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기냐, 살신성인이냐…‘친윤 핵심’ 장제원 둘러싼 긴장과 침묵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4 10:05
  • 호수 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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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심’ 혁신위 희생 요구에 세 과시로 반기?
“깊은 고심 중에 있을 것…예측과 다른 결정 내릴 수도”

‘윤석열 정부 탄생 일등 공신’ ‘친(親)윤석열계 핵심’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윤석열 정부 들어 여권 최고의 실세로 평가된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을 수식해온 말들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 도전 초기부터 가장 먼저, 또 가장 적극적으로 조력한 장 의원은 누가 뭐래도 친윤계의 핵심으로 여겨져 왔다. 당내 중요한 의사결정 때마다 ‘윤심(尹心)은 장제원으로 통한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했다.

그런데 최근엔 장 의원을 둘러싸고 미묘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그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윤심’이 다른 곳에서 나타나면서다. 윤심을 주장하는 국민의힘의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당내 친윤계와 지도부, 중진 등을 겨냥해 내년 총선에서의 험지 출마 혹은 불출마를 권고하고 나서자 정치권의 시선이 자연스레 장 의원에게로 향한 것. 그런 가운데 장 의원이 관광버스 92대로 지지자들을 모아 세를 과시하고 “알량한 정치인생 연장하면서 서울 가지 않겠다” “권력자가 뭐라 뭐라 해도 제 할 말 하고 산다”고 발언한 사실까지 알려지자 장 의원이 윤심에 정면 반기를 든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후 침묵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장 의원도, 윤심도 조용하다. 대개 침묵은 결단해야 하는 이에겐 고심, 선택지를 제시한 이에겐 인내를 의미한다. 일각에선 혁신위가 윤심을 왜곡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그럼 진짜 윤심은 어디에 있을까. 하지만 혁신위가 말하는 윤심이 진심이라면? 장 의원은 지금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그 끝에서 그는 어떤 결심을 하게 될까.

2022년 5월 당선인 신분이던 윤석열 대통령과 당선인 비서실장 장제원 의원이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 잔디광장에서 열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해단식에 입장하고 있다. ⓒ뉴스1

尹과 張, 악연에서 주군과 충신 관계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윤 대통령과 장 의원 관계의 시작은 악연이었다. 두 사람은 한때 적(敵)이나 다름없었다. 2018년 윤 대통령은 당시 여당인 민주당이 강력하게 밀었던 서울중앙지검장, 장 의원은 야당인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의 법사위원일 때다. 장 의원은 청문회와 국정감사 등에서 윤 지검장을 혹독하게 몰아붙여 ‘윤석열 저격수’로 불렸다. 그해 10월 장 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윤 지검장 장모 관련 의혹을 제기하자 윤 지검장이 “아무리 국감장이지만 좀 너무하시는 것 아니냐”고 발끈한 일도 있었다.

그랬던 두 사람의 관계가 몇 년 만에 주군과 충신 관계로 뒤바뀌었다.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진보진영의 적이 돼버린 윤석열 검찰총장이 2021년 정치 도전에 나서자 장 의원은 가장 먼저 조력자로 나섰다. 2021년 8월, 당시는 윤 대통령이 아직 국민의힘에 입당하지 않았을 때인데 장 의원은 서울 광화문 이마빌딩에 위치했던 윤석열 대선 경선 캠프의 종합상황실장직을 맡았다. 그가 직책을 맡고 바로 다음 날인 8월4일 가졌던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장 의원은 과거 윤 대통령과의 악연에 대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게 윤석열의 포용력 아니겠나. 과거 자신을 비판했던, 측근도 아닌 사람을 중용한 거다. 또 윤석열이라는 사람에 대해 검증을 충분히 한 사람이 바로 저다. 사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청문회 때 가장 뛰어난 활약을 했던 우리 보좌진과 함께 검찰총장 청문회 때도 윤 후보의 장모 관련 사건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했었다. 그런데 정황도 발견 못 했다. 찾아보면 알겠지만, 청문회 당시 ‘불행하게도 장모 사건 고리를 풀지 못했다’고 솔직히 얘기하기도 했다. 검찰총장이 된 이후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살아있는 권력과 싸우는 행보를 보며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수 있는 추진력과 강단이 있는 분’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이후 ‘최측근’ 장 의원에게는 몇 번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됐다. 경선 과정에서 후보의 측근으로서 존재감을 더해 가던 도중에 아들의 음주운전 적발로 총괄실장직을 내려놓고 물러나야 했다. 장 의원이 물러난 자리는 권성동 의원 등 다른 이들이 채웠다. 장 의원은 대선 과정 내내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물밑에서 활발하게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이준석 전 대표와의 갈등 등 여러 상황에서 정무적 조언을 했고, 대선 막판엔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와의 극적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선 승리 직후 윤 대통령은 장 의원을 당선인 비서실장으로 세웠다. 장 의원은 대선 승리의 일등 공신이자 새 정권의 실세로 부상했다.

그러나 이후 장 의원은 어떤 공식적인 직책을 맡거나 전면에 나서진 않았다. 장 의원은 인수위 시절과 정권 초기 등 몇 차례에 걸쳐 어떤 임명직도 맡지 않겠다면서 백의종군 의사를 밝혔다. 물론 정권 초기에 권성동 의원과 갈등이 생기면서 친윤계 내부 싸움이 연출되는 등 장 의원이 고립을 자초했다는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희생을 선택한 장 의원을 상당히 고마워했다고 한다. ‘죽마고우’ 권 의원보다도 오히려 장 의원에게 더 힘이 실린 것도 윤 대통령의 깊은 신뢰 때문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선 캠프에서 역할을 맡기도 했던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붉혔던 사이이기 때문에 더욱 신뢰가 남다른 것 같다. 과거를 뛰어넘어 장 의원이 매우 충성스럽게 윤 대통령을 보좌했다”면서 “또 장 의원이 눈치가 빨라 나설 때와 나서면 안 될 때를 잘 알고 윤 대통령의 심기를 가장 잘 살피고 맞추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크게 신뢰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인사 전횡설 등에서 尹-張 균열 감지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윤 대통령과 장 의원 사이에 점점 균열이 감지됐다. 우선 정부가 출범한 후 몇 달 지나지 않은 시점에 대통령실 내부에선 정권 초 발생한 지지율 대폭 하락 등을 이유로 50명 안팎의 직원 물갈이가 이뤄졌는데 퇴출된 직원 중 다수가 장 의원이 추천한 인사들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선인 비서실장이었던 장 의원이 인사를 전횡했다는 식의 논란으로 번졌는데, 당시 언론보도에 대해 장 의원은 ‘비서실장으로서 여러 군데에서 추천을 받아 당선인에게 전달했을 뿐’이라는 취지로 반박하기도 했다. 또 이러한 과정에서 김대기 비서실장과 검찰 출신 등 비정치인 출신들과 여의도 출신 간에 신경전이 벌어졌고, 윤 대통령이 여의도 출신 뒤에 장 의원이 있다고 보고 매우 격노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아울러 김장(김기현-장제원) 연대와 윤심 등이 부각된 지난 3월 전당대회를 거치며 당내에서 ‘장심이 곧 윤심’ 등의 분위기가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에 대해 윤 대통령이 불쾌함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4월 원내대표 경선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직후 지도부 인선에서 장 의원이 독자적으로 자신과 가까운 특정 의원들을 밀어 대통령실로부터 질책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윤심을 주장하는 인요한 혁신위의 중진 희생 요구가 장 의원을 향하고, 장 의원이 여기에 반발하는 모습까지 연출되자 윤 대통령과 장 의원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다거나 이른바 ‘윤핵관’이 해체됐다는 관측까지 최근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마침 장 의원은 마치 윤 대통령을 향한 듯이 자신의 지지자들 앞에서 “권력자가 뭐라 뭐라 해도 제 할 말 하고 산다”는 발언을 쏟아내 이런 의구심에 설득력이 더해졌다.

장 의원 측 사정을 잘 아는 한 정치권 관계자는 “오해와 억측이 너무 많다”며 억울함을 표했다. 이 관계자는 “지지자들을 수십 대 버스에 태워서 혁신위에 세 과시를 했다고 하는데 그건 꽤 오래전부터 예정돼 있던 행사였고, ‘권력자’ 발언은 그동안 반대 진영 등의 권력자들과도 맞서 싸워왔다는 걸 의미한 거지 대통령을 표현한 것은 당연히 아닐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혁신위의 일방적 요구가 윤심이 아닐 것이기 때문에 장 의원이 윤 대통령에게 대든다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말”이라고 밝혔다. 또 “윤 대통령과 장 의원의 관계는 여전히 신뢰가 두텁다”고도 덧붙였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 역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언론에 나오는 것처럼 두 분이 멀어졌거나 관계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인요한 혁신위의 희생 요구가 정말 윤심과는 아예 별개냐 하는 것이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대체적으로는 기득권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혁신위의 방향에 공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혁신위가 다소 조급하게 현역 의원들을 압박하는 방식이나 속도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사정을 잘 아는 한 여권 관계자는 “대선 때 윤 대통령의 수행팀장이었던 이용 의원이 혁신위 등 지도부 요구에 따르겠다고 선제적으로 밝힌 것에 대해 윤 대통령이 매우 흡족해했다고 한다”며 “윤 대통령이 특정 누군가가 아니라 자신과 가깝거나 직책이 있는 사람들 다수가 더 희생해 주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은 맞는 듯하다”고 견해를 밝혔다. 혁신위를 둘러싼 여러 논란에도 윤 대통령이나 용산(대통령실)이 침묵하고 있는 것에 대해 혁신위에 어느 정도 힘을 실어주는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11월11일 장제원 의원이 지지자 모임인 여원산악회 행사에서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고 있다. ⓒ장제원 의원 페이스북

“尹 대통령, 혁신위 방향에 공감”

장제원 의원은 이를 모를까. 장 의원의 주변인들은 그가 지금 깊은 고심에 빠져 있을 거라고 내다봤다. 앞의 장 의원 측 사정을 잘 아는 정치권 관계자는 “장 의원이라고 왜 희생하고 싶은 생각이 없겠나. 지금까지 윤석열 정부 성공을 위해 줄곧 희생해 왔던 게 장제원이다. 장 의원도 괴로울 것”이라며 “하지만 장 의원은 지역을 아끼는 마음이 누구보다 강하고 지역에 좀 더 봉사해야 한다는 마음이 더 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장 의원과 가까운 또 다른 여권 인사는 “지금 장 의원이 여러 고민을 하고 있을 것으로 안다. 최근 장 의원의 메시지나 행보에 대해 저항하는 것처럼 해석하기도 하지만 지역구를 소중히 하는 의원으로서 그건 당연한 거다. 명분이 중요한데 지금 혁신위의 방식대로 밀어붙이면 그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장 의원은 측근들 중에서도 윤 대통령의 속내를 가장 잘 알고 현명한 처신을 하는 사람이다. 정무적 감각도 뛰어나기 때문에 때가 되면 자신이 알아서 예측과 다른 결정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장 의원이 종국엔 총선 불출마나 험지 출마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장 의원의 침묵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사저널은 장 의원에게 인터뷰 요청을 남겼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30년 넘게 정치권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장 의원을 비롯한 이른바 윤핵관들의 상황을 두고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역사에서나 2인자 혹은 일등 공신들의 말로는 좋지 않았다. 1인자의 눈 밖에 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정권이 바뀌면 가장 먼저 처단됐다. 그래서 2인자는 어떻게 처세하느냐가 중요하다. 고개를 쳐드는 순간 죽을 수 있다. 장 의원이 그런 자신의 운명을 절실히 느끼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장 의원뿐만 아니라 다른 친윤계 의원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권력의 주변은 언제나 위태로운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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