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한 자리씩 차지한 ‘대기업 오너’의 명과 암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2.06.27 07:30
  • 호수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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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큰 지원으로 K스포츠 위상 강화” vs “스포츠가 정경유착의 새로운 고리”

재계의 ‘스포츠 사랑’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국내 주요 기업 총수들이 스포츠 단체장을 도맡으며, 해당 종목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 스포츠의 위상이 국제사회에서 높아진 것도 재벌들의 이런 헌신적인 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면에는 뒷말도 적지 않다. 한국학생승마협회 회장직 수행을 두고 자격 논란이 불거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무가 대표적이다. 그의 어두운 과거가 발목을 잡았다. 2017년 김 상무는 만취 상태에서 술집 종업원을 폭행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집행유예 기간에 또다시 변호사를 폭행한 사건으로 사회적인 물의를 빚었다. 이런 과거 행적 때문에 김 상무가 체육단체장을 맡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한국학생승마협회 회장직 수행을 두고 자격 논란이 불거진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무가 2021년 7월24일 마사공원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승마 마장마술 예선에서 말 벨슈타프와 함께 경기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한국학생승마협회 회장직 수행을 두고 자격 논란이 불거진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무가 2021년 7월24일 마사공원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승마 마장마술 예선에서 말 벨슈타프와 함께 경기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대기업 총수와 스포츠 단체의 공생

국내 체육단체 상당수는 현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을 임원으로 앉히지 않고 있다. 이른바 ‘맷값 폭행’을 저질렀던 SK 방계의 최철원 M&M 대표가 아이스하키 협회장이 되려다 무산됐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한국학생승마협회 상급단체인 대한승마협회 정관에도 임원 결격 사유의 하나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우’를 명시하고 있다.

물론 지난해 4월 한국학생승마협회 회장에 당선된 김동선 상무는 엘리트 승마선수 출신이다. 그는 2006년부터 승마 국가대표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3개의 금메달을 수상했으며, 지난해 도쿄올림픽에도 참가했다. 지금도 여전히 국제승마대회에 출전하는 등 기업 경영과 선수생활을 동시에 이어 나가고 있다. 이 때문에 김 상무가 초·중·고·대학 승마선수를 육성하고 지원하는 한국학생승마협회 회장으로서 손색이 없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김 상무처럼 기업인들이 스포츠 단체 수장으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건 한국에서 흔한 풍경이다. 지난해 열린 도쿄올림픽 종목 46개와 관련된 국내 스포츠 단체는 총 33곳이다. 이 중 21곳의 수장이 기업인이다. 대한자전거연맹(구자열 전 LS그룹 회장), 대한양궁협회(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대한축구협회(정몽규 HDC 회장), 대한펜싱협회(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대한핸드볼협회(최태원 SK그룹 회장), 대한농구협회(권혁운 아이에스동서 회장) 등은 재벌 총수를 수장으로 맞아 올림픽 전부터 탄탄한 재정적 지원을 받아왔다. 더군다나 기업 총수가 수장을 맡으면 재정적으로 후원을 받을 수 있는 데다 성과도 좋아 단체장으로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재벌 총수 역시 스포츠 지원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개인적인 명예도 얻을 수 있어 ‘1석2조’다.

기업인이 스포츠 단체를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한 건 전두환 정권 때부터다. 1981년 88서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전두환 정권은 스포츠 단체장으로 ‘돈줄’인 재벌 회장들을 차출했다. 당시 올림픽 유치 준비위원장이었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1982년 대한체육회장 겸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으로 앉혔다. 같은 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대한레슬링협회 수장에 올라 15년간 회장직을 역임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역시 이때 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에 올랐다.

2021년 7월30일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안산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목 에 금메달을 걸어주고 있다.ⓒ연합뉴스
2021년 7월30일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안산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목 에 금메달을 걸어주고 있다.ⓒ연합뉴스

스포츠 산업 육성 위해 재계 ‘총동원령’도

물론 당시까지만 해도 군부정권에 의해 ‘울며 겨자 먹기’로 체육단체장 자리를 떠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권은 스포츠 산업 육성정책을 펼치고 있었으며, 경제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돈이 있는 대기업 오너들을 동원한 것이었다. 재벌들이 최고 권력자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는 스포츠 단체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기업인들이 체육단체장을 맡는 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당시 군부정권이 기업인들의 팔을 비틀어 스포츠 산업을 육성했지만, 결론적으로는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를 만들었다”며 “스포츠 산업을 키워야 하는 권력과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스포츠 단체, 명예가 필요한 대기업의 이해관계가 오늘날 기업인들이 체육단체장을 맡게 된 배경이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기업 총수들이 스포츠 단체의 수장을 맡는 게 오히려 당연하다는 인식마저 생겼다.

기업 총수들이 대를 이어 특정 체육단체를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차그룹과 대한양궁협회다. 전두환 정권은 1985년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을 대한양궁협회장으로 차출했다. 이후 정 명예회장은 1997년까지 양궁협회장을 연임했다. 이런 인연으로 2005년 아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양궁협회장에 올랐다. 정의선 회장은 16년째 양궁협회를 이끌고 있으며, 지난해 도쿄올림픽 때 직접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정몽구 명예회장 부자가 한국 양궁 발전을 위해 지난 40여 년간 지원한 금액만 5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전경련을 비롯해 대한상공회의소 등은 재벌의 비인기 스포츠 종목 지원을 사회공헌의 하나로 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한데볼’(핸드볼이 비인기 종목이라는 것을 빗댄 말)로 찬밥 취급을 받던 핸드볼을 10년 넘게 지원하고 있다. 최 회장은 2008년 12월 협회장에 올라 2013년 연임했다. 이후 2014년 초 물러났다가 2016년 핸드볼협회와 국민생활체육 전국핸드볼연합회 통합 회장에 추대돼 다시 핸드볼과 인연을 이어갔다.

그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SK핸드볼 경기장을 2011년 건립했고, 남자부 코로사와 여자부 용인시청이 해체되자 SK 호크스(남자)와 SK 슈가글라이더즈(여자)를 창단했다. 유소년 선수 육성을 위한 핸드볼 발전재단 설립과 핸드볼 아카데미 운영, 국가대표팀 경쟁력 강화 지원 등 1000억원 이상의 투자를 단행해 왔다. 도쿄올림픽 여자 대표팀의 사기 진작을 위해 금메달 획득 시 선수 1인당 1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포상금도 내걸었다. 코치진을 포함하면 총 22억원 규모였다.

이 때문에 기업인이 체육단체장을 맡으면서 이미지 개선에 큰 효과를 보고 있다. 해당 스포츠 종목의 선전은 곧 기업인의 공로로 돌아간다. 특히 대중은 개별 스포츠 종목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과 지원에는 찬사를 보낸다. 올림픽 같은 국제스포츠대회에서 ‘숨은 주역’ ‘통 큰 지원’ 같은 재벌 회장들의 미담 기사가 쏟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윤홍근 BBQ 회장이 그 덕을 톡톡히 봤다고 평가했다. 특히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빙상이 전체 한국 대표팀의 메달을 모두 책임지며 종합 14위 목표를 달성하는 데 일등공신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 공로도 윤 회장에게 돌아갔다. 효자 종목 쇼트트랙은 중국의 편파 판정에도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윤 회장은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낸 선수들에게 ‘치킨연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해 화제를 모았다. 실제로 4월21일 BBQ는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치킨연금 전달식’을 열고 19명의 쇼트트랙 선수에게 치킨연금을 선물했다. 특히 이번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황대헌은 38년간, 최민정은 37년간 매월 혹은 분기 초에 치킨연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맴버십 포인트로 수령한다. 두 선수는 각각 총 4억원 정도의 쿠폰을 받아 대중의 부러움을 샀다.

부작용도 적지 않다. 한때 체육단체장 자리가 재벌 간 재력 다툼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1997년 1월에는 탁구협회장 자리를 두고 현대와 삼성의 신경전이 절정에 달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대한체육회는 이사회를 열고 한 재벌 기업이 4개 이상의 경기단체를 운영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을 통과시켰다. 또한 어느 기업 회장이 얼마나 지원하느냐에 따라 각 경기단체의 예산 규모가 큰 차이로 벌어지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극명해졌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선수들이 4월21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너시스 BBQ 치킨연금 행복전 달식에서 윤홍근 회장으로부터 ‘치킨연금’을 받은 뒤 기념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선수들이 4월21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너시스 BBQ 치킨연금 행복전 달식에서 윤홍근 회장으로부터 ‘치킨연금’을 받은 뒤 기념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재벌들의 ‘통 큰’ 지원 이면의 노림수 주목 

스포츠가 정경유착의 고리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앞서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의 단초가 된 K스포츠는 정권이 대기업들을 부당하게 압박해 거액의 뇌물(기부금)을 받는 창구로 쓰이기도 했다. K스포츠는 스포츠 문화 토대를 마련하고, 체육 인재 육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재단법인이었다. 이 사건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됐으며, 수많은 관료와 기업인이 재판을 받거나 구속됐다.

아울러 2009년 이명박 정부에서 특별사면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둘러싸고 특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이건희 회장 사면에 대해 ‘경제인 이건희’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이건희’에 대한 사면이라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명분으로 이 회장이 특별사면된 게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한동안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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