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은 왜 ‘과속스캔들’을 선택했을까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22 15:05
  • 호수 1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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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 창당’ 향해 폭풍 질주…민주당 강력 반발에 일단 ‘주춤’
민주당이 ‘친명 유일정당’으로 만들어지는 데 대한 강한 문제의식 가져

“사안을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 “시기가 되면 할 말을 하겠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의 대표적인 어법들이었다. 원래 이낙연은 현안이 나올 때마다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데 신중에 신중을 기하던 모습이었다. 그런 그의 ‘신중’ 리더십은 엇갈린 반응을 낳곤 했다. 국무총리까지 지낸 정치적 무게에 걸맞은 안정감이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 너무 느리고 답답하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정치적 라이벌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화법이 ‘사이다’였다면, 이낙연 전 대표의 화법은 ‘고구마’로 대비되곤 했다.

그런데 이낙연이 달라졌다. 혼자 진도를 너무 빨리 나가 주변 사람들조차 쫓아가기 어려운 초스피드형 정치인이 된 것이다. ‘이낙연 신당’에 관한 얘기다. 이 전 대표는 사람들이 ‘설마’ 하던 사이, 순식간에 신당 창당의 깃발을 들었다. 방송에 출연한 이 전 대표는 신당 창당을 진짜로 할 것이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예”라고 대답했다. “절망하는 국민들께 작은 희망이나마 드리고 말동무라도 돼 드리겠다. 이 방향은 확실하다”면서 “새해 초에 새 희망과 함께 말씀드리겠다”고도 말했다.

당연히 언론들은 ‘이낙연 신당 창당 공식화’라는 제목의 기사를 쏟아냈고 ‘이낙연 신당’ 창당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이 전 대표는 이재명 대표와 결별하겠다는 결심을 이미 끝낸 듯했다.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이 전 대표가 보여준 속도였다. 뜸 들이며 신중을 기하던 이낙연의 모습은 사라지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신당을 만들려는 모습의 ‘뉴 이낙연’이 등장한 것이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12월11일 서울 동대문구 삼육보건대에서 ‘대한민국 생존전략’을 주제로 강연한 후 나오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前 대표 향한 친명의 원색적·모욕적 비난 

그런데 과속을 하니까 민주당 곳곳에서 반발이 터져나왔다. 117명의 의원은 이낙연 전 대표의 신당 창당을 만류하는 연판장에 서명해 발표했다. 이 전 대표를 향해 “분열은 필패”라며 “윤석열 정부의 무능과 폭정을 막기 위한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민주당에서 함께해 달라”고 촉구했다. 전체 의원 167명 중 70%가 뜻을 같이한 셈이니 당내 여론은 이 전 대표에게 불리한 상황이 되었다. 친명계 원외 모임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의 비난은 훨씬 신랄했다. 이들은 이 전 대표를 향해 “헛된 정치적 욕망으로 자신의 역사와 민주당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선후배, 동지들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주고 있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친명계 의원들은 모욕적인 표현들을 사용하며 이 전 대표를 비난했다. “이낙연 전 대표가 민주당의 주요 정치인에서 한순간에 정치꾼으로 전락하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깝다”(김용민 의원), “윤석열 정권의 수명 연장에 기여하는 견리망의(見利忘義)한 선택으로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양이원영 의원), “엄동설한에 웬 분열과 이적의 사쿠라인가? 사쿠라 반란을 철저히 조기 진압해야 2024 서울의 봄, 민주의 봄이 온다”(김민석 의원) 등 국민의힘을 비난할 때보다도 더 원색적인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쯤 되면 거의 ‘조리돌림’에 가까운 모욕들이었다. 그렇다고 비명계 의원들이 이 전 대표의 편을 들어주지도 않았다. “숨 고르기가 좀 필요한데 갑자기 링에 뛰어들어서 100미터 질주를 하고 계신 것 같다”(이원욱 의원), “저희랑 무관하게 진행하는 것이다. 호남 지역구 의원들과 과거 이낙연계 의원들 중 좋게 말씀하시는 분이 별로 없다”(조응천 의원) 등 이 전 대표의 우군이 돼줘야 할 비명계의 ‘원칙과 상식’ 모임 의원들까지 신당 창당을 우려하는 형국이 된 것이다.

그러면 이낙연 전 대표는 전혀 엉뚱한 짓을 한 것일까. 그는 왜 느닷없이 신당 창당을 작심했던 것일까. 사실 이 전 대표의 발언의 톤이 ‘쎈’ 방향으로 변화한 지는 시간이 좀 되었다. 이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이재명 민주당’에 대한 비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전 대표는 현재의 민주당에 대해 “(이재명 대표) 본인의 사법 문제가 민주당을 옥죄고 그 여파로 당 내부의 도덕적 감수성이 퇴화했다. 당내 민주주의와 다양성이 억압되고 정책이나 비전을 위한 노력이 빛을 잃게 됐다”며 우려해 왔다.

그런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드러냈다. “윤석열 정부는 실패가 예정된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 민주당이 대안이라고 국민께 인정받지 못한다면 새로운 대안이 제시되는 것이 국가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신당 창당 이유를 밝혔다. 이 전 대표는 내년 총선에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부동층이 지지할 만한 새로운 대안 세력의 신당이 필요함을 절감했던 것이다.

 

이재명의 침묵은 ‘나갈 테면 나가라’ 뜻으로 해석하게 해

그런데 비판과 우려 표명을 넘어 순식간에 행동에 돌입한 것은 이재명 대표에 대한 강한 불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낙연 전 대표 정도의 체급에서 신당 창당을 한다면 동조 세력의 의견 조율과 세 규합 과정을 거치면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도 이 전 대표가 그런 과정을 건너뛰고 혼자 신당 창당의 결심을 밝힌 것은 이 대표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특히 팬덤층인 ‘개딸’들의 등에 업힌 이 대표가 당을 ‘사당화’한 현실에 대해 이 전 대표는 강한 반감을 드러내곤 했다. 자신의 신당 창당을 만류하는 연판장 서명에 대해서도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저와 대화하거나 물어봐야 하는데 자기들끼리 그런다. 태도가 잘못됐다”며 “오랜 정치 습관인 조롱·모욕·압박·억압하는 방식으로 해온 방법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낙연 대표의 신당 창당 얘기가 성급해 보인 것은 사실이다. 신당의 깃발을 들어도 동력이 가능할까에 대한 우려를 자초한 면이 있다. 하지만 이 전 대표는 국무총리와 당대표를 지냈고 지난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재명 대표와 경쟁했던 거물 정치인이다. 그런 인물이 민주당을 떠나 신당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밝혔다면 일단은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경청하며 대화부터 하는 것이 순서였다. 그런데 여야 관계도 아닌 같은 야당 내부에서 이유를 들으려 하지도 않고 원색적인 비난부터 하며 고립시키는 방식의 대응만 이어졌다.

특히 침묵으로 일관한 이재명 대표의 모습은 ‘나갈 테면 나가라’는 것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이 대표는 무엇 때문에 이 전 대표가 신당을 하려 하는지 일단은 만나서 듣고 만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정상적이었다. ‘이낙연 신당’에 대한 이 대표의 대응 방식은 갈수록 통합과 포용에서는 멀어지고 민주당을 ‘친명 유일정당’으로 만들려는 이재명 리더십의 문제를 드러냈다. 이낙연 전 대표가 당내에서 공감대를 얻어내지 못하는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냈다면, 이재명 대표는 다른 세력을 굳이 끌어안지 않는 편협한 리더십을 드러낸 것이다.

당내 여론의 불리함을 느껴서였을까.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이 의미 있는 변화를 한다면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말을 꺼냈고, 이는 다시 ‘이낙연의 주춤’으로 해석되었다. 이낙연 신당이 실제로 등장할지 여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이 전 대표가 신당을 말했던 이유를 이재명 대표가 굳이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민주당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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