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중견 기업에 더욱 가혹한 기업 승계, 대책은 없나
  • 조웅규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6 10:05
  • 호수 1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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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 등으로 가업 승계 어려움 호소
기업 경쟁력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도 ‘흔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사람은 그 누구도 영생(永生)할 수 없다는 라틴어 구절이다. 하지만 기업은 전 세계적으로 200년 이상 된 곳이 수천 개에 달하고, 그 이상 지속하는 것도 가능하다. 따라서 기업의 성장과 발전이라는 생애주기에서 창업주의 사망과 그로 인한 지배권 이전은 불가피하다.

최근 삼성, LG, 롯데, 넥슨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에서 상속 이슈가 발생했다. 상속 이슈가 발생하기 전에 경영권을 후대로 넘긴 다른 대기업도 적지 않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기업 수는 대기업 약 1만 개, 중소·중견 기업 약 771만4000개로 중소·중견 기업이 전체의 99.9%를 차지한다.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많은 중소·중견 기업이 상속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조차 그룹의 사활을 걸고 대응해야 하는 기업 승계 과정은 그만한 여력이 없는 중소·중견 기업에는 더욱 가혹할 수밖에 없다.

ⓒ시사저널 박은숙
2022년 12월23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이 찬성 214명, 반대 27명, 기권 27명으로 가결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국내 기업 99.9%는 대기업 아닌 중소·중견 기업

첫째, 후계자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중소·중견 기업은 상속인 중에서 후계자를 찾을 수밖에 없는데, 상속인 입장에서는 기업을 승계해 각종 부담을 떠안는 것보다 기업을 매각한 현금을 상속받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승계를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상은 ‘히든 챔피언’이라는 강소기업이 많은 독일이나, 시니세(老鋪)로 대표되는 장수기업이 많기로 유명한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둘째, 승계 비용을 부담할 재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50%)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실제로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전체 조세수입 대비 상속·증여세 비중(2.42%)은 OECD 회원국(평균 약 0.42%) 중 독보적인 1위에 해당한다. 기업을 승계하기 위한 상속·증여도 원칙적으로 일반적인 상속·증여와 동일하게 과세하므로, 상속인들은 기업 가치의 50%에 상당하는 상속·증여세를 개인의 사재로 납부해야 한다. 그런데 다수 중소·중견 기업은 비상장이고, 비상장주식은 처분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도 어려워 이를 통해 승계 비용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셋째, 상속 법률관계로 인해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경우 지배권 확보를 위한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수 있고, 유언으로 후계자를 지명하더라도 그 진위를 둘러싼 법적 다툼으로 인해 경영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으며, 유류분 분쟁도 발생할 수 있다.

기업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산업을 성장시키며, 세금을 납부해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중요한 경제 주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국민은 기업 승계를 ‘부의 대물림’이라 생각한다. 비록 개인에게 자산이 승계된다는 점에서 사적인 영역이 포함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기업이 존속해 고용을 유지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다른 경제 주체들과 함께 발전적인 경제활동을 도모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현금 1000억원의 승계와 1000억원 가치를 갖는 기업의 승계는 분명히 달리 취급돼야 한다.

이렇듯 기업 승계는 기업이 존속하고 사회적 역할을 다하기 위한 필수적 과정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제안하는 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업 승계 관련 세제 개선이다. 우리 정부는 기업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을 완화하는 다양한 제도를 마련했고, 최근 의미 있는 개정 작업도 이뤄졌다. 하지만 여전히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남아있다. 특히 가업상속공제 후 사후관리 기간을 경과하고 해당 자산을 양도하더라도 상속인이 아닌 피상속인이 자산을 취득한 때를 기준으로 양도세를 부과하는 것은 사실상 과세를 이연하는 것에 불과한 만큼, 해당 제도를 이용할 의지를 약화시키는 요소가 된다.

둘째, 유류분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다. 유류분반환청구 사전 포기 제도를 도입하면 피상속인 생전에 후계자를 지명하고 나머지 상속인에게 적정한 보상을 해 안정적으로 승계를 준비할 수 있다. 유류분의 금전배상원칙은 후계자가 유류분반환청구를 당하더라도 금전으로 보상할 수 있으므로 지분율이 낮아지는 것을 방지해 경영권에 대한 위협을 막을 수 있다.

셋째, 신탁을 활용한 기업 승계 방안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유류분반환청구권 사전 포기 제도에 의하더라도 다른 상속인들이 사전 포기에 협조하지 않는 한 언제든지 분쟁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주식의 기능을 의결권과 배당수익권으로 구분해 수익권을 설정한 다음 이를 각 상속인에게 분리해 귀속시키면, 후계자 이외의 상속인들도 상당한 상속재산을 분배받게 되므로 애초에 유류분을 침해당하지 않아 유류분반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

넷째, 기업을 승계하는 데 재단법인을 활용하는 것이다. 파타고니아 그룹의 이본 쉬나드 회장이 4조1800억원 상당의 주식을 비영리단체에 기부하는 방법으로 상속세를 대폭 절감하면서 기업을 승계하고 기업의 사회적인 책임도 다한 것처럼, 우리나라 기업인들도 상속세 절감과 기업의 공익적 역할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과거 일부 대기업에서 공익재단법인을 승계에 악용한 사례로 인해 주식 취득과 보유, 의결권 행사 등에 다양한 규제가 가해진 상황이지만 그와 같은 규제 필요성은 대기업에 국한되는 것이다. 따라서 중소·중견 기업에 대해서는 주식 취득 및 보유와 관련된 규제를 완화 내지 폐지하고, 출연된 주식이 실제로 공익활동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감독 및 사후관리를 엄격하게 하는 방향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

 

기업 영속 위한 실질적인 고민과 노력 필요

어려운 여건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기업을 경영해온 창업주들이 기업을 승계하려는 주된 목적은 자신이 평생을 바쳐 키운 기업이 영속하는 데 있다고 한다. 누구라도 기업에 평생을 바친 창업주와 이를 보고 성장한 후계자보다 기업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기업이 가족 등 후계자에게 승계될 때 기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투자와 노력을 늘린다는 연구 결과도 이러한 사실에 부합한다.

상속세에 대한 부담 때문에 기업 승계를 포기하고 홍콩계 사모펀드에 매각됐던 락앤락은 이후 성장세를 멈추었을 뿐만 아니라 최근 대규모 정리해고를 예고했다. 기업은 창업주와 별개의 법인격이므로 창업주가 사망하더라도 기업에 큰 타격이 없어야 하지만, 현행 상속제도 아래서는 창업주의 사망으로 인해 근로관계는 물론 기업의 존폐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 국민경제의 중요한 구성원인 기업이 영속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실질적인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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