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하던 일이 실제로… 충격에 빠진 ‘축구 수도’ 수원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9 11:05
  • 호수 1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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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 위기불감증에 ‘레알 수원’에서 2부로 추락…자충수 거듭한 구단 운영에 모기업은 방관 일색

12월2일 수원월드컵경기장. 경기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울리자 일순간 적막이 감돌았다. 10위를 확정하며 승강 플레이오프라는 잔류의 기회를 얻은 원정팀 강원FC의 3000여 팬만이 환호할 뿐, 2만 명이 넘는 수원 삼성 팬들은 거대한 침묵에 갇히고 말았다. K리그1 최하위를 확정하며 다음 시즌 2부 리그인 K리그2로 강등됐다는 현실을 인지하게 된 시간이 몇 초 흐르자 관중석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일부 팬은 고성과 욕설로 감정을 표출했다.

K리그의 명가 수원은 그렇게 2부 리그로 떨어졌다. 기업구단이 강등된 것은 부산 아이파크(HDC), 전남 드래곤즈(포스코), 제주 유나이티드(SK에너지)에 이어 역대 네 번째 사례다. 특히 수원의 경우 2014년부터 산하 스포츠단이 제일기획으로 이관됐다고 하지만 구단명에 삼성이라는 이름을 유지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 삼성전자가 만들고 후원해온 팀이라는 점에서 더 충격을 줬다. 1995년 창단해 이듬해부터 K리그에 참가한 수원은 1998년, 1999년, 2004년, 2008년 K리그 정상에 오르며 신흥 명가의 이미지를 굳건히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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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하나원큐 K리그1 2023 마지막 38라운드 수원 삼성과 강원FC 경기에서 0대0으로 비기며 2부 리그로 강등된 수원 삼성 선수들이 낙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레알 수원’ 우승 4회 명가의 모습 온데간데없어

삼성 2대 총수인 고(故) 이건희 회장이 주창한 세계 초일류라는 그룹의 모토에 맞는 파격적인 지원은 신생팀의 거침없는 도전을 후방 지원했다. 2000년대 초에 이미 400억원의 예산을 쓰며 국가대표급 선수 진용을 갖춰 ‘레알 수원’이라는 시기 어린 별칭을 얻기도 했다. 팬덤 역시 일류였다. 4만3000석을 자랑하는 홈구장 수원월드컵경기장은 늘 팀 컬러인 푸른색 옷을 입은 팬들로 북적였다. 개막전 이후 한 번도 강등권인 10위를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평균 관중 1만1798명을 기록했으니 구단이 내세우는 대표 브랜드인 ‘축구 수도’라는 표현이 부끄럽지 않았다.

그런 수원이 창단 28년 차에 강등이라는 뼈아픈 역사를 받아들었다. 충격적인 결과지만,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냉담한 반응도 함께였다. 수원은 2019년 8위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2021년 6위를 기록하며 잠깐 반등했지만 지난해 구단 역대 최하위인 10위를 기록해 승강 플레이오프로 갔다. FC안양과의 끝장 승부는 치열했다. 1차전 원정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후 홈에서 치른 2차전 연장 종료 직전에 터진 오현규(셀틱FC)의 극적인 골로 간신히 잔류에 성공했다.

언론과 팬들은 2023 시즌을 준비하는 수원이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1부 리그 팀 중 유일하게 국내에서 전지훈련을 준비했고, 오현규가 유럽으로 떠나며 생긴 공격력 보강도 시원찮았다.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됐다. 개막 후 10경기에서 2무8패를 기록하며 최하위가 됐다. 결국 이병근 감독을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했다. K리그 1·2부 리그 통틀어 가장 먼저 감독을 교체한 팀이 됐다. 이병근 감독은 정확히 부임한 지 1년째 되는 날에 지휘봉을 내려놨다.

후임인 김병수 감독은 4개월 만에 경질 잔혹사를 되풀이했다. 7월에 울산, 강원을 상대로 연승을 달리며 강등권 탈출의 희망을 키웠지만 9월 들어 5연패에 빠지자 구단은 또 극약처방을 했다. 시즌 두 번째 감독 경질 후의 선택은 파격을 넘은 충격이었다. 현역 선수이자 팀의 살아있는 레전드인 염기훈에게 지휘봉을 맡긴 것이다. 선수 겸 감독대행의 탄생이었다. 염기훈 감독대행은 첫 경기인 포항전에서 승리를 거뒀다. 36라운드, 37라운드에서도 수원FC와 라이벌 서울을 꺾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희망고문일 뿐이었다. 강등권 경쟁자인 수원FC와 강원도 생존을 위한 절실함은 동일했기 때문이다. 2연승에도 순위를 바꾸지 못해 12위로 최종전인 38라운드를 치른 수원은 강원을 이겨야 다이렉트 강등을 피할 수 있었음에도 빈약한 공격력으로 유효슈팅 3개에 그치며 무득점 무승부를 기록하며 자멸했다. 초보 감독이 결정적인 순간에 한계를 보였다. K리그도 충격에 빠졌다. 수원은 서울, 전북, 울산 등과 함께 K리그1 흥행의 중요한 기둥이었기 때문이다. 팬들은 이준 대표이사와 오동석 단장이 마이크를 잡고 사과할 때도 분노에 찬 야유를 쏟아냈다. 연막탄을 그라운드에 던지거나 경호인력의 저지에도 난입하려는 팬도 나왔다. 경기가 끝나고도 남은 팬들은 선수단 버스를 가로막았고, 오동석 단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대치했다.

왜 수원은 강등됐을까? 표면적으로는 과거보다 못한 자금력이 언급된다. 수원은 250억원 수준의 예산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20년 전에 400억원 넘게 썼던 상황에 비하며 크게 축소됐다. 선수단 인건비는 2022년 기준 K리그1 8위였다. 하지만 반론도 있다. 전체 예산이 200억원이 안 되는 포항 스틸러스는 수원보다도 더 적은 인건비로 지난해 3위, 올해 2위를 기록했다. 또 다른 돌풍의 주인공 광주FC는 150억원이 안 되는 예산에도 승격하자마자 3위를 기록했다. 우승을 노리는 건 벅차지만, 예산 활용만 제대로 한다면 강등당할 일은 없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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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기훈 수원 삼성 감독대행 ⓒ뉴스1

야구·농구·배구 동반 추락…삼성스포츠단에도 빨간불

결국 구단 살림과 운영을 책임지는 프런트의 안이함이 도마에 오른다. 수원은 입사한 지 10년 이상 된 직원이 대다수다. 이들의 권한은 각 분야에서 영향력이 크다. 선수 영입조차도 감독이 아닌 프런트가 주도한다. 이는 프로야구를 비롯한 다른 종목에도 있는 사례다. 문제는 그걸 주도하는 프런트 중 현장 상황을 이해하는 경험과 감각을 지닌 이가 없다는 점이다. 야구의 경우 선수·지도자 출신 단장과 지원팀장이 영입을 이끈다. 반면 수원은 프런트 내에 선수 출신이 없다. K리그 타 구단들이 전력강화실장이나 지원팀장 자리에 현장 출신을 배치해 코칭 스태프와의 원활한 소통, 현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영입을 파악해 대처하는 것과 비교된다.

결국 수원은 최근 들어 국내외 선수 영입에서 실패하는 비율이 높았다. 올 시즌은 외국인 선수가 모두 낙제점 수준이었다. 뮬리치(4골 1도움), 아코스티(4골 3도움), 바사니(3골 1도움)는 결정적인 순간에 침묵했다. 여름에 팀의 반등을 위해 데려온 웨릭포포는 아예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 못했다. 그들을 보조할 국내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팀 내 최다 득점자는 5골을 기록한 김주찬인데, 2004년생 고졸 신인 선수였다. 소년가장이나 다름없는 선수에게 팀의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감독 교체도 더 신중하고, 확실한 선택을 해야 했다. 이병근 감독 경질 이후 위기 관리와 승점 싸움에 능한 감독을 선임해야 했음에도, 축구 색깔을 입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김병수 감독을 택했다. 그 배경도 결국은 구단 프런트가 갈등 없이 편하게 조율할 수 있는 유형의 지도자를 찾은 결과라는 지적이다. 염기훈 선수 겸 감독대행이라는 초유의 결정도 강등에 대한 위기의식이 정말 있었느냐는 물음표로 이어진다. 결국 올 시즌 수원 구단이 내린 결정은 대부분 자충수였고, 강등이라는 결과는 당연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시스템 혁신 없이 지원을 줄여가며 수수방관하는 모기업의 태도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수원은 최하위가 강등되는 K리그 시스템에서 충격파를 받았을 뿐 이미 배구·농구는 최하위를 기록했었다. 야구도 10개 구단 중 9위를 두 차례 기록했다. 삼성스포츠단은 2016년 그룹 산하 종합광고대행사인 제일기획으로 스포츠단이 모두 이관됐다. 이 시점부터 몰락은 본격화됐다. 이재용 회장이 그룹의 전권을 잡은 후 이런 분위기가 형성됐다. 결국 삼성스포츠단 내 타 종목 역시 강도만 다를 뿐 수원과 비슷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 수원의 강등은 국내 스포츠의 중흥과 국제 경쟁력 강화를 이끌던 삼성스포츠단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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