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군부 군량미 부족 발각돼 김정은의 분노 샀을 수도
  •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12 07:30
  • 호수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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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민 생활고 위기상황, 당 간부 대대적 문책…군부가 타깃 된 이유는?

“일하는 흉내만 낼 뿐 진심으로 나라와 인민을 걱정하지 않고 자리지킴이나 하는 간부들을 감싸줄 권리가 절대로 없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얼마 전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한 말이다. 이제 북한에서 당 간부들은 가시적인 성과와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됐다. 김 위원장의 고강도 간부 혁명이 추진되면서 당 간부들은 그 어느 때보다 긴장되고 고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민들의 생계 어려움이 가중될수록 절대권력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대신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첫 번째 표적은 정책 수립과 집행을 책임지는 당 고위 간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지난 6개월 동안 당 중앙위원회 비서 7명 가운데 4명이 경질된 데서도 확인된다. 주민들의 불만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최고위 간부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 효과적이다. 지도자가 자신의 수족을 잘라내서라도 주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생활의 안정을 지켜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김 위원장의 전형적인 통치 방식이기도 하다.

북한 조선중앙TV는 6월3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29일 당 중앙위 8기 2차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간부 혁명을 언급하면서 비당적 행위 등을 엄중 질책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6월3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29일 당 중앙위 8기 2차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간부 혁명을 언급하면서 비당적 행위 등을 엄중 질책했다고 보도했다.ⓒ뉴시스

군부 핵심 리병철·박정천 경질된 듯

대북제재, 코로나19의 장기화 등으로 김정은 정권은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경제와 방역을 동시에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어쨌든 북한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 6월15일부터 18일까지 4일간 열린 당 제8기 제3차 전원회의와 정치국 확대회의는 북한이 직면한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3차 전원회의에서는 이례적으로 인민 생활의 안정성 향상과 관련한 문제가 단독 의제로 상정됐다. 그리고 김 위원장은 “농업부문에서 지난해의 태풍 피해로 알곡 생산계획을 미달한 것으로 하여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 시기 인민들이 제일 관심을 갖고 바라고 있는 절실한 문제들을 시급히 해결하기 위한 결정적인 시행조치를 취하려는 것이 이번 전원회의의 핵심사항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김 위원장은 인민 생활안정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하려는 충심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직접 서명한 ‘특별명령서’라는 것을 내놓았다. 다른 한편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보건 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조건에서 비상방역 상황의 장기성에도 철저히 대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역과 주민 생활안정이 김정은 정권에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임을 재확인시켜주는 대목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국 확대회의가 당 전원회의 이후 10여일 만인 6월29일 소집됐다. 김 위원장은 당 간부들을 강력 비판했다. 국가 중대사를 맡은 책임간부들이 방역 장기화에 따른 대책들을 태만하게 집행해 국가와 인민 안전에 위기를 조성하는 ‘중대사건’을 발생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책 인사를 단행했다.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정치국 위원, 후보위원들을 소환 및 보선하고 당중앙위원회 비서를 소환 및 선거했으며, 국가기관 간부들을 조동(이동) 및 임명했다. 정치국 상무위원은 김 위원장과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조용원 당 조직비서,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김덕훈 내각총리 등 5명이다. 누가 경질되었는지에 대해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명하지 않았지만 북한군 최고위 간부인 리병철(군사담당 비서)과 박정천 총참모장이 경질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조선중앙TV 보도 영상 중 해임, 선거를 알리는 장면에서 군 서열 2위와 3위인 리병철과 박정천이 손을 들지 않는 모습이 포착돼 문책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코로나19 비상방역에서 군이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을 물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주요 건설현장뿐만 아니라 방역 부문에서도 군에 일정 역할을 부여한 바 있다. 방역 태만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주민들의 먹는 문제와도 연관돼 군부가 중대 실수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좀 더 확인이 필요하지만 추정하기로는 김 위원장이 특별명령서를 통해 군량미를 풀어서라도 식량 문제를 해결하라고 지시했는데, 군량미가 예상보다 적은 걸 확인한 군이 방역수칙을 어기고 식량을 긴급히 중국 쪽에서 조달한 것이 발각돼 김 위원장이 노발대발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인자’ 조용원 조직비서가 표적 될 수도

사실 리병철은 핵과 장거리미사일과 같은 전략무기 개발의 1등 공신이다. 리 부위원장은 핵과 미사일 개발 주역으로 SLBM 시험발사 당시 김 위원장과 함께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가장 모범적인 당 간부인 리병철이 교체됐다면, 직위와 과거의 공로 여부를 따지지 않고 김 위원장이 요구하는 바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경질될 수 있다는 고강도의 신호인 셈이다. 그렇다면 다음 표적은 누가 될까.

지금은 중하위급 간부의 경질은 민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김정은 자신을 제외한 누구라도 언제든 경질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간부 기강 잡기’를 도맡아온 조용원 조직비서를 교체하면서 더 파격적인 쇄신에 나섰을 수도 있다. 김덕훈 내각총리도 언제든 교체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경질되더라도 다시 복권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들 대부분은 김 위원장의 핵심 측근이고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충복들이다. 나름대로 실력과 성과도 보여줘왔다. 일단 민심을 달래고 간부들에게 경고용으로 책임을 물었지만, 일정 기간 사상교육을 받게 한 뒤 중책을 다시 맡길 수도 있는 것이다.

위원장은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지금이야말로 첨예하게 제기되는 경제문제를 풀기 전에 간부 혁명을 일으켜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각급 당조직들의 간부들을 충실성·혁명성·인민성·실력을 기준으로 발탁하고, 알차게 준비된 대상들로 정간화(중추적 역할을 하는 골간·근본·기초), 정예화하겠다는 것이 그의 의도다. 위원장은 이전부터 당의 책임간부들이 자신의 수족처럼 움직이지 않으면 당대회, 당중앙위 전원회의 등에서의 주요 결정사항을 관철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줄곧 견지해왔다. 이에 따라 8차 당대회 이후 당 간부들에 대한 강도 높은 사상검열과 실적검열을 엄격하게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북한 내부 변화를 주목할 시기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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