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발목’사이 여론 향배는 [배종찬의 민심풍향계]
  •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12 14:00
  • 호수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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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의 ‘오만함’ 심판이냐야당의 ‘발목 잡기’ 심판이냐

21대 국회가 시작부터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6월5일 국회법에 맞게 개원하고 국회의장을 비롯해 의장단을 선출했다. 그렇지만 정작 일하는 국회가 되기 위해 필요한 상임위원회 구성에 대한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야당은 여당의 ‘오만함’을, 여당은 야당의 ‘발목 잡기’를 각각 문제 삼는다.

더불어민주당은 ‘준법 상임위’를 협상 머리에 내걸었다. 이전처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관행으로 야당에 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다음 걸음을 내딛겠다”고 하면서 상임위 배분에 양보가 없다고 했다. 미래통합당이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독재주의식 발상’을 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여당은 관행이라고 비판하지만 함께 협의해 배분했던 것이지 어떻게 보수정당만의 책임인지를 묻는 것이다.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하면서 김 원내대표는 거침없는 행보를 해 나가고 있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중재를 시도했지만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한때 18개 상임위를 11대 7로 나눈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김 원내대표는 ‘준법 상임위’ 구성 원칙에 따라 국회법대로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민주당이 국회 법사위원장과 예결위원장 자리까지 모두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당이 모든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차지한다는 계획은 현실화되기가 쉽지 않다. 제1야당인 통합당이 국회 일정을 거부하는 사태가 올 수 있고, 일하는 국회 이미지를 세우고 싶은 여당의 구상과 맞지 않는다. 20대 국회를 역대 최악이라고 평가하는 상황 속에서 두 정당은 왜 이렇게 전쟁을 치르는 것일까. 지지율로 분석해 보면 민주당의 ‘오만’과 통합당의 ‘발목’ 그림자가 있기 때문이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과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가 5월30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과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가 5월30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뚜렷이 양분된 진영이 ‘오만’과 ‘발목’ 부추겨

우선 민주당에 ‘오만’의 프레임이 있다. 최근 여당 내 적지 않은 내홍 조짐이 있었다. 하나는 윤미향 의원 논란이다. 정의연의 마포 쉼터 관리소장이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로 논란이 되는 이슈고, 지지율에 부정적 이슈다. 그렇지만 지지율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논란에 따른 지지층 이탈을 가져갈 만한 정치세력이 없다. 즉 아무리 민주당이 잘못하고 있더라도 지지층이 잘 이탈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사 이탈층이 있더라도 통합당 쪽으로 가진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가 높고, 핵심 지지층은 일종의 ‘팬덤’ 현상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 지지층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수가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다.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를 받아 6월1~5일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경기·인천 지역과 사무직의 정당 지지율을 분석해 보았다. 전체 지지율은 민주당 41.6%, 통합당 27.5%로 나타났다.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두었던 경기와 인천에서는 민주당 지지율이 43.2%로 전체보다 더 높았다. 여론조사를 할 때 가장 많은 직업 비율을 가지고 있는 사무직은 절반 이상이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결과다(그림①). 정당 전쟁에서 민주당은 경쟁자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 금태섭 전 의원의 징계 논란이 심화되더라도 민주당 지도부가 긴급하게 대응하지 않는 근거다. 총선 승리로 인한 여유와 자신감의 발로일까. 상임위원장 배분에 있어 ‘모든 자리를 다 가져가겠다’는 입장에 대해 ‘여유’나 ‘자신감’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오만’한 정당이라는 인식이 뒤따른다. 수적 우위에 있는 여당을 비판적으로 보는 차원에서 ‘오만’한 여당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 된다.

국회 개원부터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을 제공한 통합당은 ‘발목’의 프레임에 갇혀있다. 통합당은 전신인 자유한국당과 그 이전의 새누리당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반문재인’ 노선을 견지해 왔다. 현 정부의 실정이라고 생각되는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당연한 야당의 권리이자 견제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국면으로 접어들기 전인 올해 초 선거에 대한 예상은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았다. 코로나19로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하지 않았다면 선거 결과는 크게 달랐을지 모를 일이다. 총선이 끝난 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대구·경북과 문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층은 통합당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중도층·자영업자에서 여야 지지율 격차 좁혀져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조사에서 대구·경북과 대통령 부정 평가층으로부터 선호하는 정당에 대한 응답을 청취했다. ‘어느 정당을 선호하거나 약간이라도 더 호감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대구·경북에서는 전국 정당 지지율과 정반대다. 통합당이 43.2%였고, 민주당은 26.1%로 나타났다. 대통령을 부정 평가하는 층에서도 민주당 5.2%, 통합당 61.3%였다(그림②). 상임위 배분과 관련해 법사위원장에 주목하는 건 자구와 체계 심사 때문이다. 법사위로 넘어오는 법안의 법률상 이상 유무나 다른 법과의 충돌 가능성을 검토하는 게 핵심이다. 문제가 있다면 조정하고 보완해 통과시키면 된다. 하지만 국회 관행을 보면 법사위는 정쟁의 무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통합당은 핵심 지지층의 눈치도 봐야 하고, 여당을 강력하게 견제해야 한다. 여당을 강력하게 경계하는 ‘발목’ 프레임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반면에 여당은 이를 국정의 걸림돌로 신랄히 비판한다.

‘오만’과 ‘발목’ 프레임 전쟁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어떨까.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정당 전쟁을 보고 국민들이 반길 리 만무하다. 중도층은 ‘오만’과 ‘발목’ 프레임을 어떻게 볼까. 중도층 및 자영업층에 정당 지지도를 물어보았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중도층은 민주당 38.6%, 통합당 29.4%로 각각 나타났다. 두 정당의 지지율 격차가 한 자릿수였다. 중도층에서 두 정당의 격차는 크지 않다는 의미다. 코로나19 국면 이전뿐만 아니라 이후 국면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큰 자영업층에게 물어보았다. 민주당 39.7%, 통합당 34.2%로 오차 범위 내 차이다(그림③). 중도층과 자영업층만 놓고 본다면 어느 쪽도 일방적 우위가 아니다.

‘오만’과 ‘발목’ 프레임이 지나친 편견으로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오만’한 정당이나 ‘발목’ 잡는 정당 모두 국민의 사랑을 받지는 못한다. 민주당과 통합당 모두 집권여당과 투쟁 야당 경험을 거친 정당이다. 아무리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었더라도 민심은 금방 변한다.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후폭풍으로 과반 다수당이 된 열린우리당(민주당의 전신)은 오래가지 못했다. 국민 여론을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진정으로 여의도 국회에서 보고 싶은 정당의 프레임은 ‘오만’과 ‘발목’이 아니라 ‘겸손’과 ‘협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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