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두 집 살림 택한 축구협회, 한국 축구의 운명은?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9 13:00
  • 호수 179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림픽 대표팀 사령탑 황선홍, 월드컵 예선 임시 감독으로 발탁
클린스만 위약금 등 재정적 부담도 원인으로 지적돼

어디로 향하는지 종잡을 수 없는 난파선이 된 축구 국가대표팀(이하 A대표팀)의 키가 임시 선장 황선홍 감독에게 맡겨졌다. 경기 운영, 선수 관리, 근무 태도 등에서 부임 이후 무수한 논란을 불러온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아시안컵 부진이라는 트리거로 경질된 지 12일 만의 결정이었다.

당장 3월에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에서 태국을 상대로 2연전을 치러야 하는 A대표팀의 사령탑 공백을 재빠르게 해소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남았다. 황선홍 감독은 오는 4월 파리올림픽 티켓 획득이라는 미션을 달성해야 할 23세 이하(U-23) 대표팀 감독이란 사실이다. 3월 A매치 기간에 A대표팀과 U-23 대표팀 모두 각자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두 집 살림을 강행한 결정에는 의문부호가 남아있다.

2023년 10월4일 항저우아시안게임 남자축구 4강전 대한민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에서 황선홍 감독이 경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소방수 찾던 A대표팀, 겸임 감독이 최선?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는 2월27일, 3월 A매치 기간 동안 A대표팀의 지휘봉을 황선홍 감독에게 맡긴다고 발표했다. 3월21일 홈, 26일 원정으로 태국과 연달아 맞붙는 상황에서 급한 불을 끌 소방수로 황 감독을 택한 것이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은 클린스만 감독 경질에 맞춰 신임 감독을 뽑을 전력강화위원회 역시 정해성 신임 위원장 체제로 재편했다. 전력강화위원회는 3차례에 걸친 회의 후 황선홍 임시 감독 체제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정해성 위원장은 3월 A매치에 한해 임시 감독 체제로 가고, 이후 정식 사령탑을 물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3월1일 개막한 K리그 현장을 찾으며 업무에 돌입한 황 감독은 “한국 축구가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3월 치르는 월드컵 2차 예선은 승리가 중요한 실전이다. 임시 감독 체제라도 결과를 내는 데 우선 집중해야 한다. FIFA랭킹 101위인 태국은 22위인 한국과 전력 차가 크지만 아시안컵 16강에 진출하며 조직력을 증명했다. 무엇보다 그들의 홈인 방콕의 라차망칼라 국립경기장은 5만 명의 홈 팬이 압도하는 분위기로 인해 원정팀의 무덤으로 유명하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8강에서 한국이 태국에 일격을 맞으며 탈락한 곳이기도 하다.

작년 11월 싱가포르와 중국을 각각 홈과 원정에서 꺾은 한국은 현재 C조 1위에 올라있는 상태다. 태국과의 2연전에서 모두 승리할 경우 조기에 3차예선 진출이 확정된다. 아시안컵 우승 실패로 인한 실망감을 딛고 북중미월드컵을 향해 나아갈 힘을 얻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목표는 전승이다.

그러나 승리를 거두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A대표팀 내부의 갈등 봉합이 가장 시급하다. 아시안컵 4강전 하루 전날 발생했던 내부 분열이 알려지며 국민은 큰 충격에 빠졌다. 주장 손흥민(토트넘)과 차세대 에이스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간 언쟁이 몸싸움으로 번졌다는 사실이 해외 보도를 시작으로 일파만파 퍼졌다. 이강인이 사실을 인정했고, 런던에 있는 손흥민을 찾아가 직접 사과했다. 손흥민도 이강인과 어깨동무를 하며 찍은 사진과 화해의 입장문을 올려 큰 불로 번지는 걸 막았다.

봉합 국면으로 향하지만, 대표팀에서 다시 만났을 때의 첫 분위기 형성이 중요하다.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부터 하나로 뭉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것을 황선홍 임시 감독이 리더십을 발휘하며 해소해야 한다.

전력강화위원회에서 황선홍 감독을 적임자로 삼은 것도 이 점을 고려했다는 후문이다. 작년 항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 과정에서 황 감독은 이강인을 잘 파악하고 활용했다. 이강인도 별문제 없이 동료들과 어울리며 목표 달성에 일조했다. 가장 최근 이강인을 지도해본 국내 지도자가 임시 감독을 맡아야 한다는 논리 속에 박항서 전 베트남 대표팀 감독, 최용수 전 강원FC 감독 등 다른 후보보다 황선홍 감독이 평가에서 앞섰다.

 

황선홍 없는 황선홍호, 올림픽 준비 악영향 우려

다만 다면적인 평가와 선임 근거가 부족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박항서·최용수 등 다른 후보들도 과거 베테랑과 어린 선수의 조화라는 팀 매니지먼트를 잘 수행했다. 단기간의 임시 감독이라는 점을 보면 동남아 축구의 특징과 전력을 꿰뚫고 있는 박항서 감독의 경쟁력도 검토해볼 만한 부분이었다.

무엇보다 황선홍 감독 겸임은 올림픽 준비에 차질을 빚는 선택이라는 점이 가장 걸린다. 당장 4월에 카타르에서 열리는 U-23 아시안컵 준비가 중요하다. 이 대회에서 3위 안에 들어야 파리올림픽 본선 티켓을 거머쥘 수 있다. 황 감독이 A대표팀에 가 있는 동안 U-23 대표팀은 선장 없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리는 서아시아축구연맹 U-23 챔피언십에 참가해 최종 모의고사를 치른다. 명재용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고, 황선홍 감독은 U-23 대표팀을 원격 지시한다.

올림픽 최종예선을 겸하는 대회를 앞두고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다. 월드컵의 비중이 높긴 하지만, 올림픽 10회 연속 본선 진출과 메달 도전도 한국 축구엔 놓쳐선 안 될 기회다. 다른 임시 감독 선택지가 있음에도 겸임 체제를 강행한 것이 최선, 혹은 차선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다.

클린스만 감독 경질 과정에서 발생한 재정적 부담이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된다.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천안에 건설 중인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에 드는 예산이 불어나면서 총 100억원으로 알려진 클린스만 사단에 지급해야 할 위약금 부담은 더 커졌다. 황선홍 감독은 이미 축구협회와 계약을 맺은 입장이라 A대표팀 겸임에 별도 비용이 들지 않는다. 이원화 과정에서 A대표팀에 합류한 코치진 중 마이클 김, 정조국 코치 2명만 새로 계약하면 된다. 이렇다 보니 대한축구협회가 임시 감독 체제를 최대한 끌면서 올림픽 이후 황선홍 감독을 A대표팀에 정식 선임하려는 계획이 아니냐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

황선홍 감독이 월드컵 2차 예선 통과, 올림픽 본선 진출 확정이라는 임무를 완수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만일 두 마리 토끼 중 하나라도 놓치면 대한축구협회의 이번 판단은 또 한번 큰 비판에 시달리게 된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명예 회복에 성공한 황선홍 감독도 자신의 커리어에 흠집이 생길 수 있다. 한국 축구가 또 한번 중요한 자산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