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습격범, 유튜브 편식한 ‘외로운 늑대’…가족 면회 후 ‘사과’로 태도 바꿔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2 10:05
  • 호수 1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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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행동에 마중물” 주장…범행 포기하고 울산역에서 귀가하려던 정황도
경찰, 신상·당적·입장문 등 비공개 결정에 ‘정치적 논란 자초’ 지적 

확신범, 외로운 늑대, 은둔형 정치 훌리건, 에로토마니아(Erotomania·집착과 망상으로 인한 범죄)…. 1월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려 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김아무개씨(67)를 두고 범죄 전문가들이 내놓은 분석이다. 범행 당시 김씨가 착용한 파란색 종이왕관이나 경찰에 연행되는 도중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는 모습, 난해한 단어들로 빼곡한 8쪽짜리 ‘남기는 말’(변명문), 범인이 김씨라는 것이 알려진 후 주변인들의 반응 등이 그를 둘러싼 온갖 추측과 루머를 만들어내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김씨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공격한 김아무개씨가 1월2일 부산경찰청으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사이코패스 아니고 정신질환 징후도 안 보여”

김씨는 지난 6개월 동안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2023년 6월부터 민주당 홈페이지에서 이 대표의 일정을 파악한 후 6차례에 걸쳐 이 대표의 공식 일정을 따라다니고 때로는 사전 답사까지 하면서 범행을 계획했다. 현장에 나타날 때마다 둘러메고 있던 검은색 가방 속에는 총 길이 18cm, 날 길이 13cm의 칼(실제 범행에 쓰인 흉기)을 넣은 채였다. 그는 지난해 4월 인터넷을 통해 등산용 칼을 구입한 후 범행에 쓰기 쉽도록 칼의 손잡이를 빼고 칼등까지 날카롭게 가는 방식으로 개조했다. 또 ‘내가 이재명이다’라고 적힌 파란색 종이왕관을 쓰거나 ‘총선 승리’ 플래카드를 들어 이 대표의 열혈 지지자인 것처럼 꾸몄다.

김씨는 1월2일 부산 대항전망대에 신공항 부지 현장 시찰을 위해 참석한 이 대표에게 “사인 좀 해주세요”라며 접근한 다음 목 부위를 찔러 현장에서 체포됐다. 목 부위에 자상 1.4cm, 내경정맥 9mm 손상을 입은 이 대표는 8일간의 입원치료 후 퇴원했다. 경찰은 “(흉기가) 와이셔츠 옷깃을 뚫고 내경정맥에 손상을 입혔으며 바로 피부에 닿았다면 심각한 피해를 당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왜곡된 정치 신념이 낳은 극단적인 범행”이라는 것이 경찰의 최종 결론이다. 경찰은 1월10일 수사 결과 브리핑에서 “김씨는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고, 곧 있을 총선에서 이 대표가 특정 세력에게 공천을 주어 다수의 의석수를 확보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로 살해를 결심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밝혔다.

김씨가 범행 전에 작성한 7746자, 8쪽짜리 문건 ‘남기는 말’에도 ‘사법부 내 종북세력으로 인해 (이 대표에 대한) 재판이 지연돼 단죄하지 못하고 있다’ ‘(이 대표가) 곧 있을 총선에 공천권을 행사하면 좌경화된 세력들에게 국회가 넘어간다’ ‘(이 대표가) 대통령이 돼 나라가 좌파세력들에게 넘어가게 되니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범행을 한다’ ‘나의 의지를 알려 자유인들의 구국 열망과 행동에 마중물이 되고자 실행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반복적으로 기재됐다는 것이다.

해당 문건에는 이 대표 외에 다른 정치인 이름은 없었다. 다만 경찰은 김씨가 유튜브에서 보수 성향 정치 관련 영상을 시청한 기록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김씨의 프로파일러 분석 결과에 대해서는 “사이코패스 진단 범위는 정상으로 나오고 정신질환에 해당할 만한 이상 징후는 없다”고 밝혔다. 

범행 전날인 1월1일 집을 떠난 김씨가 복잡한 동선을 오가던 중간에 범행을 포기하려 한 적이 있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김씨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 유심과 SD카드를 제거한 자신의 휴대폰과 지갑을 자신의 차에 둔 채 사무용 휴대폰만 가지고 부산역으로 왔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경남 봉하마을. 민주당 지도부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는 일정이 있었다. 김씨는 이곳에서 ‘총선 승리’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든 채 이 대표 주변을 서성였지만 가까이 다가서진 못했다. 실패였다.

이후 문재인 전 대통령 자택이 있는 양산 평산마을로 갔다. 이 대표가 다음 날 평산마을로 이동해 문 전 대통령을 만날 계획이었기 때문에 사전 답사차 갔지만 삼엄한 경비를 확인했다. 이때 김씨는 단념하고 귀가하려는 마음을 먹고 울산역으로 이동했으나,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다시 부산역으로 돌아왔고 가덕도로 가 범행을 저질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2일 부산 강서구 대항전망대 시찰을 마치고 차량으로 걸어가던 중 김아무개씨에게 왼쪽 목을 흉기로 피습당했다. ⓒ뉴스1

“문제의식 못 느끼는 확신범…편집증적 사고”

확신범은 범죄의 동기가 종교·도덕·정치상의 신념에 기초하며 자신의 행동이 정의롭다고 믿기 때문에 처벌될 줄 알면서도 범행을 저지른다. 김씨가 경찰 조사에서 형량이 늘어날 것을 알면서도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는 진술을 하고, 우발적 사고가 아닌 계획된 범행이었음을 밝힌 것은 확신범의 성향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김씨가 부산청으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통상의 피의자들과 달리 고개를 들고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당당한 태도를 보인 것 또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구치소에서는 도서목록에서 《삼국지》를 신청해 읽었다고 한다. 자기 딴에는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므로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모습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확신범은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해도 양심의 가책이나 반성이 없다. 명분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 범인과 다르다”고 말했다. 

주로 여자 셀럽(유명인)을 대상으로 한 범행에서 보이는 에로토마니아 성향도 관찰되는데, 특정한 대상을 정해 놓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을 경우 증오를 표출하는 방식의 범죄 유형이다. 사회적 관용명으로 ‘외로운 늑대’라고 표현돼 왔다. 1981년 미국 워싱턴DC에서 레이건 전 대통령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존 힝클리의 범행이 이런 유형이라고 한다. 당시 힝클리는 영화 《택시드라이버》(1976)를 본 후 배우 조디 포스터에게 빠졌고, 순전히 포스터의 관심을 얻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주변인들에게 ‘늘 혼자 있던’ 사람으로 기억된다.(시사저널 1월5일자 ‘[단독]“‘이재명 피습’ 범인, 융통성 없는 FM 성향…평소 정치 얘기 잘 안 해”’ 기사 참조)  서울 영등포구청 공무원이었던 그는 2001년 명예퇴직 후 충남 아산시에 내려와 20여 년간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해 왔다. 아산 지역에 연고가 없던 그는 서울에 가족을 두고 혼자 내려와 사무소 인근 원룸에서 혼자 생활했고, 몇 년 전부터는 가족도 내려와 인근 아파트에서 함께 살았다. 김씨를 20여 년간 알고 지낸 공인중개사 A씨는 “공인중개사는 지역별 모임도 있고 사무소 간 협업도 잦은 편인데, 김씨는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는 일이 없었고 일 관계로도 사람들과 엮이는 것을 싫어했다”고 말했다.

인근 식당에서 ‘혼밥’ 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고 주말에도 혼자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늘 혼자 지내며 과몰입과 망상이 커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정 교수는 “정신질환자는 아니지만 편집증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 자신의 경제적 생활이 곤란해지면서 정신적으로 취약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씨는 초반에 보인 당당한 태도를 바꿔 검찰에 송치될 때쯤에는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경찰은 전했다. 그는 범행을 저지른 지 8일이 지난 1월10일 부산 연제경찰서 유치장을 나서 검찰로 이동하는 호송차에 타기 전에 “이재명 대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취재진 질문에 “걱정을 끼쳤다. 미안하다”고 답했다. 이 같은 태도 변화에는 가족의 면회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당초 언론을 통해 김씨를 면회 오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김씨는 조사기간 동안 가족과 면회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의자들이 가족 면회를 통해 심경의 변화를 겪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

1월3일 부산경찰청이 이재명 대표를 흉기로 찌른 피의자 김아무개씨(67)의 충남 아산시 사무소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1월3일 부산경찰청이 이재명 대표를 흉기로 찌른 피의자 김아무개씨(67)의 충남 아산시 사무소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美 NYT의 김씨 신상 공개에 난처해진 경찰

김씨와 범행을 공모한 공동정범이나 교사한 배후 세력은 현재까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경찰은 김씨로부터 범행 계획을 사전에 들어 알고 있었고 범행 이후 ‘남기는 말’을 가족과 언론매체 등 총 7곳에 우편으로 발송해줄 것을 약속하고 실제 일부 행동에 옮겼던 조력자 70대 남성 B씨를 살인미수 방조범으로 불구속 송치했다. 범행에 성공할 경우 7곳, 실패할 경우 2곳이었는데 실패로 인해 가족에게 보내는 2부만 우체통에 넣었고, 나머지 5부는 폐기 처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B씨의 범죄 가담 정도가 비교적 경미하고 고령인 점,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점을 들어 B씨를 긴급체포한 지 하루 만에 석방했다.

경찰이 수사 내용을 ‘비공개’로 일관하면서 여전히 남겨진 의문들이 있다. 경찰은 범죄의 잔인성과 중대한 피해, 확보한 증거와 국민의 알 권리 등을 고려하면서도 이번 사건은 공개 사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김씨의 신상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또 범행 배경과 동기의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당적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김씨가 작성한 ‘남기는 말’ 또한 전문이 아닌 일부 내용만 발췌해 공개함으로써 경찰의 자의적 해석이 들어가지 않았겠냐는 의혹을 불렀다. 방조범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지인’이라고만 밝힌 탓에 오히려 루머를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향후 진행되는 재판에서 당적이나 ‘남기는 말’에서 공개되지 않은 부분, 방조범과의 구체적인 관계 등이 드러날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앞서 김씨의 신상을 공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찰의 입장이 난처해진 모양새다. NYT는 사건 발생 다음 날인 1월3일(현지시간) ‘야당 지도자에 대한 흉기 습격, 양극화된 한국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대표 피습 사건에 대한 기사로 김씨의 실명과 나이, 직업 등을 상세히 공개했다. 또 범행 당시 김씨의 모습이 담긴 영상까지 모자이크 처리 없이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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