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지연의 최대 수혜자” 21대 의원 28명 아직도 재판 받는다
  • 김현지 기자 (metaxy@sisajournal.com)
  • 승인 2024.01.29 07:35
  • 호수 178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패스트트랙·울산시장 선거 개입·윤미향 사건...기소 4년째 ‘진행 중’

4·10 총선이 3개월도 남지 않은 가운데, 21대 국회의원 28명의 재판이 마무리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임기 만료(5월29일) 직전까지 재판을 받는 것이다. 28명 가운데 14명(50%)은 21대 국회 개원 첫해인 2020년 재판에 넘겨졌는네, 기소 4년째에도 사법부의 확정판결을 받지 못했다. 문재인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의 1심 판결은 2023년 11월에야 나왔다. 항소심 재판은 아직 진행되지 않았다. 이는 선거사범에 대한 1심 판단이 기소 6개월 내 나와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규정을 사법부가 어긴 사례다.

심지어 28명 가운데 5명은 하급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으로 기소된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 윤미향 무소속 의원과 이은주 정의당 의원 등이다. 윤 의원은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유용 의혹으로, 이 의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각각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을 받았다. 하지만 세 사건은 항소심과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들 의원은 사법부의 재판 지연 탓에 임기를 대부분 채웠다. 재판 지연의 최대 수혜자는 국회의원인 셈이다.

4·10 총선이 3개월도 남지 않은 가운데, 21대 국회의원 28명이 여전히 재판을 받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법원 전경과 국회 본회의장(작은 사진) ⓒ시사저널 이종현·박정

판사들이 어기는 공직선거법

임기 만료를 4개월여 앞두고도 법정에 출석하는 21대 국회의원들은 누구일까. 시사저널은 1월24일 기준 21대 국회의원(298명)의 재판 현황을 전수조사했다. 공직선거법은 국회의원이 선거법 위반, 정치자금 부정수수 등과 관련해 벌금 100만원 이상을 확정받으면 직을 잃는다고 규정했다. 재임 중 수뢰, 사전수뢰, 알선수뢰 등으로 인해 벌금 100만원 이상을 확정받아도 의원직을 잃는다. 일반 형사사건에선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당선무효가 된다. 이에 따라 민사사건은 제외하고 형사사건을 별도 수집했다. 이를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의 ‘수사 및 재판 중인 21대 국회의원 공개 현황(2023년 8월)’과 비교·대조했다. 각급 법원의 추가 설명도 참고했다.

취재 결과, 전체 국회의원의 약 10%인 28명은 현재 재판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당별로 보면 국민의힘 9명, 더불어민주당 13명, 정의당 1명, 무소속 5명이다. 무소속 의원들은 ‘민주당 돈봉투 살포 의혹’ ‘코인 거래’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이후 탈당한 이들이다. 28명의 절반인 14명은 2020년 재판에 넘겨졌다. 기소 이후 4년째에도 사법부의 판단을 못 받은 것이다. 28명 가운데 하급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은 의원은 정진석·임종성·황운하·윤미향·이은주 등이다(표 <21대 국회의원 재판 현황> 참조).

재판 지연의 배경엔 ‘사법부의 현행법 위반’이 있다. 일부 판사가 선거사범의 처리 시한을 규정한 공직선거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선거법은 “선거범과 그 공범에 관한 판결의 선고는 제1심에선 공소가 제기된 날부터 6월 이내, 제2심 및 제3심에서는 전심의 판결의 선고가 있은 날부터 각각 3월 이내에 반드시 해야 한다(270조)”고 규정했다.

하지만 문재인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한 1심 선고는 기소 이후 3년이 지난 2023년 11월29일에야 나왔다. 이와 관련해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황 의원은 이에 불복, 항소했다. 민주당은 황 의원의 4·10 총선 출마가 적격하다고 판단했다. 사법부의 최종 판단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역시 지연됐다. 이 의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지 2년여 만인 2022년 12월 1심 판단을 받았다. 1심에 이어 2심의 판단은 의원직 상실형이다. 이 의원의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 의원은 최근 의원직을 내려놨다. 21대 국회의 비례대표직 승계시한인 1월30일을 넘겨 당선무효형이 확정되면 비례대표 승계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는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월8일 대법원 선고를 앞뒀다. 2022년 9월7일 기소 이후 1년5개월여 만이다. 임 의원도 1심과 2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았다.

황운하·이은주 등 하급심에서 의원직 상실형

공직선거법 사건뿐만이 아니다. 패스트트랙 사건도 재판 지연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는 2019년 4월 20대 국회에서 여야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 등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충돌하며 불거졌다. 국민의힘 의원 7명, 더불어민주당 의원 3명은 이와 관련해 각각 재판을 받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의 재판은 2020년 11월 이후 6개월간 진행되지 않았고, 2021년 5월부터 재개됐다. 하지만 2023년 6월과 10·11·12월 기일이 변경되며 재판이 다시 지연됐다. 국민의힘의 경우 2020년 8월과 2022년 5월 기일 변경 외엔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개인 비리 의혹과 관련한 사법부의 판단도 더디다. 김희국 국민의힘 의원은 2021년 6월22일 뇌물수수 의혹으로 기소됐다. 같은 해 8월25일 첫 재판이 열렸다. 하지만 이로부터 3년이 지난 현재까지 진행된 재판은 10회에 그쳤다. 정의기억연대 기부금 유용 의혹으로 당선 직후 기소된 윤미향 무소속 의원은 지난해 2월10일에야 1심에서 벌금 1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심 재판부는 윤 의원에게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에는 지난해 10월6일 사건이 접수됐지만, 1월24일 기준 선고 기일이 잡히지 않았다.

최근 시작된 재판과 수사 상황도 주목할 만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재판은 지난해부터 본격화했다. 이 대표에게 적용된 혐의는 공직선거법 위반, 대장동 개발 특혜, 위증교사 등이다.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수수 의혹’을 받는 윤관석 무소속 의원의 1심 선고는 1월31일 예정됐다. 이와 관련해 이성만·임종성·허종식 등 일부 의원은 의혹을 부인하지만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상황이다.

 

법원 해명에 “사법부의 직무 태만”

일부 법원 측은 재판 지연 문제를 해명했다. 대구지법 관계자는 “사건이 복잡한 데다, 피고인을 비롯한 관련자의 수가 많으면 재판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이 제한되면서, 검찰에서 한 발언을 법정에서 부인하는 관련자가 있다”며 “이들을 법정에서 다시 신문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서울남부지법 관계자 역시 “패스트트랙 사건의 경우 피고인의 수가 워낙 많다”고 했다.

하지만 황도수 건국대학교 교수(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상임집행위원장)는 이에 대해 “사법부의 직무 태만”이라고 비판했다. “관련자 수가 많다거나 사안이 복잡하면 사건을 나누는, 즉 변론을 분리해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이어 “헌법상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며 “판사 증원, 판결문 공개 등을 통해 재판 적체를 해소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영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부 판사들은 정치적 사건이 복잡한 데다 사회적 주목도·파급력이 높은 사건이라 부담감을 느낄 수 있다”면서도 “이는 ‘패스트트랙 사건’ 등 일부 재판의 더딘 진행을 정당화할 순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은 되레 패스트트랙 사건보다 간단한데도 1심 판단까지 3년 넘게 걸렸다”고도 했다. 장 교수는 그러면서 “판사들은 2년마다 인사이동을 한다”며 “사건을 마무리하지 않은 채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고 알고 있다”고 꼬집었다.

● ‘당선무효형 확정’ 21대 국회의원 6명…선거비 반환은 어떻게?

국회의원이 당선무효형을 확정받으면 의원직을 잃는 동시에 보전받은 선거비용 등도 반환해야 한다. 4·10 총선이 3개월도 남지 않은 현재, 21대 국회의원 6명이 당선무효형으로 의원직을 내려놨다. 이들 가운데 2명은 선거비를 반환한 것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4명의 경우 반환이 진행될 예정이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당선무효형을 확정받은 21대 국회의원은 1월24일 기준 6명이다. 김선교·이규민·이상직·정정순·정찬민·최강욱(가나다순) 전 의원이다. 정정순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회계책임자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으면서 직을 잃었다. 21대 국회의원 가운데 첫 사례다. 김선교 전 국민의힘 의원도 회계책임자의 벌금형으로 의원직을 내려놨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던 이규민·이상직 전 의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직을 잃었다. 각각 2021년 9월, 2022년 5월 퇴직했다.

정찬민 전 국민의힘 의원과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직을 잃었다. 정 전 의원은 용인시장 재직 당시 개발업자에게 인허가 편의를 제공하고 제3자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뇌물 등)로 징역 7년에 벌금 5억원을 확정받았다. 최 전 의원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해준 혐의(업무방해)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표 <당선무효형 확정받은 21대 국회의원 현황> 참조).

현행법상 당선무효된 국회의원 등은 선거비를 반환해야 한다. 지역구 의원은 공직선거법에 근거해 반환·보전받은 금액을 선거관리위원회에 반환해야 한다. 비례의원의 경우, 정당은 소속 비례의원 모두가 직을 잃게 되면 보전받은 금액을 내야 한다. 이에 의원별로 반환해야 할 금액이 다를 수밖에 없다.

당선무효형을 확정받은 의원들은 선거비를 반환했을까. 시사저널이 확보한 선거관리위원회의 ‘당선무효된 사람 등의 반환기탁금 및 보전비용 반환 현황’ 자료를 보면, 21대 국회의원 가운데 미반환한 경우는 2023년 7월31일 기준 2건, 2억5900만원이다. 이는 김선교 전 의원(1억8100여만원)과 이상직 전 의원(7800여만원)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7월31일 이후 직을 잃은 정찬민·최강욱 전 의원은 선관위 자료에 포함되지 않았다.

21대 국회의원을 포함한 전체 반환 대상은 2004~22년 기준 385명(419억원)이다. 같은 기간 치러진 국회의원·지방선거·교육감선거에서 당선무효형을 확정받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미반환한 경우는 73명, 194억원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관할 세무서장이 선거비를 징수한다. 세무서는 대상자의 재산이 없는 경우 선거관리위원회에 ‘징수 불가’를 통보한다.

선관위 측은 “선거구위원회가 당선무효형 판결 통지를 받으면 반환 사유가 발생한다”며 “반환기한은 ‘대상자가 고지받은 날부터 30일’인데, 이러한 반환기한의 다음 날부터 5년까지가 소멸시효”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소멸시효가 완성된 경우 별도의 제재 조치는 없다”며 “다만 2019년 이후부터 소멸시효 완성 전 반환청구 소송 제기를 통해 소멸시효 기간을 연장(10년)하고 있다”고 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