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물-윤석열] 한 학기 마친 尹대통령, 평가는 지금부터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2.12.28 07:35
  • 호수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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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했지만 부드럽지 못했던 윤 대통령의 8개월
대선 당시 “저를 욕한 야당 정치인 초대해 소통할 것” 약속, 앞으론 지킬까
정치전문가 “집권 2년 차부턴 더 엄격한 평가 받을 것…통합이 관건”

[편집자 주]

2022년도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겨지고 있다. 후세대에게 2022년은 어떤 한 해로 기억될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 미 연준발(發) 고물가·고금리 행진, 10·29 이태원 참사 등 연이어 나오는 우울한 뉴스들은 가뜩이나 3년째 계속되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지쳐 있는 국민을 더 숨막히게 만들었다. 그나마 누리호 2차 발사 성공과 월드컵 16강 진출의 투혼은 숨통을 좀 트이게 했다.

시사저널은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가슴 아픈 일은 가슴 아픈 일대로, 기쁜 일은 기쁜 일대로 정확히 기록에 남기고자 ‘올해의 인물’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올해의 인물은 시사저널이 1989년 창간 첫해부터 매년 송년호에 발표하는 장기 연재기획이다. 특히 2022년에는 여론조사기관 시사리서치에 의뢰해 시사저널 정기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도 처음 실시했다. 시사저널 편집국과 본지 정기독자들이 선정한 2022 올해의 인물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편집국 기자들도, 정기독자들도 의견이 일치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통령만큼 우리 사회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인물은 없는 탓이다. 역대 대통령들도 대부분 당선된 첫해, 올해의 인물에 이름을 올리곤 했다.

이 밖에 정치 인물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제 인물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회 인물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 문화 인물에 ‘우영우’ 신드롬의 박은빈, 국제 인물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IT·의·과학 인물에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 연예 인물에 BTS, 스포츠 인물에 축구선수 손흥민 등이 선정됐다. 올해의 사건에는 이태원 참사를 선정했다. 

2022년 한 해는 우리에게 누구의 얼굴로, 어떤 장면으로 기록될까. 시간은 누구에게나 절대적이지만, 또 야속할 만큼 모두에게 다르게 적히기도 한다. 지난봄 ‘벚꽃 대선’은 불과 0.73%포인트 차로 여의도의 희비를 크게 갈라놓았다. 월드컵의 환호와 이태원 참사의 비통함이 같은 계절 안에 존재했다. 코로나19의 출구를 찾아가는 희망 위에서 우리는 가뭄과 폭우라는 두 얼굴의 절망과 맞닥뜨렸다. 2022년의 끝자락에서 1년 전 출발선이 유독 아득하게 느껴지는 건, 그만큼 수많은 사건이 지난 하루하루를 밀도 있게 채웠기 때문일 것이다.

격변의 2022년, 시사저널이 독자들과 함께 선정한 ‘올해의 인물’ 주인공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 선정은 어떤 면에선 당연할지 모른다. 이명박 전 대통령(2007년), 박근혜 전 대통령(2012년), 문재인 전 대통령(2017년) 등 역대 대통령들은 대부분 당선된 그해에 올해의 인물에 이름을 올리곤 했다. 대통령만큼 우리 사회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인물은 없는 탓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주길 바라는 열망과 기대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소통’ 내세운 ‘용산 시대’의 아이러니

하지만 이번 윤 대통령의 선정엔 조금 더 의미가 부여된다. 윤 대통령은 2019년과 2020년 검찰총장 시절, 2년 연속 올해의 인물로 뽑힌 바 있다. 이번이 세 번째다. 1989년 창간 이후 34차례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는 동안 세 번 이름을 올린 인물은 윤 대통령이 유일하다. 그사이 소속도 신분도 핵심 지지층의 성향도 모두 달라졌지만, 그가 지난 몇 년간 대한민국의 이슈를 장악한 ‘태풍의 눈’이었다는 점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 문재인 정부 최전방 공격수로 변모하면서 윤석열 이름 석 자는 본격적으로 정치권의 태풍이 되기 시작했다. ‘때릴수록 존재감이 커진다’는 말은 마치 그를 위해 존재하는 듯했다. 2019년 조국 사태와 2020년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은 어느새 그를 야권 대선후보 선두주자로 올려놓았다. 하지만 ‘0선’의 정치 신인이 별의 순간을 잡고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다는 건 여전히 반신반의한 일이었다.

대선 기간에도 본·부·장(본인·부인·장모) 리스크를 비롯해 당내 갈등, 단일화 진통 등 갖은 부침이 이어졌다. 하지만 국민 48.56%는 기성정치와의 차별화를 내세운 정치인 윤석열에게 기대를 실었다. 유세 마지막 순간까지 “누구에게도 정치적으로 빚진 것이 없고 어떠한 패거리도 없다”며 “오로지 국민”을 외치던 그의 약속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오로지 국민”을 기치로 한 첫 행보로 윤 대통령은 ‘용산 시대’ 개막을 택했다. 그 자체로 이전 정부의 국정 기조를 대전환하겠다는 약속이자 상징으로 해석됐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과정에서 쏟아진 우려와 비판을 윤 대통령은 ‘도어스테핑’이라는 소통에 대한 강한 의지로 돌파하고자 했다. 시사저널이 취재한 정치 전문가들은 대부분 윤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을 통해 대국민 소통을 시도한 점을 ‘가장 잘한 일’로 꼽았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성공을 거둔 세계적인 지도자들은 공통적으로 소통을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일례로 미국에서 유일하게 3선에 성공한 루스벨트 대통령은 재임 기간 총 924회, 평균 주 2회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며 “윤 대통령 역시 매일 기자들과 소통하려고 했던 그 시도 자체는 평가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출근길 발언들은 연일 논란의 불씨를 키웠다. 계속되는 인사 논란과 여기에 기름을 붓는 대통령의 발언이 맞물리면서 지지율 하락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 소통을 위한 시도였던 도어스테핑이 아이러니하게도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 1위를 ‘독단과 일방통행’으로 만들어버렸다.

대선 당시 미처 매듭을 짓지 못한 리스크도 다시금 새어 나와 국정 동력을 떨어트렸다. 나토 순방 당시 민간인 동행과 지난 5월 대통령 취임식 초청자 명단, 대통령실 사적 채용 논란 등은 여름 내내 뉴스를 가득 메웠다. 6월1일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두었음에도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오히려 급격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국갤럽 기준, 취임 한 달을 막 넘긴 6월 4주 차부터 현재까지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줄곧 대선 당시 기록한 득표율을 크게 밑돌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지난 6월27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 도착한 후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적어도 국민적 참사에 대해선 화합의 리더십 보여야”

정치권에서도 윤 대통령의 지지율 반등은 결코 쉽지 않을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갑갑한 교착상태의 돌파구로 윤 대통령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잘 다룰 수 있는 무기를 꺼내 들었다. 법치였다. 윤 대통령에겐 법을 나침반 삼아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곧 공정과 상식의 실현이었고 비정상의 정상화였다. 전 정부와 야당 인사에 대한 수사의 고삐를 당겼고 “불법을 저지른” 노조와 비판적인 언론에 타협 없이 대응했다.

야당에선 윤 대통령을 향해 ‘선택적 법치’라고 비판하며 연일 그의 적대적 야당관·노동관·언론관을 규탄했다. 하지만 지지자들은 ‘윤석열다움’에 호응했고 조금씩 그에게로 재결집하는 양상을 보였다. 최근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강경 대응이 지지율 상승세의 주요 요인으로 꼽히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7월초부터 대부분의 조사에서 40% 아래로 떨어졌던 윤 대통령 지지율은 최근 발표된 일부 조사에서 약 5개월여 만에 40%를 넘기기도 했다.

이렇듯 적법과 불법만 존재하는 법치 아래 공감과 타협은 상대적으로 배제되기 쉬었다.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법에 따라 잘잘못을 따지는 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윤 대통령이 여전히 대통령이 아닌 검찰총장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10·29 이태원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조차 법치가 정치를 대체하면서, 책임자 처벌을 늦추고 사회적 갈등을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유승찬 대표는 “윤 대통령이 추진하는 여러 이슈들은 개인의 정치적 이념에 따라 달리 평가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적어도 국민적 참사에 대해 대통령은 지금보다 조금 더 무거운 책임감, 그리고 화합과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그동안 통합보다는 분리와 배제의 태도를 보여왔는데, 당장은 큰 문제 없이 지나가는 듯 보이지만 향후 언제라도 정권에 치명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일제히 집권 2년 차를 시작하는 윤 대통령을 향해 ‘법치’보다 ‘정치’에 의한 통치를 제안했다. 지지층 결집을 넘어, 지난 대선에서 자신을 택하지 않은 51.44%의 민심을 끌어안는 통합과 타협의 행보를 이제는 보여야 한다는 얘기다. 임기 초반을 지나 중후반으로 갈수록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더욱 매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시사저널 임준선·박은숙·국회사진취재단·연합뉴스

역대 대통령, 임기 말 '최악' 평가…尹은?

애초부터 윤 대통령에게 통합과 협치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180석의 거대 야당이 입법 권력을 가진 상황에서, 한쪽 바퀴만으로 국정 동력을 유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를 의식해 윤 대통령 역시 대선 당시엔 통합과 협치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2021년 8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여야의 극한 대치가 이어진다면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진영에 관계없이 국가와 국민이 처한 난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된다면 낮에 국회의사당에서 제 욕을 한 야당 정치인들을 모셔서 식사 대접을 할 것이며, 저도 한 번씩 국회와 야당 당사를 방문해 소통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집권 후 윤 대통령의 말에서 ‘통합’과 ‘협치’의 단어는 급속도로 사라져갔다. 대통령 취임사와 이후 광복절 경축사에서 ‘자유’가 30여 차례 외쳐지는 동안 ‘통합’과 ‘협치’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통합은) 너무 당연하기에 언급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 당연한 일은 임기 8개월을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윤 대통령이 사실상 ‘정치’를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당장 예산안 통과가 지체되고 있고 정부의 정책들이 국회에 막혀 있으면, 여당 당권 주자나 아크로비스타 주민들을 만나기보다 국회로 찾아가 여야 지도부와 함께 해법을 찾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고 지적했다. “논의의 결과가 어떻든 이러한 노력을 보이는 게 바로 대통령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 역시 “윤 대통령이 실현하고자 하는 거의 대부분은 결국 입법이 뒷받침돼야만 가능하다”며 “이제라도 초심으로 돌아가 야당과의 협치 방안을 찾지 않는다면, 조기 레임덕(권력 누수 현상)에 빠지게 되고 권력의 추는 또다시 야당으로 넘어갈 위험이 있다”고 내다봤다.

안타깝게도 그동안 우리는 임기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다수로부터 박수를 받는 대통령을 거의 보지 못했다. 단적인 예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모두 임기 마지막 해인 2011년과 2016년 시사저널 ‘올해의 최악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첫해의 기대와 열망이 차갑게 식다 못해, 뜨거운 분노와 절망으로까지 치달은 것이다.

이제 막 한 학기를 마친 윤 대통령의 마지막 해는 어떻게 기록될까. 정치 입문 불과 8개월 만에 그는 대한민국 최고 지도자에 오르는 역사를 썼다. 윤 대통령에게 남은 4년4개월이란 임기는 따라서 그 무엇이라도 바꿔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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