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호-이승우’ 맞대결에 ‘구자철-기성용’ 빅매치까지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27 13:00
  • 호수 1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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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김영권 이어 구자철도 K리그로
2020년대 들어 해외파들 국내 귀환 러시

구자철이 K리그로 돌아온다. 자신의 프로 커리어를 시작한 제주 유나이티드가 목적지다. 2011년 유럽 진출 이후 독일·카타르에서 활약했던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면 반드시 친정팀 유니폼을 입겠다던 약속을 지켰다. ‘쌍용’ 기성용·이청용과 함께 2010년대 한국 축구의 대들보 역할을 한 구자철은 만 33세에 K리그 2막을 쓸 준비를 하고 있다.

구자철은 2007년 드래프트를 통해 제주에 입단했고, 2010년까지 K리그 무대를 누볐다. 2011년 1월 열린 아시안컵에서 득점왕에 오른 그는 독일 분데스리가의 명가 볼프스부르크의 러브콜을 받고 유럽으로 진출했다. 2019년 여름까지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독일의 볼프스부르크, 아우크스부르크, 마인츠에서 꾸준히 활약했다. 지동원, 김진수, 홍정호, 이재성, 황희찬 등 후배들이 독일 무대로 진출하는 데 그의 존재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카타르 무대에서 뛰던 구자철은 최근 알아라비와의 이적 협상이 결렬되면서 자유계약 신분이 됐다. 꾸준히 교감을 나누던 제주와 극적인 합의를 하며 K리그 무대로 11년 만에 돌아오게 된 것이다.

ⓒ연합뉴스
왼쪽부터 전북 현대 백승호, 수원FC 이승우, 제주 유나이티드 구자철, FC서울 기성용ⓒ연합뉴스

‘쌍용 대전’ 이어 ‘쿠키 대전’에 ‘승승 대전’까지

구자철의 복귀는 K리그의 콘텐츠를 한층 풍성하게 만들 호재다. 특히 절친인 동갑내기 기성용과의 맞대결에 관심이 쏠린다. 구자철과 기성용은 과거 팬들에게 ‘쿠키(영문 성 조합) 콤비’로 불리며 남아공월드컵을 기점으로 A대표팀 세대 교체의 중심에 섰던 스타플레이어다. 2012년에는 함께 중원을 이끌며 홍명보 감독과 함께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동메달 획득의 전설을 썼다. 2020년 여름 먼저 K리그로 돌아온 기성용 역시 구자철의 국내 복귀 소식이 공표되자 SNS에 함께 찍은 옛 사진을 올리며 ‘얼른 와라’라는 메시지로 환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K리그는 이름값 높은 스타들이 유럽을 비롯한 해외에서 속속 돌아오며 최근 2년간 많은 화제를 불러모았다. 이청용(울산), 기성용(서울)이 2020년에 돌아왔고, 2021년에는 백승호가 전북에 입단하며 많은 팬의 시선을 끌었다. 2022 시즌을 앞두고도 이승우(수원FC)와 김영권(울산)이 돌아왔는데 여기에 구자철까지 가세한 것이다. 지난해 울산 사령탑을 맡으며 K리그에서 첫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홍명보 감독 역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박주영과 김영권의 울산행은 홍명보 감독의 영향이 컸는데, 이런 식의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나오며 매 라운드 빅매치가 벌어지는 중이다.

2월19일 벌어진 K리그 2022 시즌 개막전에서도 해외파의 귀환으로 인한 빅매치가 성사됐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명가 FC바르셀로나의 유스 출신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백승호와 이승우의 맞대결이었다. 백승호는 지난 시즌 진통 끝에 전북에 입단했지만, 빠르게 주전으로 올라서며 팀 우승에 기여했다. 올 시즌 부주장에 선임된 그는 개막전에도 선발 출전하며 전북의 중원을 이끌었다. 상대팀인 수원FC에는 이승우가 있다. 바르셀로나와의 성인 계약에 실패한 이승우는 이후 이탈리아, 벨기에, 포르투갈 무대에서 뛰었지만 확실히 자리를 잡지 못했다. 결국 올 시즌을 앞두고 K리그로 입성했고, 고향인 수원을 연고지로 하는 수원FC에 입단했다.

이승우는 벤치에서 출발했다. 유럽에서 꾸준한 경기 출전이 어려웠던 이승우는 동계훈련을 소화했지만 몸 상태가 완전치 않았다. 시즌 초반에는 이승우를 공격적인 조커 카드로 쓰겠다는 계획을 밝힌 수원FC의 김도균 감독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교체 투입했다. 지난 시즌 득점 2위 라스와 투톱을 형성한 이승우는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특유의 과감하고 저돌적인 드리블 돌파로 전북 수비진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경기는 전북의 1대0 승리였지만, 이승우는 플레이부터 판정 항의까지 모든 게 화제였다. 중계 카메라는 벤치에서 몸을 풀거나 동료들에게 기운을 불어넣는 이승우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잡았다.

뉴미디어 플랫폼의 중심인 유튜브에는 그런 이승우의 활약상과 신변잡기를 다룬 콘텐츠들이 쏟아졌다. 이날 경기 중에는 이승우가 전북의 주장인 센터백 홍정호에게 걸려 넘어지는 장면이 나왔다. 페널티킥이 선언되지 않았는데, 이승우는 이후 자신의 SNS에 해당 장면을 올리며 불만을 표출하는 이모티콘을 더했다. K리그 규정상 경기 후 모든 구성원은 공식 기자회견, SNS 등 대중에게 노출되는 경로를 통해 판정에 대한 불만을 표출할 경우 제재금 징계를 받는다. 이승우는 논란이 일자 빠르게 해당 사진을 지웠지만,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경위서 제출을 요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논란조차도 며칠간 화제가 됐다.

 

K리그 통해 새 전환점 마련하려 전성기 때 복귀하기도

해외에서 뛰다 K리그로 복귀한 선수의 숫자는 올 시즌을 앞두고 유독 많다. 이승우, 구자철, 김영권 외에도 중동과 일본에서 뛰던 이명주, 이용재(이상 인천), 오스트리아와 크로아티아에서 뛰던 오인표, 김현우(이상 울산), 김규형(제주) 등이 돌아왔다. 2020 시즌부터 해외파 선수들이 K리그 복귀를 매력적으로 받아들이며 전·현 국가대표 선수들이 속속 돌아오는 경향이 강해졌다. 과거 해외파 선수들의 K리그 유턴은 크게 두 가지 목적에서였다. 하나는 병역 해결을 위한 복귀였다. 최근에도 권창훈이 군 문제 해결을 위해 돌아왔고 지난해 말 김천상무로 향했다. 또 다른 하나는 마지막 보루라는 이미지였다. 선수 말년에 돌아와 지도자 등 제2의 인생을 대비하는 목적이었다. 그럴 경우 전성기에 미치지 못하는 경기력으로 인해 기대했던 멋진 마무리를 못할 때도 있었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20대 초중반에도 국내로 돌아와 K리그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려는 분위기가 강하다. 백승호와 이승우가 대표적이다. 특히 백승호는 지난 시즌 전북에서 재기하며 벤투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에도 꾸준히 뽑히기 시작했다. 백승호의 성공은 ‘뛰지 못해도 유럽에서 버티는 게 낫다’는 인식을 깨는 계기가 됐다. 유럽에서 성공을 거둔 선수들도 K리그 복귀 시기를 이전 선배들보다 앞당기고 있다. 기성용은 만 31세, 이청용은 만 32세에 돌아왔다. 이번에 복귀하는 구자철도 만 33세다. 리그 정상급의 경기력을 보여줄 여력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K리그로 귀환한 것이다. 기성용은 “K리그에서 출발해 성공을 거두고 유럽으로 나간 만큼, 좋은 기량을 보여드릴 수 있는 시기에 돌아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도 국내 복귀를 앞당기는 주요 이유다. 의료시설을 비롯한 사회적인 방역 안전망이 잘 갖춰진 국내에서 심리적 안정을 누리며 뛰는 게 금전적 이득보다 낫다는 판단이다. 김영권이 대표적이다. 현재 가족 비자가 신규 발급되지 않는 탓에 김영권은 2021 시즌을 홀로 일본에서 지내야 했다. 일상생활이 쉽지 않은 데다 부상 발생 시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도 쉽지 않았다. 가족과 떨어진 외로움으로 경기력 유지가 더 힘들었다. 세 아이를 비롯한 가족과 함께 지내길 원했던 김영권은 전 소속팀 감바 오사카가 더 나은 조건을 제시했음에도 스승인 홍명보 감독의 러브콜을 받고 울산행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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