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死道) 된 사도(私道)…위험에도 개발 힘든 이태원 골목[공성윤의 경공술]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2.10.30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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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압사 벌어진 해밀톤호텔 옆 50평 골목길…지자체, 기업, 개인 등 소유관계 복잡해 보수공사 어려울 듯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119-3번지와 119-6번지 도로. 50평 남짓한 이 좁은 도로가 하룻밤 사이에 ‘죽음의 길’이 돼 버렸다. 10월29일 밤 벌어진 압사 참사로 200명 넘는 사상자가 이 길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태원 일대의 좁은 골목은 관광명소로 유명하지만 인파가 몰리면서 위험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사고 골목은 워낙 소유관계가 복잡한 탓에 개발이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10월30일 서울 용산구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가 벌어진 이태원동 119-3∙6 도로 앞 현장 부근에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10월30일 서울 용산구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가 벌어진 이태원동 119-3∙6 도로 앞 현장 부근에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비극이 발생한 이태원동 119-3∙6 도로는 이태원의 랜드마크 격인 해밀톤호텔 옆 골목길이다. 호텔 정문을 바라보면 왼쪽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해밀턴호텔 뒤편의 번화가로 유명한 세계음식거리에서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연결하는 최단 코스다. 양쪽으로는 호텔의 공사용 가벽과 편의점, 술집, 옷가게, 힙합클럽 등이 늘어서 있다. 경사는 그리 가파르지 않은 내리막길이다. 면적은 총 160㎡(48.4평)로 길이 45m, 폭은 4m 정도다. 성인이 가로로 붙어 움직이면 7~8명 이상은 지나가기 힘들 정도다.

‘굳이 좁은 길로 다닐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인파가 많이 몰리는 날에는 어쩔 수 없다. 이태원역 2번 출구에서 해밀톤호텔 정문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이태원동 123-16 도로는 폭이 약 7m로 비교적 넓다. 하지만 이곳은 행사가 열리기도 하고 차가 지나다니기도 해서 때로 통행이 쉽지 않다. 꼭 핼러윈이 아니라 평상시 주말에도 사람들이 많다 보니 적체가 심한 길이기도 하다. 이 와중에 해밀톤호텔을 가로지르는 길은 없다 보니 자연스레 이태원동 119-3∙6 도로에 사람들이 북적이곤 한다.

해당 도로를 둘러싼 인명 사고 위험은 예전에도 상존했다. 매년 핼러윈 때마다 통행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뤄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사가 심하지 않음에도 미끄러운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지형상 햇볕이 잘 들지 않아 물웅덩이가 자주 고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경찰 관계자는 “술과 액체류 등이 바닥에 뿌려져 있어 사람들이 더욱 쉽게 미끄러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험에도 불구하고 개발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소유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다. 이태원동 119-3∙6 도로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해당 도로의 소유자는 30명에 달했다. 119-6의 경우 해밀톤호텔을 운영하는 ㈜해밀톤관광이 43%를 소유해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다. 그 다음으로 대한주택공사(현 LH)가 10%를 보유하고 있다. 그 외에 서울시가 1%, 나머지 46%는 개인 27명이 나눠 갖고 있는 구조다. 개인 몫의 지분은 상속과 증여 때문에 세분화된 것으로 파악된다.

압사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119-3·6 도로 위치. ⓒ 네이버 지도 캡처
압사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119-3·6 도로 위치. ⓒ 네이버 지도 캡처

 

소유자만 30명…허락 없이 개발 불가능해

이 같은 사도(私道∙개인이 소유해 도로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도로)는 소유자 허락 없이는 개발이 불가능하다. 안전을 위해 도로 확장이나 보수 공사를 하려고 해도 일정 이상 소유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만약 이태원동을 관리하는 용산구청이 강제로 공사를 진행하면 소유자들이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게다가 각종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어 추후 권리관계를 두고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근저당권자가 임의경매에 넘겨버리면 도로 특성상 낙찰률이 낮아 소유관계의 불확실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또 도로와 인접한 토지∙건물 소유자의 이해관계도 고려돼야 한다. 단 개인이 소유한 사도라도 사람들의 통행을 막는 건 직권남용 차원에서 제한된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 후 일각에선 “당국에서 보행자의 동선을 통제하는 조치를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방통행만 가능하도록 하거나 아예 위험한 도로는 사전 차단해 경찰이 통행을 관리할 수 있도록 손을 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쉬운 목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참사의 슬픔을 예고하는 실종신고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30일 오후 2시까지 접수된 실종신고는 3580건에 달했다. 사망자는 151명, 부상자는 103명으로 집계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전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오늘부터 사고 수습이 일단락될 때까지 국가 애도 기간으로 정하고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본건 사고의 수습과 후속조치에 두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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