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에 또 하나의 역사가 쓰였다
  • 김형준 SPOTV MLB 해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3 09:00
  • 호수 1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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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의 다저스와 김하성의 샌디에이고, 고척돔에서 1승 1패 명승부
세계적인 선수들과 맞붙어본 국내 젊은 선수들 가능성 확인도

역사적인 한국 첫 메이저리그 야구(MLB) 개막전 월드투어가 3월20일과 2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진행됐다. 원래 메이저리그는 2022년 11월 올스타팀이 방문해 부산(사직)과 서울(고척)에서 한국팀과 네 차례 경기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시즌이 끝난 직후라 유명 선수들이 불참했고, 티켓이 팔리지 않아 취소됐다. 자존심이 상한 메이저리그는 공식 개막전이라는 더 확실한 카드를 들고 왔다.

서울을 방문하는 팀이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결정된 이유는 다저스가 한국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팀이고, 샌디에이고가 김하성의 소속팀이기 때문이었다. 다저스의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입국에 앞서 “(한국 관중이) 너무 샌디에이고만 응원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엄살을 부렸지만, 박찬호와 류현진으로 다져진 다저스의 인기는 샌디에이고를 능가했다.

3월2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미국프로 야구 공식 개막전 LA 다저스 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경기에서 김하성이 타격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문화를 미국 야구팬들에게 알린 시리즈

서울 개막전이 확정되자 우주의 기운이 몰리기 시작했다.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와 일본 최고의 에이스 야마모토 요시노부가 올 시즌 다저스에 전격 입단한 것이다. 오타니 효과는 실로 엄청났다. 가장 많이 가져온 오타니의 유니폼이 가장 먼저 품절됐고, 대규모 일본 취재단은 오타니만 따라다녔다. 사실상 이번 한국 월드투어는 오타니를 위한 대회라고 할 만했다.

오타니 못지않게 샌디에이고의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도 큰 주목을 받았다. 타티스는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그의 아버지인 페르난도 타티스 시니어가 1999년 LA 다저스 박찬호로부터 한 이닝 두 개의 만루홈런을 때려내 전에 없던 역사를 달성한 것이다. ‘한 이닝 만루홈런 두 개’는 한국 팬들 사이에서 ‘한만두’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타티스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광장시장에 가서 만둣국을 먹었다. 타티스는 박찬호와도 반갑게 인사했다. 그리고 무궁화가 새겨진 스파이크를 신어 한국 팬들에게 또 한번 점수를 땄다.

친한파로 알려진 일본 선수 다르빗슈 유의 행보도 눈길을 끌었다. 다르빗슈는 다른 선수들과 다르게 서울 시내를 구경하는 대신 자신의 한국인 팬이 운영하는 카페를 직접 찾아갔다. 다르빗슈는 일본에서 활약하던 시절에 주문 제작한 글러브가 맞지 않자, 자신을 응원하는 한국 팬에게 선물로 보내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팬을 찾아 깜짝 방문을 한 것이다. 지난해 이 한국인 팬이 다르빗슈를 직접 보기 위해 애리조나로 날아갔을 때 마침 다르빗슈가 일본 대표팀에 합류하면서 둘의 만남은 엇갈린 적이 있었다.

이번 개막전이 더 특별했던 건 대규모 사절단의 방문이었기 때문이다. 3개나 되는 TV 중계팀은 물론이고 ‘지옥의 종소리’ 트레버 호프먼(전 샌디에이고)과 켄 그리피 주니어 같은 메이저리그 전설의 영웅들이 대거 방한했다. 다저스는 마크 월터 구단주와 스탠 카스텐 회장을 비롯해 ‘생존하는 최고의 다저팬’으로 불리는 80세의 빌리 진 킹 여사가 직접 방문했다. 빌리 진 킹은 20번의 윔블던 우승을 포함해 그랜드슬램 우승을 39차례 차지한 미국 여자 테니스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무려 310명의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했고, 입장권을 구하지 못했는데도 입국한 열성팬들도 있었다. 선수들과 가족들, 기자들과 구단 관계자들은 일정이 없을 때마다 광장시장, 경복궁, 명동, 여의도 쇼핑몰 등을 다니며 한국의 문화와 음식을 소개하는 사진과 영상을 끊임없이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메이저리그 야구가 한국 팬들에게 처음으로 직접 소개됐고, 한국문화를 미국 야구팬들에게 알린 시리즈였다. 김하성은 선수단 전원에게 한복 두루마기를 선물했고, 다저스의 선수 부인들은 화장품 프랜차이즈 매장을 단체로 방문해 화제가 됐다.

샌디에이고는 1996년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열렸던 최초의 해외 경기를 포함해 이번이 5번째 나들이였다. 반면 세 번째인 다저스는 첫 해외 경기였던 2014년 호주 개막전에서 클레이튼 커쇼와 류현진을 내세워 애리조나를 상대로 2승을 따냈다. 3월20일 류현진은 로버츠 감독을 찾아가 대전의 명물 빵을 선물했다. 2018년 멕시코 몬테레이 경기에서 다저스는 샌디에이고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투수 넷이 만든 합작 노히터는 다저스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아있다.

3월20일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경기에서 3회초 오타니 쇼헤이가 안타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다음 서울 방문은 이정후의 SF 될 가능성

3월20일 개막전에서 오타니와 다르빗슈는 통산 첫 대결을 했다. 닛폰햄 선후배 사이인 둘은 다르빗슈의 미국 진출 이후 오타니가 입단해 다르빗슈의 등번호를 물려받는 등 각별한 사이다. 둘은 메이저리그에서 6년을 함께 뛰는 동안 한 번도 대결하지 않았다. 오타니는 다저스 데뷔 첫 안타를 다르빗슈를 상대로 신고했다. 다저스가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개막전에서 아웃이 되었어야 할 타구가 샌디에이고 1루수의 글러브를 뚫고 나가 경기가 뒤집힌 진기한 장면도 등장했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서울시는 예산 24억원을 투입해 고척스카이돔을 메이저리그 기준에 맞게 대대적으로 보수했다. 하지만 그 전까지 서울시는 선수들의 개선 요청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클럽하우스를 모두 쓰면서 이들과 친선경기를 한 키움 히어로즈와 LG 트윈스,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은 지하에 마련된 임시 공간에서 대기하고, 도시락으로 식사를 해야 했으며 샤워도 하지 못하고 경기장을 떠났다. 앰프를 틀어놓고 하는 한국식 응원문화는 미국 사람들에게 신기했을지 몰라도, 메이저리그 분위기를 느낄 수 없어 아쉬웠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이번 서울 시리즈는 메이저리그 팀들과 처음 대결한 한국 선수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삼성 원태인은 다저스 타일러 글래스나우를 찾아가 커브를 물어봤고, 키움 김혜성은 바비 밀러의 시속 154km 공을 2루타로 연결해 벌써부터 이름을 알렸다. 다저스의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올 시즌이 끝나고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김혜성에 대해 “우리 팀이 아주 좋아할 선수”라고 했다.

평균 만 21세의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국가대표팀은 샌디에이고·다저스와 대결해 0대1과 2대4로 패하긴 했지만, 충분히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일본 대표팀이 유럽 올스타와 연습경기를 하는 동안 우리는 높은 수준의 팀과 맞붙어봄으로써 올 11월에 열리는 프리미어12를 앞두고 전력을 점검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이번 대회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서울 개막전을 성공리에 끝낸 메이저리그는 내년에는 일본 도쿄 방문을 계획하고 있다. 그 이후에 열릴 다음 서울 방문은 이정후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때 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맞이하게 될까. 국제대회에서 권토중래를 노리는 한국 야구는 2026년 WBC와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라는 바쁜 스케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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