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서 낸 교수, 외래 진료 축소·주 52시간 근무 돌입
암 환자 “사직 교수, 환자가 내 부모·동생이라고 생각해 보길”
전공의가 의사 가운을 벗은 지 한 달 만에 교수마저 줄줄이 사직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교수들은 사직서가 수리되기 전까지 외래 진료를 대폭 축소하고 주 52시간 근무를 하겠다고 밝혔다. 의료 공백이 장기화할 조짐이 보이자 병원에 남은 환자들은 “사람 목숨을 가지고 이럴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25일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입학 정원의 일방적 결정과 정원 배분으로 촉발된 교수들의 자발적 사직, 누적된 피로에 의해 어쩔 수 없는 주 52시간 근무, 중환자 및 응급환자 진료를 위한 외래진료 축소는 금일부터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진료실 앞 붙은 교수 사진 보고 눈물 왈칵”
이날 오전 9시께 찾은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은 한 달 전에 비해 한산한 모습이었다. 지나갈 틈 없이 환자와 보호자로 빽빽하게 차있던 복도는 썰렁하게 비어있었다. 병원 측이 의료진 부족으로 초진 예약을 줄이고 재진 환자 위주로 받고 있어서다.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도 상황은 비슷했다. 한 달 전만 해도 보호자들은 대기 좌석이 없어 병원 곳곳에 서서 기다렸지만 이날은 빈 좌석이 수두룩했다. 오전 11시께 불이 꺼진 소아외과 진료실도 보였다.
어린이병원 1층에서 만난 보호자 이아무개(47)씨는 “진료 예약을 받을 때 간호사들이 최소한 인원만 받고 있는 것 같다”면서 “모바일로는 초진 예약이 아예 안 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류마티즘을 앓는 자녀를 3년째 진료해 준 교수가 사직할까 봐 조마조마했다고 전했다. 그는 “4주마다 SRT를 타고 광주에서 서울까지 진료를 받으러 올라오는데 오늘 담당 교수가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다”며 “특히 희귀질환을 앓는 아이들은 시시각각 상태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이제껏 지켜봐 온 교수가 아이 상태를 가장 잘 알지 않겠느냐”고 토로했다.
3년 전 폐이식을 받은 자녀의 정기검진을 위해 충남 천안에서 왔다는 이아무개(40대)씨도 교수들의 ‘무더기 사직’에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그는 “여기(서울대병원)까지 왔다는 건 동네 병원에서는 해결이 안 되는 큰 질환이라는 것”이라면서 “‘빅5’ 병원마저 마비가 돼버리면 환자는 더 이상 갈 데가 없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2·3차 병원으로 내려갈 수 있는 질병을 가진 사람이면 사태가 수습될 때까지 대처를 할 수 있겠지만, 큰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날 만난 환자와 보호자들도 시시각각 바뀌는 의료계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들은 의료계와 정부 간 대화의 물꼬가 극적으로 트이기를 기대했다.
서울대병원 본관에서 만난 김아무개(60)씨는 “수술 날짜가 잡히기를 중증 환자들이 목 빠지게 기다리는데 한시라도 빨리 의사 단체와 정부가 협의를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인근 암병원에서 만난 이아무개(58)씨는 “서로 한 발씩만 양보를 하면 될 텐데 사람 목숨을 가지고 이럴 수가 있느냐”라며 “입장을 바꿔 내 부모, 동생이 환자라고 생각을 해 달라”고 지적했다. 위암 수술을 받은 이씨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 담당 교수가 변경됐다는 소식을 접했다고 했다.
병원에 남은 환자들은 교수들에게 지금이라도 사직서 제출을 철회해달라고 당부했다. 폐 질환으로 5년째 한 교수에게 진료를 받았다는 남아무개(78)씨는 “병원에 도착해서 진료실 앞에 선생님 얼굴이 붙어있는 걸 보는 순간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면서 “만나 뵙게 되면 ‘감사하다. 자리를 비우면 절대 안 된다’고 환자들의 바람을 전달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