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야구생활도 실생활도 ‘만찢남’인 바른생활 사나이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4 10:00
  • 호수 179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겸손과 예의가 몸에 밴 오타니 “한국 선수·한국팀 항상 존경”
슬라이딩 때 상대 수비수에 묻은 흙 털어주기도

2012년 9월8일 서울 목동야구장. 한국과 일본의 세계청소년야구대회 5~6위 결정전이 열렸다. 일본 선발은 하나마키히가시 고교에 재학 중인 오타니 쇼헤이였다. 오타니는 이날 7이닝 동안 단 2개의 안타만 허용했지만 불운하게도 패전투수(한국의 3대0 승리)가 됐다. 하지만 이날 그는 탈삼진을 무려 12개나 낚아냈다. 7이닝 21개의 아웃카운트 중 절반 이상(57.1%)을 혼자 힘으로 잡아낸 것이다. 당시 속구 최고 구속은 시속 155km가 찍혔다. 타자로는 4타석 3타수 1안타(볼넷)를 기록했다.

그리고 12년이 흐른 2024년 3월1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 일본 프로야구(닛폰햄 파이터스)와 미국 프로야구(LA 에인절스)를 거치며 진화를 거듭한 오타니는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타석에 섰다. 고척돔 관중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이날 고척돔을 찾은 관중 셋 중 한 명은 등번호 17번의 오타니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비단 야구만 잘해선 이런 환호를 받을 수 없다. 다저스에는 연봉 3000만 달러(약 396억원)의 무키 베츠, 2700만 달러(약 356억원)의 프레디 프리먼도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오타니만큼 시선을 사로잡지 못했다. 왜 사람들은 오타니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3월15일 오타니와 다나카 부부가 인천공항에 입국하면서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다 뒤돌아보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

일본에 완패한 한국 선수단에 모자 벗고 인사

오타니가 국내 팬에게 처음 각인된 것은 2015년 11월 열린 프리미어12 대회 때였다. 당시 오타니는 한국과의 개막전과 준결승전에 선발등판해 엄청난 위력의 공을 뿜어냈다. 최고 시속 161km의 강속구와 147km의 포크볼을 앞세워 2경기 13이닝 3피안타 21탈삼진 무실점의 완벽한 투구를 뽐냈다. 큰 키(193cm)와 달리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생긴 얼굴에 괴력투를 선보이니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오타니 사가(saga)’를 완성한 것은 그의 품성이다. 예의가 몸에 뱄다. 3월16일 국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할 때도 그랬다. 오타니는 “한국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 중 하나”라면서 “한국에서 다시 뛰게 돼 정말 기쁘다. 야구를 통해 (고교 때에 이어) 한국에 돌아와서 무척 특별하다. 한국에서 야구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한국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도 무척 기대된다”고 했다. 더불어 “한국과 일본은 항상 스포츠에서 라이벌 관계였다. 한국의 경기를 보면서 한국 선수, 한국팀을 항상 존경해 왔다. 그래서 이렇게 환영받는다는 게 더욱 기분 좋은 일”이라는 말도 했다. 립서비스 같지만 그의 이전 행보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2023 WBC 때 한국은 일본에 4대13으로 완패했는데, 이날 오타니는 경기 후 한국 선수단을 향해 모자를 벗고 인사를 건넸다. 메이저리그 경기 때는 2루 도루를 한 후 상대 수비수 유니폼에 묻은 흙을 털어주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슬라이딩할 때 흙이 상대에게 튀었기 때문이다. 오타니는 거듭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오타니는 더그아웃이나 그라운드에서 쓰레기를 줍는 모습으로도 유명하다. 고교 1학년 때 사사키 히로시 야구부 감독으로부터 ‘쓰레기는 다른 사람이 무심코 버린 행운’이라는 말을 들은 후부터 쓰레기를 줍고 다닌다. 그의 만다라트 계획표 ‘운’ 항목에는 쓰레기 줍기와 함께 ‘인사하기’ ‘긍정적 사고’ ‘책 읽기’ ‘심판을 대하는 태도’ ‘물건 소중히 쓰기’ ‘응원받는 사람 되기’ 등이 적혀있다. ‘인간성’ 항목에는 ‘배려’ ‘예의’ ‘감사’ ‘계획성’ ‘신뢰받는 사람’ ‘사랑받는 사람’ 등이 세부 항목으로 나뉘어 있다. 만다라트 계획표대로 그는 실천하고 행동한다.

오타니는 야구 모범생이기도 하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할 당시 그의 하루는 야구로 꽉 채워져 있었다. 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식사, 체력훈련 등을 구단 시설에서 소화했다. 술·담배를 일절 하지 않았으며 그때는 운전면허조차 없었다. 2016년 연봉이 2억7000만 엔이었는데 한 달 용돈은 10만 엔 남짓이었다. 오타니는 “돈은 야구를 즐겁게 할 수 있을 만큼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다저스와 프로 스포츠 최고액인 7억 달러(10년)에 계약하고도 대부분의 연봉 수령을 은퇴 후로 미룬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오타니의 2024 시즌 연봉은 200만 달러(약 27억원)밖에 안 된다. 국내 프로야구 최고 연봉자인 류현진(한화 이글스), 박동원(LG 트윈스)의 25억원보다 조금 많은 수준이다. 오타니의 취미는 스포츠 관련 영화를 보거나 훈련법·식이요법 등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이다. 반신욕과 낮잠도 좋아하지만 클럽 출입은 전혀 하지 않는다. 소위 유흥과는 담을 쌓은 바른생활 사나이다.

팬들이 3월17일 서울 롯데월드몰에서 진행된 서울시리즈 기념 ‘김하성·오타니 X 뉴발란스’ 팝업 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내 다나카에게도 팬들 반응 ‘호의적’

그런 면에서 운동선수 출신 아내를 만난 것도 이해된다. 오타니는 서울에서 열리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개막전을 위한 전세기에 오르기 직전에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을 개인 SNS에 올렸다. 열애설 한 번 없다가 2월29일 개인 SNS를 통해 품절남이 됐음을 알렸던 그다. 그의 아내는 일본 언론의 짐작대로 일본 여자프로농구 선수 출신의 다나카 마미코(27)였다. 오타니는 아내에 대해 “평범한 일본 사람”이라고 했으나 그렇지는 않다.

다나카는 농구선수였지만 학업도 게을리하지 않은 재원이다. 도쿄세이토쿠대 부속고를 거쳐 일본 명문인 와세다대학교를 졸업했다. 일본도 한국 대학처럼 체육 특기자를 선발하는 제도가 있으나 학업 성적 기준이 엄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 180cm의 다나카는 모델로도 활동했었다. 오타니는 아내에 대해 “함께 있으면 즐겁다. 계속 함께 지내는 상상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타니의 아내가 처음 공개됐을 때 팬들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평소 오타니가 말했던 이상형에 부합하는 배우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 또한 아들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운동 경험이 있는 여성과 교제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오타니와 다나카는 3~4년 전에 일본에서 겨울훈련을 하던 체육관 복도에서 처음 만났다. 2023 WBC가 열리기 전에 오타니가 다나카에게 프러포즈를 했다고 알려졌다. 다나카는 LA 다저스가 한국 야구 대표팀과 스페셜 경기를 치른 3월18일 고척돔을 찾아 남편을 응원했다. 다나카의 곁에는 일본에서 건너온 오타니의 부모님이 있었다. 다나카는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옆 사람과 얘기를 나누면서 경기를 지켜봤다.

오타니는 고교 3학년 때 작성한 인생 계획표에 아들 둘, 딸 하나의 아빠가 되는 미래를 써넣었는데, 지금은 바뀌었다. 그는 자녀 계획을 묻는 말에 “(내가 아이를 낳는 게 아니니까) 나와 관련이 없는 건 얘기하지 않겠다”면서 “이야기를 해도 이뤄지지 않을 것 같아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아내를 배려한 말이었다. 깜짝 결혼 발표 때도 “가족을 향한 무례한 취재는 자제해 달라”고 부탁했던 그다. ‘만찢남’만큼 오타니를 잘 설명하는 말도 없다. ‘이도류’로 뛰는 야구장 안에서도, 겸손과 배려를 실천하는 야구장 밖에서도 그는 만화 속 인물 같다. 그래서 야구팬뿐만 아니라 야구를 잘 모르는 이들의 사랑까지 한 몸에 받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