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터지는 토트넘의 여름, 여전히 불투명한 SON의 미래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20 12:00
  • 호수 165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감독 선임 과정에서 잇단 촌극 벌이다 누누 산투 선임
‘이적설’ 손흥민-케인 공격 듀오 지키기에 안간힘

만 29세인 손흥민의 축구 시계는 전성기를 지나는 중이다. 2019~20 시즌에 18득점 12도움을 기록, 자신의 한 시즌 최다 공격 포인트인 30개를 달성했지만 2020~21 시즌을 위한 예고편이었다. 손흥민은 지난 시즌 커리어 하이(개인 최고 기록)에 성공했다. 리그에서만 37경기 17득점 10도움을 올리며 득점과 도움에서 모두 4위에 올랐다. 시즌 전체로 확장하면 51경기 22득점 17도움으로 기존 기록을 돌파했다. 토트넘 역사상 최초로 두 시즌 연속 10득점-10도움 이상을 달성한 선수가 됐다. 유럽에서도 흔치 않은 기록으로, 손흥민이 공격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을 증명했다.

2015년 여름 토트넘 유니폼을 입은 이후 손흥민은 유럽의 모든 클럽이 탐내는 선수가 됐다. 6년 동안 토트넘에서 통산 280경기 107득점 64도움을 기록 중이다. 같은 시기에 팀 동료인 현 유럽 최고의 스트라이커 해리 케인은 185득점 39도움을 올렸다. 손흥민이 전문 스트라이커가 아님에도 대단한 공격 포인트 생산능력을 지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주 포지션인 왼쪽 윙포워드만 놓고 보면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적 전문 사이트 ‘트랜스퍼마르크트’는 지난 2월 손흥민의 현재 시장 가치를 9000만 유로(약 1200억원)로 책정했다. 이는 네이마르(파리 생제르맹), 사디오 마네(리버풀), 라힘 스털링(맨체스터 시티)에 이은 전 세계 4위다. 이적 가능성이 열린다면 유럽의 빅클럽들이 덤벼든다는 뜻이다.

3월11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토트넘과 자그레브와의 UEFA 유로파리그 16강전에서 케인이 골을 성공시킨 뒤 손흥민(오른쪽)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최악의 감독 선임 과정…“내가 손흥민이면 팀 떠날 것”

새 시즌 준비에 돌입한 토트넘은 휴식기 최대의 과제였던 감독 선임 과정에서 잇달아 실책을 저질렀다. 지난 4월 시즌 중 조세 무리뉴 감독을 경질한 뒤 1991년생 코치 라이언 메이슨에게 감독대행을 맡기며 새 사령탑 찾기에 나섰다. 토트넘은 무수한 감독들과 협상을 가졌지만 소득이 없었다. 율리안 나겔스만(RB 라이프치히), 브랜든 로저스(레스터 시티), 안토니오 콘테(인터 밀란) 등 유명 감독들과 접촉했지만 그들이 원하는 조건과 격차가 있었다. 나겔스만은 독일 분데스리가 최강팀인 바이에른 뮌헨의 지휘봉을 잡았다. 토트넘의 전성기를 열었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파리 생제르맹)의 복귀 시도도 무산됐다.

이후 눈을 낮출 수밖에 없게 된 토트넘은 AS 로마의 전 감독이었던 파울로 폰세카와 협상을 가졌고, 드디어 합의에 도달했다. 당시 언론들은 일제히 공식 발표를 예고했다. 하지만 토트넘의 운영을 책임지는 다니엘 레비 회장의 욕심이 일을 그르쳤다. 젠나로 가투소 감독이 피오렌티나와의 갈등으로 계약을 해지하고 나왔다는 소식에 폰세카 감독에게 계약 직전 돌연 취소를 통보한 것이다. 상도의에 어긋난 큰 결례라는 지적에도 레비 회장은 가투소 감독 선임에 집중했다.

하지만 과거 가투소 감독의 인종차별, 성(性)차별 발언과 행적이 논란으로 떠오르며 협상을 중도 포기해야 했다. 폰세카 감독과 다시 접촉할 수도 없게 된 상황. 결국 토트넘이 영입한 인물은 포르투갈 출신의 누누 에스피리투 산투 감독이었다. 선수 시절 골키퍼였던 누누 산투 감독은 2부 리그에 있던 울버햄튼을 승격시키고, 2018~19, 2019~20 시즌 연속 프리미어리그 7위에 올리며 주가를 높인 인물이다. 하지만 2020~21 시즌에는 13위에 그치며 울버햄튼이 재계약을 포기했다. 같은 리그에서 토트넘보다 순위가 낮은 팀이 버린 카드를 주운 셈이 됐다.

전술적인 면에서는 무리뉴 감독과 흡사한 ‘선 수비 후 역습’의 실리적인 축구를 구사한다. 누누 산투 감독 선임 소식에 영국 언론과 토트넘 팬들이 “무리뉴를 버리고서는 정작 무리뉴의 하위 버전을 택했다”고 비평한 이유다. 새 감독 선임을 앞두고 “공격적이고 진취적인 지도자를 영입하겠다”고 선언했던 레비 회장의 계획과도 배치된다. 게다가 누누 산투 감독이 포르투갈 출신의 슈퍼 에이전트 조르제 멘데스의 VIP 고객이라는 점도 우려를 낳고 있다. 누누 산투 감독은 멘데스와 계약을 맺은 첫 선수로 깊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멘데스는 자신의 영향력을 활용해, 누누 산투 감독의 계약을 성사시키고 그 뒤 자신의 선수들을 그 팀에 대거 입성시킨 사례들이 있었다. 발렌시아, 울버햄튼은 그 효과를 잠시 봤지만 종극에는 성적 저하로 누누 산투 감독과 결별한 바 있다.

이런 촌극에 과거 잉글랜드 국가대표 공격수였던 가브리엘 아그본라허는 인터뷰에서 “토트넘 선수라면 이 상황이 부끄러울 것이다. 8명의 감독과 협상했지만 다 실패했다. 도의도 없고, 예의도 없었다. 내가 손흥민, 케인이라면 당장 토트넘을 떠나고 싶을 것”이라고 맹렬히 비판했다.

 

5년 재계약 제안받은 손흥민, 일단 토트넘 합류

감독 선임을 간신히 마무리한 토트넘은 이적시장에 집중한다. 새로운 보강도 진행 중이지만 팀의 비전에 실망한 주요 선수들의 이탈을 최소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가장 큰 관심을 모으는 것은 간판 공격수 해리 케인의 이적 여부다. 토트넘 유스팀에서 성장, 팀의 핵심 공격수가 된 케인은 현재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까지 맡고 있을 정도로 상징성이 크다. 레반도프스키와 함께 유럽 최고의 정통 골잡이로 통하는 그는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시티 등이 계속 영입을 원했다.

토트넘에서 10년간 단 한 차례도 트로피를 들지 못한 케인은 공개적으로 이적을 요청한 상태다. 우승은커녕 챔피언스리그 출전도 거듭 실패한 데 실망했다. 하지만 토트넘도 케인의 이적료로 약 2700억원을 책정했다. 사실상 판매 불가의 딱지를 붙인 것이다. 누누 산투 감독이 선임 당시 케인과 손흥민, 두 공격수만큼은 지켜 달라고 요청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올여름 케인 영입을 위해 1500억원가량의 이적료를 준비했던 맨체스터 시티는 한발 물러난 상태다. 최근 유로 2020을 마친 케인은 휴식기를 가지며 토트넘과 이적을 둘러싼 진지한 대화를 시작할 예정이다. 유로 2020에서 또 한 번 준우승에 그친 케인은 이적 의사가 강한 상태로 알려졌다.

2023년 기존 계약이 끝나는 손흥민은 토트넘으로부터 재계약 제안을 받은 상태다. 팀 내 최고인 주급 20만 파운드(약 3억2000만원)에 기간은 5년이다. 손흥민이 이 계약을 수용하면 사실상 토트넘에서 전성기를 마치게 된다. 새롭게 취임한 파비오 파타라치 단장은 “손흥민과의 재계약은 최우선 과제다. 자신 있다”고 말했다. 손흥민 측은 아직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지난해 여름부터 재계약 협상에 돌입했지만 1년 넘게 완료되지 않았다. 손흥민 역시 케인을 비롯한 동료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잔류 가능성이 더 높게 점쳐지지만 손흥민도 우승 트로피에 대한 열망이 크다. 개인 기록 면에서는 대선배인 차범근과 박지성을 넘어섰지만, 유럽을 정복했던 두 선배와 달리 명성을 완성하는 메이저 트로피는 아직 없다. 손흥민의 현재 가치와 토트넘의 비전을 비교하면 격차가 큰 것도 사실이다. 트로피를 원한다면 토트넘보다는 지속적으로 손흥민에게 관심을 보여온 리버풀, 바이에른 뮌헨, 파리 생제르맹 등이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일단 손흥민은 7월1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영국으로 출국했다. 당초 팀에서 부여받은 휴가가 남았지만 조기 합류를 결정했다. 재계약 협상을 완료하고 이미 팀 훈련을 시작한 누누 산투 신임 감독 체제에 빨리 적응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뜻밖의 재계약 결렬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