구 감싸기’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피해자는 ‘학습된 무기력’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어

선진국의 경우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듀얼 커리어(Dual Career)’ 체계가 잘 갖춰져 있는 반면, 한국 사회에서 학생선수가 전문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지 못하고 운동‘만’ 해야 하는 단선적 구조 속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학생선수의 학습권 침해는 한 인간으로서 지적·정서적·사회적 성장을 저해한다.

또한, 지도자는 경기 실적을 중심으로 재계약이 이루어지다 보니 경기 결과에만 중점을 둘 수밖에 없다. 아무리 훌륭한 지도 철학을 가지고 있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지도법을 배워보지 못한 지도자는 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손쉬운 방법으로 폭력을 사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는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가 아닌 지도자의 생존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한마디로 ‘메달 지상주의’로 인해 운동 성적만 좋으면 다른 모든 상황이 용인되는 ‘스포츠 강국 패러다임’이 강한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다. 폭력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체벌이나 훈육을 통해 선수의 행동을 수정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인간을 자극-반응의 대상으로 객체화시킬 뿐이다. 스포츠계 폭력은 피해자에게 신체적 손상뿐만 아니라 분노, 불안, 공포, 우울, 소외감 같은 정서적 상처를 아주 오랜 기간 남긴다.

결국, 스포츠계 인권침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신고 시스템 마련, 징계 기준의 명확성 및 세분화, 신고 의무제 정착, 일벌백계 시스템 마련 등 제도의 실효성 개선이 요구된다. 국가의 역할은 스포츠를 국가주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것에 있다. 결국, ‘스포츠 강국 패러다임’은 ‘모두를 위한 스포츠’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건 스포츠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온전히 존중받는 스포츠 문화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스포츠 참여 과정에서 존엄성과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도록 국가가 이를 보장하고 인권친화적인 스포츠 문화가 마련되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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