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선거를 따질 때가 아니다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3.22 09:00
  • 호수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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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의 부동산 투자 열기를 설명할 때 흔히 쓰이는 ‘영끌(영혼을 끌어모으다)’이라는 단어를 보거나 들으면 늘 마음이 무거워진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혼을 끌어들여서라도 ‘내 집’을 마련해 보겠다는 그 절박함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자주 등장하는 ‘벼락거지’라는 말은 또 어떤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믿고 지내다 보니 ‘나만 거지가 되어 있더라’는 뜻을 담은 이 신조어에는 상대적 박탈감에 따른 슬픔과 분노가 잔뜩 응축되어 있다.

영혼마저 편히 쉬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어느 날 갑자기 ‘거지’가 되어 버린 사람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는 일이 벌어졌다. 나라의 녹을 먹으면서 나랏일을 맡아 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사욕을 위해 움직여 공직의 기강, 국가의 기강을 크게 뒤흔든 사건이다. 정부로서는 ‘투기와의 전쟁’을 외치던 와중에 제 식구들의 등잔 밑 반란에 휘둘렸으니 이런 망신이 또 있을까. 그들이 대담하게 투기를 일삼는 동안 정부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게다가 그런 기업의 사장을 부동산 정책 주무 부처의 장관 자리에까지 올려놨으니 정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경찰이 17일 오후 경남 진주시 한국토지주택공사 (LH) 본사에서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17일 오후 경남 진주시 한국토지주택공사 (LH) 본사에서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권력이 있는 곳에 정보가 있다’는 말이 알려주듯, 토지수용권과 용도변경권, 독점개발권 등의 권한을 갖고 있다고 알려진 LH에는 많은 개발 정보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정보가 내부에서 수시로 생산되고 유통된다는 얘기다. 정보에 관한 한 그들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금수저’였던 셈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그런 사실을 몰랐다면 어불성설이고, 알면서도 관리·감독에 소홀했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직무유기다.

또 하나 땅 투기 못지않게 심각한 것은 LH 직원들에게서 나왔다고 알려진 말들의 저열함이다. “꼬우면(아니꼬우면) 니들도 우리 회사로 이직하든가” “공부 못해서 못 와놓고 꼬투리 하나 잡았다고 조리돌림 극혐” “이걸로 해고돼도 땅 수익이 평생 월급보다 많다”. 하나같이 천박함으로 가득 찬 망발이자, 대국민 모욕에 다름없다. 부동산에 전전긍긍하는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그 뻔뻔함이 놀랍기만 하다.

곪은 곳이 드러났으면 뿌리까지 깊이 도려내야 한다. 문제가 된 LH뿐만 아니라 개발 정보가 모여 있는 다른 곳에도 숨은 비리가 없는지 샅샅이 들춰봐야 한다. 그와 관련한 조사나 수사에서 최우선되어야 할 것은 오직 ‘능력’과 ‘효율’이다. 이번 시사저널 조사에서(32쪽 기사 참고) ‘특검 도입’과 ‘검찰 또는 감사원 주도의 수사’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더 많이 나온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

이참에 아예 신도시 계획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볼 필요도 있다. ‘광명·시흥 등 3기 신도시 추가 지정 철회 주장’의 적절성을 묻는 질문에 57.9%가 ‘적절하다’고 응답했다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도 깡그리 무시할 수만은 없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부동산에 마음이 다치는 일반 국민들은 이번 사건으로 그로기 상태에 몰렸다 ‘지상의 방 한 칸’을 향한 간절함은 또 한 번 비빌 언덕을 잃었다. 지금은 선거를 따지고 수사의 모양새를 따질 때가 아니다. 가만히 있다 뒤통수를 맞고 쓰러진 국민의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하고 급하다. 선거는 그다음 문제다. 이번엔 결코 얼렁뚱땅 넘어갈 수 없다. 발아래의 투기도 뽑아내지 못하면 대체 어떤 투기를 또 이겨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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