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발 ‘돈맥경화’에 건설업계도 ‘빨간불’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2.11.06 14:05
  • 호수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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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시장 자금 경색으로 PF 부실 우려 커져
고금리에 미분양 공포로 건설 체감경기도 급락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사태의 후폭풍이 건설업계로 확산되고 있다. 기준금리가 오르고 자재와 인건비 등 물가가 크게 상승하면서 사업성이 떨어진 데다,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과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까지 막혔기 때문이다. 자금 경색으로 부동산 PF 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레고랜드 사태의 ‘나비효과’가 건설업계까지 미쳤다. 특히 중견·중소 건설사와 시행사들을 중심으로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정부가 채권시장 안정 등을 위해 50조원+알파 규모의 유동성 지원책을 내놓았지만 우려는 여전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건설업계가 마주했던 연쇄 부도와 구조조정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10월24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시사저널 최준필

레고랜드 사태 이후 신규 PF 대출 중단

부동산 PF 대출은 토지비를 6개월~1년간 대출하는 브리지론과 이후 공사비와 사업비 일부를 대출하는 본PF로 나뉜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브리지론에서 본PF로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사업계획승인이 난 뒤 본PF 대출을 받아 금리가 높은 브리지 대출을 상환하고 착공해야 하는데, 레고랜드 사태 이후 신규 PF 대출의 승인이 나지 않고 있어서다.

여기에 주택시장 경기가 침체되며 미분양 주택까지 늘어났다. 미분양 주택은 2021년 1만7710가구였지만 올해 9월말 기준 4만1604가구로 2.3배 이상 늘었다. 정상적으로 분양이 이뤄지면 계약금과 중도금 등으로 PF 자금을 상환할 수 있지만 계약이 저조할 경우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 PF 자금을 제대로 갚지 못하게 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 6월말 기준 부동산 PF는 112조2000억원이다. 부동산 경기 개선 직전인 2013년 말(35조2000억원)에 비해 4배 가까이 급증했다.

PF는 위험성이 큰 대출이기 때문에 실행할 때 건설사에 ‘신용 보강’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시행사가 대출금을 갚지 못할 경우 시공사가 빚을 떠안거나, 공사비 지급 여부와 관계없이 건물을 준공하는 것이다. 미분양과 미착공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PF 보증이 건설사의 부채가 될 가능성도 커졌다. 한국신용평가(KIS)에 따르면 올 6월말 KIS 투자등급을 보유한 국내 건설사 20곳의 PF 보증 규모는 18조원. 2018년 말(12조원)보다 50% 늘었다. 그만큼 PF 차환 리스크가 높은 것이다.

리스크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단지에도 미쳤다. ‘재건축 최대어’로 불리는 둔촌주공은 보증을 선 시공사업단이 자체 자금으로 사업비를 상환하고 내년 초 일반분양을 할 때까지 직접 공사비를 조달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가, 만기를 하루 앞두고 채권시장안정펀드를 통해 가까스로 PF 차환에 성공했다. 둔촌주공의 경우 그나마 우량한 사업장이라 차환 발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규 PF는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도 PF 대출이 막혀 사업이 중단되는 현장이 늘고 있다.

금융권은 부동산 PF 등 관련 대출을 전면 중단하거나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새마을금고중앙회는 대규모 사업장 대출의 기한 연장을 보수적으로 처리하라는 지침을 최근 내렸다. 농협중앙회는 11월4일부터 전국 농축협의 부동산 개발 관련 신규 대출을 중단키로 했다. 시공능력 평가 순위 100위 이내 시공사가 지급을 보증한 경우 예외적으로 대출이 가능하다는 단서를 붙였지만, 상황이 악화되면 범위가 축소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워크아웃을 겪었던 곳 중에 탄탄한 중견 건설사도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위기론이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한다. 당시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회수와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실패가 이어지면서 100대 건설사 중 45개사가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2011년에도 월드건설, LIG건설, 임광토건이 PF 부실로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흑자를 내던 기업들이 시행사 PF 보증으로 인해 부채를 떠안으면서 부실화된 사례가 상당수였다.

위기는 이미 현실화됐다. 주택사업을 키우면서 급성장한 충남 지역 중견 건설업체 우석건설은 최근 1차 부도 처리됐다. 이 외에도 지방 건설사들이 은행권으로부터 PF 대출심사를 받지 못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대출이자 부담으로 경영에 타격을 받은 곳도 많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12개 건설사가 도산했고, 이미 올해 7월까지 8개사가 도산했다. 실적 금액 500억~1000억원에 해당하는 대형 건설사까지 목록에 포함됐다.

 

건설 체감경기 10년 만에 최저치

건설 체감경기도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달 기업의 건설업 체감경기를 지수화한 건설기업 경기실사지수(CBSI)는 전월 대비 5.7포인트 하락한 55.4로 집계됐다. 2013년 2월(54.3)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기준선인 100을 밑돈다는 것은 현재 건설 경기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는 기업보다 비관적으로 보는 기업이 더 많다는 뜻이다. 박철한 연구위원은 “최근 레고랜드발 부동산 PF 부실 우려로 건설업계의 체감경기가 악화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견 건설사들의 기업 심리가 크게 위축된 것이 지수 하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시행사들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금융사와 신용평가사는 시행사와 건설사의 자금 상황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한국기업평가(KR)는 지난 9월 롯데건설, 태영건설, HDC현대산업개발, 지에스건설, 대우건설의 PF 우발채무 규모가 큰 편이라고 분석했다. 롯데건설의 경우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상당수가 미착공 사업으로 구성돼 있고, 만기 구조가 단기화돼 있다는 점을 짚었다. KR은 “태영건설은 만기 구조가 장기화돼 있고 우발채무 규모가 큰 프로젝트들의 분양률이 우수하나 재무완충력을 감안할 때 PF 우발채무 규모가 과중한 수준이고, 코오롱글로벌은 상대적으로 과소한 자본 대비 조정 우발채무 규모가 크다”고 진단하면서 “PF 우발채무 규모와 질적 리스크를 종합할 때 롯데건설, 코오롱글로벌, 태영건설 등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봤다.

유동성 위기가 중소 건설사의 연쇄부도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건설업계는 정부가 미분양 해소를 위한 전향적인 규제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한주택건설협회는 지난 9월 ‘주택경기 침체 해소 방안 마련’ 보고서를 국토교통부에 제출하면서 아파트 매입임대 등록 허용을 앞당기고 공공에서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 유동성을 지원하는 방안을 건의하기도 했다.

권주안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 침체 상황은 최근 레고랜드 부도로 인한 단기 금융시장 경색으로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기업의 단기 자금 조달 시장인 CP와 회사채 그리고 부동산 시장 자금 조달원 중 하나인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시장이 경색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또 “건설원가 상승으로 인한 자금 부담이 달러화 강세 등으로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여기에 단기 금융시장 경색은 건설시장 여건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며 “고금리 정책 기조에 따른 시장금리 상승에 대한 대비뿐 아니라, 단기에 발생할 수 있는 자금 흐름 경색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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