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이 하산길에 주의할 점 [쓴소리 곧은 소리]
  •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cj0208@hanmail.net)
  • 승인 2022.04.09 10:00
  • 호수 1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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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이양기 때 중요한 건 ‘알박기 인사’가 아니라 당선인과의 인간적 관계
‘법대로 권한 행사’ 외치다 새 권력자가 취임 후 똑같이 나오면 어쩌려나…

등산을 유달리 좋아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삶을 ‘산’에 비유한다면, 3개의 산이 등장한다. 히말라야에서 대망을 품었고, 북악산에서 대망을 만끽했으며, 영축산에서 대망을 내려놓고 말년을 보낸다. 문 대통령은 산과 인연이 많은 탓인지 사저 지역명도 양산(梁山), 동네 이름도 평산(平山), 옆마을 옛이름도 통산(通山)이다. 온통 산, 산, 산이다. 등산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대부분의 사고는 하산길에 일어난다!”고. 문 대통령이 권력의 하산길에 조심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1. 히말라야의 교훈, 미련을 버려라= 2004년 민정수석 1년 만에 스트레스로 치아 10개를 뽑고 임플란트를 한 채 히말라야에 올랐던 문 대통령은 다시 2016년 대권 의지를 다지러 양정철, 탁현민과 함께 히말라야에 올랐다. 2022년 4월 김정숙 여사의 옷값 논란이 일자 탁현민 의전비서관은 6년 전 히말라야에서 문 대통령과 주고받았던 ‘금괴 이야기’ 동영상을 공개하며 헛소문이라고 일축했다.

신구 권력 갈등의 와중에 때아닌 히말라야가 소환되어 파문이 커졌다. 정권교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순조로운 인수인계와 공공기관 인사, 그리고 전임-신임 대통령의 인간적 관계다. 이 가운데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한데 문재인-윤석열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면, 청와대 이전 비용 문제나 공공기관 ‘알박기 인사’,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문제 같은 난제도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 있다. 신구 권력자의 나쁜 관계는 곧바로 한덕수 신임 총리 등의 국회 인사청문회와 같은 여야 협치에 악영향을 미친다.

문재인 대통령이 4월5일 북악산 남측 탐방로에 위치한 법흥사터에서 김현모 문화재청장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청와대는 4월6일 북악산 북측면의 1단계 개방이 이뤄진 지 1년6개월 만에 남측면을 개방해 북악산 전 지역이 시민들에게 전면 개방된다고 밝혔다.ⓒ연합뉴스

혹여 상왕정치·훈수정치·지방정치를 꿈꿔선 안 돼

과거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직후 참모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명박 당선인을 겨냥해 “계속 점령군처럼 행세한다면 내 마음대로 해버리겠다”고 포문을 열었다가 곧바로 사정의 칼날을 받지 않았던가? 5월9일 밤 12시 땡! 종소리가 날 때까지 문 대통령이 ‘법대로, 원칙대로’를 외친다면 윤 당선인이 취임날부터 월성원전-울산 선거개입 의혹-대장동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법대로, 원칙대로’를 외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전·현직 대통령 사이에 ‘강대강(强對强)’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외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블로그에 올린 한 히말라야 등산가의 하산 소감이 새삼 와닿는다. “정상에 머무르는 순간은 잠깐일 뿐, 미련 없이 내려가야 한다. 하산길이 아쉬워 자꾸만 뒤돌아보면 미끄러져 추락한다.”

#2. 북악산의 교훈, 사심을 버려라= 청와대와 인수위 간 신경전 속에 북악산이 등장했다. 문 대통령은 1968년 김신조 무장간첩 일당의 청와대 습격 사건 이후 54년 동안 폐쇄됐던 북악산을 4월6일 완전히 개방했다. 그런데 이 시점이 하필 윤 당선인의 용산 집무실 이전 비용이 의결된 시점과 일치해 ‘청와대의 물타기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게다가 문 대통령 부부가 4월5일 북악산에 올라 법흥사터 문화재를 깔고 앉아 이야기하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어 불교계의 반발까지 샀다.

퇴임하는 역대 대통령이 갖게 되는 사심 또는 욕심은 세 가지다. 재임 중 업적을 높이 평가받고 싶고, 어디서나 깍듯한 예우를 받고 싶고, 은연중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마음이다. 문 대통령의 속마음도 비슷할 것이다.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 K방역, 초유의 레임덕 없는 대통령…. 거기다 6월1일 지방선거가 있으니 어떤 형태로든 민주당에 도움을 주고 싶지 않을까? 혹여 신생 권력자인 당선인과 경쟁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발동했다면 여간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상왕정치’는 차치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훈수정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방정치’ 논란도 비슷한 맥락이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산에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3. 영축산의 교훈, 늘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을= 문 대통령이 노후를 보낼 양산 사저에서 승용차로 5분 남짓 거리에 영축산이 있다. 산의 모양이 부처가 설법을 했다는 인도의 마가다왕국 왕사성에 있는 영축산과 비슷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에 대한민국 3대 사찰로 꼽히는 양산 통도사가 있다. 통도사의 성파 스님이 3월30일 조계종 최고 권위의 15대 종정에 올랐는데 문 대통령 부부는 이날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종정 추대법회에 참석했다. 성파 종정은 이 자리에서 “초발심으로 돌아가자. 지금까지 있던 거 싹 지워버리고 새로 출발한다면 우리 가정, 사회, 국가도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말했고, 문 대통령은 “퇴임하면 자연인으로 돌아가서 잊힌 삶,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고 화답했다.

 

“당신이 산을 오른 게 아니라 산이 당신을 품어준 것”

문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도 국민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미안함, 회한을 가져야 할 것이다. 원인이야 어찌 됐든 3년째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과 중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아우성,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오른 집값 때문에 서울을 떠난 사람의 절반이 2030이라는 사실, 임기 5년 내내 지속된 국론분열…. 문 대통령은 이런 아픈 사연들에 죄송한 마음을 갖고, 그런 가운데 40% 이상의 지지율을 보여준 국민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중 특별한 업적을 쌓지는 못했지만 퇴임 후 국제적인 갈등 조정과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집 지어주기(해비타트운동)로 재임 때보다 더 많은 찬사를 받았다.

최초로 히말라야 16개 8000m 고봉을 모두 등정했던 ‘산 사나이’ 엄홍길 대장이 말하는 ‘하산의 법칙’을 문 대통령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 “내가 산을 오른 게 아니라 산이 나를 품어준 것이다” “내가 지금 살아있는 이유는 동료들의 희생 덕분이다”. 문 대통령의 마지막 30여 일 하산길은 국민의 뇌리에 또박또박 선명하게 기록되고 있다. 그만큼 경계하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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