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기업 회장이 야당 대변인에 도전한 까닭은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1.08.03 07:00
  • 호수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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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 인터뷰
"文, 취임식 때 한 공정과 정의 약속 지켰는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기획한 당 대변인 선발 토론 배틀 ‘나는 국대(국민의힘 대변인)다’는 지원자 500명에 150명이 면접에 참여해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각양각색의 다양한 인사 중엔 11년 동안 대기업 회장을 역임한 이도 있었다. 만 79세인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민 전 회장은 16강까지 올랐다. 20대 당 대표와 나이 팔십을 앞둔 당 대변인은 상상만 해도 파격 그 자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정당사에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안타깝게 16강에서 탈락하면서 이변을 연출하진 못했지만, 민 전 회장의 도전은 많은 사람의 박수를 받았다.

7월27일 서울 논현동 국가웅비전략연구소에서 만난 자리에서 민 전 회장은 “이벤트 흥행을 위해 참여한 것뿐”이라면서도 “국민의힘이 여당의 실정만 비판할 뿐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아쉬워했다. 재직 시절 민 전 회장은 자신을 드러내는 자리에 잘 나서지 않았다. 현대그룹을 세운 정주영 창업주가 저돌적인 승부사형 리더였다면 그는 참모형 리더다. 그랬던 그가 현재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 공동대표, 나라지킴이고교연합 대표 등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에서 적극 활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를 ‘나라바세’(나라 바로 세우기)라는 한 단어로 요약해 설명했다.

민 전 회장은 서울대 재학 시절인 1961년 ‘9·28 서울수복 기념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와 함께 뛰었다. 마라톤 풀코스 개인 최고기록(2시간23분48초)도 이때 나왔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각 반바지에 운동화 하나만’ 있으면 되는 마라톤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가장 ‘공정하고 공평한’ 스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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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박은숙

요즘도 마라톤을 하나.

“바빠서 못 한다. 젊을 때 운동한 걸로 지금 버티는 거다.”

대변인 선발대회 지원에 대한 주위의 반응은.

“욕을 많이 먹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해 4·15 총선은) 부정선거가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정당했다’고 말해 솔직히 보수진영에선 이 대표를 욕하는 사람이 많다.”

당시 압박 면접에서 어떤 질문을 받았나.

“20대 젊은이와 함께 들어갔는데, 그에게 한 질문이 더 맘에 들더라. 면접관이 ‘만약 문재인 대통령 지금 앞에 있으면 뭐라고 말할 것인가’라고 묻더라. 나 같으면 ‘다음 우리나라의 주역들에게 1000조원이 넘는 빚을 남겨놓았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평등·공정·정의를 부르짖었는데 그렇게 됐습니까’라고 했을 거다.”

정작 자신이 받은 질문은 뭐였나.

“당의 결정과 자신의 생각이 다르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더라. 그래서 그랬다. 프랑스의 3대 천재라고 불린 파스칼이 쓴 《팡세》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다수의 의견을 따르지 않는 단일은 독재고, 단일에 귀착하는 다수는 혼란’이라고. ‘내 의견과 달라도 여러 사람 의견을 종합해 합리적인 결정을 하면 난 무조건 승복하겠다’고 말했다.”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을 거라고 봤다.

“평소 단순 정치보다 ‘우리는 왜 맨날 당하고 살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 우리도 한번 일어나보자는 생각에 대학 때부터 국가 경영과 철학을 정리해 왔다. 두꺼운 책으로 9권 정도 된다. 군사정권은 그렇다고 쳐도 그 이후부턴 솔직히 대통령으로 찍을 사람이 없다. 늘 차악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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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4일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제1회 국민의힘 대변인 선발 토론 배틀 - 나는 국대다! 위드 준 스톤’에서 79세로 최연장자인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 등 지원자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연합뉴스

꿈꾸는 국가 비전은 무엇인가.

“내가 대학 때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국가란 국민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고 헌법의 가치 아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곳이다.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사회 정의 확립, 국민 개개인의 자아실현으로 국민행복의 나라를 구현하고 평화적인 통일로 국가 웅비의 시대를 열어가도록 하자.’ 내 국가관이 이것이다.”

나라지킴이고교연합(고교연합) 등 다양한 시민단체 활동을 하고 있는데.

“오로지 하나다. 나라 바로 세우기. 국민이 표류하다가 적들에게 총을 맞아도 그만인 나라가 제대로 된 건가. 역대 어느 대통령이 국군포로 송환을 요구했나.”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현대건설 회장일 때, 나는 현대중공업 회장을 했다. 그랬기에 정주영 명예회장이 주재하는 그룹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났다. 현대그룹 출신 중역치고 그분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그 정도로만 말하겠다.”

일부 보수층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여전히 부정한다.

“탄핵은 헌법재판소가 한 결정이기에 찬반을 따질 문제가 아니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은 탄핵을 당할 만큼 헌법을 위반하진 않았다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을 부정하는 우리공화당 등은 어떻게 보는가.

“평하고 싶지 않다. 2014년부터 보수우파 조직들을 한데 합치려 했는데 잘 안됐다. 그걸로 돈 버는데 왜 합치겠나. 솔직히 지금 ‘보수 앵벌이’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젊은 층은 보수 노년층을 ‘꼰대’로 본다.

“태극기부대가 인구의 8% 정도인데, 맨날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이렇게 하지 말고 젊은이들에게 국가의 위기를 알려야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엄청나게 비판한다. 최근 젊은이들을 상대로 강연을 많이 했는데, 그 친구들이 그러더라. ‘고교연합이 문재인 대통령을 정말 많이 도와줬다’고. 우리를 보고 혐오감이 생기니 문재인 대통령이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것이다. 고교연합에서 ‘문재인 파리새끼 밟아 죽이자’고 쓰인 팻말을 들고 매주 서울 곳곳에서 1인 시위를 하는데 그걸 보고 젊은이들이 좋아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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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1일 현대오일뱅크 충남 대산공장에서 열린 제2중질유 분해시설 준공식. 사진 왼쪽부터 김윤 대 림산업 사장,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 민계식 현대중공업 회장,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사장, 모리카와 일본 코스 모오일 부사장, 경청호 현대백화점 부회장, 김태경 현대오일뱅크 노조위원장ⓒ연합뉴스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총장을 평가해 달라.

“윤 전 총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를 만들어준 사람 아닌가. 그 사람이 정책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는가. 윤석열 전 총장이 대통령이 되면 국민이 또다시 분열할 것 같다.”

현대중공업 시절 민 전 회장은 ‘마라톤 경영자’ ‘새벽형 CEO(최고경영자)’ 등 다양한 수식어를 갖고 있었다. 골프 등을 일절 하지 않고 아침 일찍 직원들과 공장을 뛰는 것만으로 건강을 챙겨와서다. 그의 구보행렬에는 성별, 지위 등 어떤 것도 고려 대상이 아니다. 오너였던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현 아산나눔재단 명예이사장)가 오랜 정치 활동 등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으면서도 회사 실적이 좋았던 데는 민 전 회장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그는 현대중공업을 세계 조선 1위 기업으로 키워냈다. 재직 시절 연평균 성장률이 24.7%였다. CTO(최고기술책임자)와 CEO를 동시에 역임한 이는 민 전 회장이 유일하다. 그렇게 그는 11년간 CEO로 회사에 몸담았다. 퇴직 후 편안한 노후가 준비됐지만 후학을 양성하겠다는 신념하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교수로 갔다.

경기고, 서울대 조선항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 MIT(매사추세츠공대)에서 해양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 귀국 후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한 민 전 회장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제안으로 1990년 현대중공업으로 옮긴 뒤 2011년까지 무려 31년간 직장생활을 했다. 2008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2017년엔 국가과학기술유공자에 선정됐다. 산업계 출신으로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은 이는 민 전 회장이 유일하다. 그가 지금까지 낸 특허·실용신안만 300건이 넘는다.

당초 은퇴 후 계획은 무엇이었나.

“퇴직 전 1~3년 사이 세상에 없는 기술을 만들려 했다. 1년만 더 근무해 그런 기술을 완성하고 싶었다. 원래 난 CTO였다. 기술 하는 사람이 CEO 되는 경우가 내가 처음이라고 들었다. 그렇다 보니 일부에서 ‘저 사람 혼자 한 게 아니다. 직원들이 한 것을 도용한 것’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생각도 있다.”

왜 그런 오해가 생겼을까.

“그 큰 회사를 경영한 CEO가 어떻게 그런 걸 하겠느냐고 생각했기에 그런 거 같은데, 재직 시절 나는 중역들에게 그랬다. 저녁 6시 이후에는 중대한 일 아니면 연락하지 말라고. 오후 6시 비서도 퇴근시킨 뒤엔 전화도 직접 받았다. 커피도 직접 타 마시면서 연구·개발을 했다. 지식노동이라는 것이 금방 시작하고 금방 끝나는 일이 아니다. 한번 연구에 몰두하면 새벽 2~3시다. 보통 새벽 3시에 퇴근했다. CEO 재직 시절 4시간 이상 잔 적이 없다.”

그중 한 가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밸러스트(Ballast)라고 우리말로는 ‘평형수’라고 한다. 가령 유조선에서 기름을 다 빼내면 배가 물 위로 뜬다. 경우에 따라선 프로펠러도 물 위에 나오고 바람이 불면 균형을 잡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해 바닷물을 60%가량 채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아프리카 바닷물 속에 있는 균이 미국 바닷물과 뒤섞인다. 이뿐만 아니라 바닷물을 채우고 나면 배에 녹이 잘 슨다. 그래서 수시로 페인트칠을 하는 거다. 그렇기에 그런 과정이 생략된 안전하고 잘 나가는 배를 발명했다. 회사에서 나올 때 그 기술을 전수해 줬는데, 결국 상용화를 못 했다. 그랬기에 나의 이런 연구능력을 높게 산 중국이 퇴직하자마자 연락해 ‘마지막으로 받은 연봉의 5배를 더 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제안을 왜 뿌리쳤나.

“사람은 끝을 잘 맺어야 한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끝을 잘 맺지 못해 나라가 이렇게 된 거다. 대기업 CEO까지 한 내가 중국에 가면 뭐가 되겠느냐.”

이등병 전역했음에도 재입대 후 월남전 참전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의 본관은 조선 말 막강한 세도가였던 ‘여흥 민씨’다. 그의 조부(민준호)는 조선 말 병조참판(현 국방부 차관)을, 부친(민영성)은 경성제국대 의학부 1회 졸업생으로 훗날 국군 의무감을 지냈다. 6~9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고(故) 민병권 전 병무청장(예비역 중장)은 조카, 고(故) 민기식 전 육군참모총장과는 사촌지간이다.

그 역시 경기고를 졸업한 뒤, 육사에 진학했지만 6개월 만에 그만뒀다. 정상적으로 임관했다면 육사 20기로 김영삼 정부 시절 참모총장을 역임한 도일규 대장이 민 전 회장의 동기다. 그를 제외한 형제 모두는 장교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당시 중간에 육사를 나오면 이등병으로 불명예 제대해 군 면제가 됐지만 그는 부친의 뜻을 이어 ROTC에 지원, 2년4개월간 군복무를 했다. 월남전에도 참전했다. 이등병으로 제대한 그가 조카인 민병권 전 병무청장을 찾아가 “조카님, 군에 입대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한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인터뷰에서 그는 “행정착오로 아직까지 내 병역사항은 ‘이등병 전역’으로 돼 있지만, 내가 장교로 복무한 사실을 증언해 줄 사람을 수백, 수천 명 데려올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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