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이 짊어졌던 월드 스타의 짐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6.19 15:00
  • 호수 170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단체 활동 중단 선언에 글로벌 파장…“팀과 개별 활동 병행할 것” 해명에도 우려 여전

방탄소년단이 6월14일 오후에 올린 유튜브 영상 ‘방탄회식’을 통해 단체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멤버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었다. 그 속에서 “우리가 잠깐 멈추고 해이해지고 쉬어도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위해 나아가는 것”이라며 지금 당장은 ‘잠깐 멈춘다’고 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 속에서 RM은 “K팝 아이돌 시스템 자체가 사람을 숙성하게 놔두지 않는다. 계속 뭔가를 찍어야 하고 해야 하니까 내가 성장할 시간이 없다”면서 “내가 인간으로서 10년 전이랑 많이 달라졌다. 내가 생각을 많이 하고, 뒤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다음에, 그것들이 숙성돼서 내 것으로 나와야 하는데 10년간 이렇게 방탄소년단을 하며 물리적인 스케줄을 하다 보니 내가 숙성이 안 되더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보통 뮤지션들은 일정 기간 활동한 후 긴 시간 동안 휴식과 창작에 몰두한다. 앨범 한 장 준비하는 데 몇 년씩 걸리기도 한다. 반면에 방탄소년단은 한국과 해외를 오가며 쉼 없이 달려왔다. 낯선 서양에서 잇따라 대형 TV 프로그램과 시상식 등에 참여하고 유엔과 백악관 일정까지 소화하면서 정신적으로도 언제나 긴장된 상태였을 것이다. 

ⓒEPA 연합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31일(현지시간) ‘반(反)아시안 증오범죄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을 찾은 방탄소년단(BTS)과 대화하고 있다.ⓒEPA 연합

한국 아이돌 시스템의 문제점 환기  

그렇게 정신없이 몰아치는 스케줄에 떠밀려가다 보면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에너지가 고갈되는 번아웃 증후군도 찾아온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기도 한다. 방탄소년단 주요 멤버들이 20대를 마무리하기 때문에 이쯤에서 뭔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보이그룹으로 활동하면서 인격적·예술적 성장이 지체된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RM의 말 속엔 이런 부분들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반적으로 녹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기획사 시스템은 아이돌을 생각의 주체로 세우지 않는다. 생각은 회사가 하고 아이돌은 회사가 잡은 일정대로 활동만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시간이 오래 누적되면 자의식이 강한 사람일수록 공허감을 크게 느낄 수 있다.

RM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최전성기를 맞은 시점에서 세상에 어떤 식으로든지 기능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팀이 뭔지 모르겠다. 나와 우리 팀이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몰랐다. 방향성을 잃었고, 생각한 후에 다시 좀 돌아오고 싶은데 이런 것을 이야기하면 무례해지는 것 같았다. 팬들이 우리를 키웠는데 그들에게 보답하지 않는 게 돼버리는 것 같았다.” 그들만 바라보는 팬들 때문에라도 방탄소년단은 그동안 시간을 갖지 못했다. 

슈가도 “가사가,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억지로 쥐어짜내고 있었다. 지금은 진짜 할 말이 없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번아웃된 상태를 전했다. 지민은 “이제서야 (각자의) 정체성을 가지려는 것 같고 그래서 좀 지치는 게 있는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보이그룹으로서의 콘셉트와 스케줄을 소화하며, 뮤지션으로서의 자의식까지 갖다 보니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각 개인의 활동을 이제 정식으로 펼쳐 나가겠다고 했다. 그동안 단체로만 활동하면서 개인 활동에 대한 갈증이 컸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팀으로만 묶일 수는 없다. 건강한 팀이 되기 위해서라도 각 개인의 정립이 필요하다. 10대 시절에 회사가 만들어준 판에서 10년을 활동했다면 이젠 각자 스스로 정립해 새로운 10년을 준비할 수 있다. 

RM은 이번에 퍼포먼스를 제대로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나중에 모였을 때 제대로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일단 각자 개인 활동과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후 다시 팀 활동으로 복귀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방탄소년단을 오래 하고 싶다. 오래 하려면 내가 나로서 남아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뷔도 “개인으로 다 활동을 하든 뭘 하든 다시 단체로 모이면 시너지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훗날의 팀 복귀를 암시했다. 

 

정치권의 군 문제 논의 외면도 한 몫 

방탄소년단이 백악관에 초청받을 정도로 세계적인 평화 대사나 개념 아티스트로 인식되다 보니 그 기대치에 대한 부감감도 컸을 것이고, 그럴수록 내실을 채워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원래 2020년 《온》까지가 방탄소년단 활동의 시즌1이었다고 한다. 그 후 세계 공연에 나설 생각이었는데 코로나19로 무산되고 《버터》 《퍼미션 투 댄스》 등이 나왔다. 방탄소년단의 이전 음악과는 다른, 가벼운 노래들이었다. 멤버들에게 정체성 혼란이 찾아왔다. 이때부터는 스스로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신드롬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그래미상 수상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엔에 갔고 백악관에 갔다. 급류에 휘말려가는 느낌에서 일단 쉼표를 찍고 정리할 필요성을 느낀 것 같다. 이제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새로운 여정에 오르게 된다. 

어차피 정치권이 그들의 군 문제 논의를 외면함으로써 팀 활동 계획을 세우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병역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올해 진이 입대해야 한다. 내년부터 슈가, RM, 제이홉, 뷔, 지민 등이 순차적으로 입대하게 된다. 이진형 하이브 CCO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병역 문제의 불확실성 때문에 힘들어한다며 “본인들의 계획을 짜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한 바 있다. 팀으로서의 활동 계획을 세우기가 어렵기 때문에 개별 활동 체제로 전환하는 의미도 있어 보인다.

국내외에서 파장이 나타난다.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의 보이밴드 방탄소년단이 데뷔 9주년을 기념하며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방탄소년단은 2013년 등장 이후 영향력 그 자체였다”고 보도했다. BBC는 “방탄소년단이 그룹을 해체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전성기임을 고려하면 K팝뿐만 아니라 세계 가요계, 대중문화계에 큰 파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가디언은 “(BTS가) 데뷔를 기념하는 스트리밍 방송에서 ‘폭탄’을 떨어뜨렸다. ‘지쳤다’ ‘힘든 시간을 지나왔다’면서도 ‘더 강한 그룹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미는 충격에 빠졌다. 소속사인 하이브의 주가 역시 큰 폭으로 하락했다. 하이브가 뒤늦게 진화에 나섰지만 일련의 소동을 바라보는 가요계의 우려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한민족 사상 최대의 스타다. K팝의 위상을 제고하는 데 막대한 역할을 했다. 그것이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인식 제고, 더 나아가 우리 국가에 대한 관심과 호감으로 이어졌다. 세계 젊은이들에게도 긍정과 평화의 대명사, 희대의 팝스타로 큰 영향을 미쳤다. 충격과 상실감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더 방탄소년단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부담감을 키울 것이다. 부디 그들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언제 어디서 어떤 형식이건, 가볍게 즐기면서 팀 활동을 다시 하게 되길 바란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