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24시간 깨어있다’더니…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07 08:05
  • 호수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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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명이 넘는 생명을 무참히 앗아간 이태원 압사 참사가 일어난 지 이틀이 지난 10월의 마지막 날 오후에 사고 현장을 찾았다. 직접 보지 않고는 마음이 편치 않고, 함부로 말하기도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옆길에는 시민들이 놓고 간 조화가 벌써 많이 쌓여 있었다. 그곳에서 중간중간 꽂혀 있는 편지글을 읽는 사이 예기지 않게 한덕수 국무총리가 불쑥 눈앞에 나타났다. 총리 일행이 헌화를 하며 짧게 머무르는 동안 “똑바로 하라”고 외치는 한 시민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몇 명의 경찰이 사람들을 뚫고 지나가면서 이런 말을 서로 주고받았다. “보행로를 확실히 확보해야 해.” 순간 ‘그래, 지금 하는 이 말을 바로 그때 했어야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시민들의 마음이 꽃으로 모여 쌓인 그 자리에서 고개를 돌리니 100m쯤 떨어진 길모퉁이에 자리 잡은 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지역 119센터라는 간판과 함께 이런 글귀가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24시간 깨어있습니다’. 이 문장은 달리 풀이하면 ‘국민의 안전을 위해 (국가는) 24시간 깨어있습니다’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지금 국민이 바라는 정부도 어쩌면 그렇게 ‘안전을 위해 24시간 깨어있는 정부’일지 모른다.

전국민중행동·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한국여성단체연합 등 노동·시민단체 관계자들이 3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경찰의 동향파악 내부 문건 작성 사태를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민중행동·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한국여성단체연합 등 노동·시민단체 관계자들이 3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경찰의 동향파악 내부 문건 작성 사태를 규탄하고 있다.ⓒ연합뉴스

어처구니없는 이번 참변의 원인을 두고 여러 갈래의 말이 나오고 있지만,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이 가리키는 방향은 대부분 한곳으로 쏠려 있다. 경찰 등 경비 인력이 좀 더 많이 배치되어 적극적인 통행 통제에 나섰더라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핼러윈데이를 즈음해 이 지역에 많은 사람이 운집할 것임은 일찌감치 예견된 일이었다. 과거 사례뿐만 아니라 당일 오후부터 밀려든 인파의 규모, 사고 전 112 신고 등으로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곳에는 알림판은 물론, 통제에 나설 안전관리 인원이 거의 없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행정‘안전’부의 장관이 내놓은 말은 그러나 너무 뜻밖이었다.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라는 그의 발언은 결국 큰 논란을 불렀고 여야 모두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나중에야 “국민들께서 염려하실 수도 있는 발언을 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물러섰고, 이후 112 신고 녹취록이 언론에 공개된 뒤에 관계자들의 사과가 잇따라 나왔지만 이미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상당한 ‘유감’을 남긴 뒤였다. 그 모든 ‘유감’과 ‘사과’를 떠나 이제는 법적으로든 도의적으로든 책임 있는 이들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국민에게 도리를 다할 차례다.

일반적으로 공공질서 유지는 국민이 자격을 인정하는 경찰 등 공무원이 책임지고 나서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라고 국민 세금이 들어가고, 공권력이라는 타이틀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경찰을 비롯한 경비 인력이 현장에 적절히 배치돼 원활한 통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잘 유도하기만 했어도 참사는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들이 지적하는 그 일들을 완수해 내고 나서야 비로소 누구 탓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에게 닥치는 대형 사고는 대부분 국가가 있어야 할 곳에 국가가 없을 때 일어나고야 만다. 그런 까닭에 그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비극 앞에 참으로 면목이 없다. 지면을 빌려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분들의 명복을 온 마음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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