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일단 출마 선언은 했는데 바람까지 불지는…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12.25 10:00
  • 호수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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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출마로 정치권 셈법 복잡…여야 대선 주자 가세해 판 커질 수도

그동안 서울시장 보궐선거 불출마 입장을 고수해 왔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전격적으로 출마 선언을 했다. 출마 선언을 저울질해 오던 안 대표는 직접 ‘대선 포기’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니 안 대표로서는 2022년 대권 도전의 꿈을 접고 서울시장 선거에 ‘올인’하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그는 출마 선언문에서 “지금은 대선을 고민할 때가 아니라, 서울시장 선거 패배로 정권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만은 제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생각이 바뀌게 된 이유를 밝혔다.

안 대표로서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길 가능성이 있는 선택을 한 셈이다. 명분은 정권교체의 발판을 만들기 위해 대선을 포기하고 자신을 던졌다는 것이고, 실리는 국민의힘 주자들의 경쟁력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신이 야권 단일후보가 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이 될 것이다. 설혹 자신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처럼 3석짜리 소수 정당의 대표로 존재감 없이 그냥 있다가는 2022년이 된다고 해도 대권 도전이 무망해질 것임을 내다보았을 것이다.

당장 출마 선언의 효과는 나타나고 있다. 존재감 없이 파묻혀 있던 안 대표가 갑자기 서울시장 선거의 판을 흔들어놓았다는 얘기를 들으며 시선을 모으는 관심 인물로 급부상했다. 후보 단일화의 상대가 될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까지도 그의 출마에 따라 셈법이 복잡한 모습이다. 일단 그의 출마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권의 판을 키우는 효과를 낳게 될 것이다. 안 대표의 출마 소식이 처음 알려질 때만 해도 야권 표가 분열되는 것 아니냐는 경계의 시선도 야권 내부에 있었지만, 안 대표가 야권 후보 단일화 의사를 분명히 함에 따라 야권의 분열이 아닌 판 키우기 쪽으로 갈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12월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安, 3석 정당 대표론 대선도 어렵다 판단”

사실 국민의힘도 당내 주자 가운데서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인물이 아직 떠오르지 못한 상황이었다. 여론조사에서 선두 주자로 등장하는 나경원 전 의원의 경우 시민들의 호감-비호감이 뚜렷이 갈리는 약점이 있고, 대선 출마를 생각하던 오세훈 전 시장은 지난 총선에서 낙선했다는 한계 또한 안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이제는 식상한 인물들이라는 시선도 적지 않은지라, 새로운 인물을 원하는 유권자들의 요구에 못 미친다는 지적도 많았다. 그런가 하면 당내에서 출마 요구를 많이 받던 유승민 전 의원은 대선 출마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고 신진 주자감인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이나 윤희숙 의원 등은 새로운 바람에 대한 기대는 크지만, 아직 대중적 인지도 면에서 약하다는 고민이 따르고 있던 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 대표의 출마는 국민의힘 쪽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자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으로서는 후보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를 충분히 살리면서도 국민의힘 후보가 최종 후보가 되는 상황을 원할 것이다. 같은 국민의힘 후보라 하더라도, 안철수를 경선에서 꺾은 단일 후보의 경쟁력은 전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의힘에서도 경선을 통한 후보 단일화를 희망하지만, 안 대표가 국민의힘에 입당하거나 통합해 야권 후보들과 한 번에 끝내는 ‘원샷 통합 경선’이냐,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대표가 최종 경선을 벌이는 ‘순차 경선’이냐에 대해서는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게 될 것이다.

일단 국민의힘으로서는 ‘안철수 변수’에 휘둘리지 않고 자체적인 경선과 공천 일정을 밟아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너무 앞서 나가 반응할 필요는 없다”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얘기는, 굳이 안 대표를 띄워줄 필요 없이 국민의힘은 일단 그대로 갈 길을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단일화의 결론이 날 것이라는 의미다. 제1야당의 힘을 기반으로 국민의힘 주자들의 지지율이 안 대표의 지지율을 압도하는 상황이 된다면, 단일화 방식은 생각보다 쉽게 정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앞으로의 상황을 좌우할 관건은 안 대표의 지지율 추이다. 만약 지지율에서 의미 있는 상승을 이루지 못해 당선 가능한 후보로 평가받지 못한다면, 안 대표는 야권 지지층으로부터 사퇴 혹은 국민의힘 입당을 통한 경선이라는 거센 압력을 받는 수세적 위치가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국민의힘 주자들과의 지지율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다면 안 대표는 후보 단일화를 위한 순차 경선을 요구해 나갈 수 있을 것이고 국민의힘으로서도 그런 요구를 무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문제는 단일화 경선 과정에서의 진통과 갈등을 당사자들이 어떻게 조정하고 풀어나갈 수 있느냐다. 과거의 경험을 보면 큰 선거를 치르는 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후보 단일화 과정만 한 시선 집중 이벤트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국민의힘이 자기 당 중심의 평탄한 단일화 과정에 갇히지 않고 통 큰 발상을 한다면, 경쟁력이 한 단계 높아진 야권 단일후보를 기대해 볼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안철수 대표든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이든 국민의힘 외부 후보로의 단일화라는 리스크까지 감당할 결심을 한다면 말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왼쪽 세 번째)가 12월1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의 응답을 촉구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야권 단일화하면 민주당도 잠룡급 내보낼 듯

더불어민주당도 향후 야권의 후보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었다. 사실 민주당도 민심의 악화 속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후보감을 찾지 못하던 상태였다. 출마 선언을 한 우상호 의원이나 여론조사에서 선두로 나오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도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느낌은 주지 못한다. 박주민 의원은 검찰 개혁 갈등 과정에서 비춰진 강경파라는 인식 때문에 중도 확장성이 불투명하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의 악역을 맡았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여론의 악화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여권으로선 가장 부담스러운 인물이다.

민주당이 야권 후보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까지 내다본다면 정세균 총리 차출론이 힘을 받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대권 도전을 꿈꾸는 그가 독배가 될 수 있는 잔을 받을지는 불확실하다. 안철수의 출마 선언 직후, 민주당이 거당적으로 일제히 그를 비난하고 나선 장면은 그만큼 새로운 상황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안철수의 강점은 야권에서 가장 잘 알려진 대선 주자급 후보라는 점이다. 그러나 선거의 승부는 누가 더 알려졌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표를 많이 얻는가에 따라 결정 난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김문수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후보에게도 뒤져 3위에 그치기도 했고, 그동안 대선 주자 지지율 3% 안팎에 머물렀던 안 대표가 제1야당의 주자들과 경쟁해 야권 단일후보가 되는 것이 결코 쉬운 길은 아니다. 한때 자신의 측근이었던 금태섭 전 의원이 출마할 경우, 국민의힘 바깥 주자의 대표성을 놓고도 쉽지 않은 경쟁을 벌여야 할 판이다. 야권에서 당초 예상보다 많은 주자가 뛰어드는 선거가 되도록 안철수가 불을 붙였다. 안철수 자신의 운명이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그의 출마가 서울시장 선거의 역동성을 한 단계 높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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