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후계자로 딸 주애 ‘내정’한 듯
  •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19 08:05
  • 호수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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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귀하신’ ‘존경하는’ ‘결사보위’ 표현은 후계자에 사용하는 표현
김정은도 8세 때 김정일로부터 후계자 내정돼

북한이 지난해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둘째 자녀인 ‘김주애 띄우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북한은 2022년 11월19일자 노동신문을 통해 전날(18일) 김정은이 자신의 딸과 함께 다정하게 손을 잡고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근처까지 가서 관찰하고 ICBM 시험발사 장면을 참관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그로부터 8일 후 11월27일자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성공에 기여한 공로자들과 함께 ‘역사에 길이 남을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김정은이 ‘존귀하신’ 자제분과 함께 촬영장에 나왔다고 보도함으로써 김주애에 대해 ‘존귀하신’ 자제분이라는 존칭을 사용했다.

조선중앙TV는 2월9일, 전날 밤 열린 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 기념 열병식을 녹화중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딸 김주애가 얼굴을 만지자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김덕훈 북한 내각총리 ⓒ연합뉴스
조선중앙TV는 2월9일, 전날 밤 열린 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 기념 열병식을 녹화중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딸 김주애가 얼굴을 만지자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김덕훈 북한 내각총리 ⓒ연합뉴스

김주애에 쓴 ‘존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만 써

그런데 노동신문 사이트에서 ‘존귀(尊貴)’라는 단어로 검색해 보면, 이 용어는 김일성·김정일과 같은 ‘선대 수령’ 그리고 김정은과 같은 ‘현재 수령’에게만 사용됐다. 이런 용어를 김주애에게 사용한 것은 곧 그가 북한의 ‘후대 수령’이 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북한은 2023년 새해 첫날 조선중앙TV를 통해 김정은이 김주애와 함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과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로 불리는 KN-23을 시찰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북한이 김주애의 사진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북한의 ‘김주애 띄우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올해 2월8일 노동신문은 김정은의 인민군 장령 숙소 방문 및 인민군 창건 75주년 기념연회 개최를 보도하면서 김주애에 대해 ‘존경하는 자제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아직 10대의 어린 김주애에 대해 북한 노동신문이 일반 간부들에게는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존경하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김주애에 대한 우상화의 시작으로 해석할 수 있다.

2월8일자 노동신문은 테이블의 정중앙에 김주애가 앉고 그 좌우에 김정은과 리설주가 앉고 그 뒤에 군부 핵심 간부들이 병풍처럼 서서 찍은 사진을 여러 장 게재했다. 이 같은 사진은 군부 핵심 간부들에게 김주애가 앞으로 자신의 후계자가 될 것이니 앞으로 잘 떠받들라는 김정은의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었다. 

2월8일 개최된 인민군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녹화중계에서 공개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백마(맨 오른쪽)와 김정은의 딸 김주애 소유로 추정되는 백마(오른쪽 두 번째) ⓒ연합뉴스
2월8일 개최된 인민군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녹화중계에서 공개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백마(맨 오른쪽)와 김정은의 딸 김주애 소유로 추정되는 백마(오른쪽 두 번째) ⓒ연합뉴스

김여정-리설주 암투설?…지나친 억측

열병식과 관련해서는 북한 TV가 김정은의 백두산 군마 뒤에 “사랑하는 자제분께서 제일로 사랑하시는 준마가 그 뒤를 따라 활기찬 열병의 흐름을 이끌어갑니다”라고 보도함으로써 김주애가 김정은 다음의 지도적 위치에 있음을 시사했다. 열병식에서는 ‘김정은 결사옹위! 백두혈통 결사보위!’ 구호가 계속 이어졌고 카메라는 계속 김주애를 비췄으므로 여기서 말하는 ‘백두혈통’이 김주애를 지칭하는 것은 명백하다. 북한의 열병식 참가자들이 ‘김주애 결사보위’를 외친다는 것은 김주애가 이미 후계자로 ‘내정’되었음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처럼 지난해 11월부터 북한이 김정은의 둘째 자녀 ‘김주애 띄우기’에 나선 것과 관련해 우리 사회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첫 번째 해석은 북한이 핵과 ICBM 개발을 통해 ‘미래세대’의 안전을 담보한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김주애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주애를 단순히 ‘미래세대의 상징’일 뿐이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노동신문은 김주애를 김정은의 ‘사랑하는 자제분’으로 소개하는 수준을 넘어 퍼스트레이디인 리설주나 북한의 실질적인 2인자로 간주되는 백두혈통 김여정에게도 사용하지 않는 ‘존귀하신’ 그리고 ‘존경하는’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김주애를 숭배의 대상으로 선전하고 있다. 또한 노동신문이 퍼스트레이디인 리설주보다 김주애를 먼저 호명하는 등 김주애에게 ‘미래세대의 상징’ 이상의 위상을 부여하고 있어 이 같은 해석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두 번째 해석은 김정은의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는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에게 당뇨 등 약간의 건강 문제는 있을 수 있지만, 2008년 8월 김정일의 뇌혈관계 이상처럼 정상적인 통치를 어렵게 할 심각한 질병은 아직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건강 문제 때문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세 번째 해석은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과 부인 리설주 간에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의구심을 표현하는 전문가는 김주애의 공개에 대한 해석을 놓고 리설주가 김여정에게 “권력 승계는 너한테 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식한테 가는 거니까 절대로 넘보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김여정은 최근까지 각종 정치행사에서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오빠 김정은을 보좌하는 데 만족해 왔기 때문에 이 같은 해석도 지나친 억측 측면이 있다. 그리고 김여정이 소속돼 있는 선전선동부가 직접 ‘김주애 띄우기’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김여정과 리설주, 김주애 간 관계를 갈등적인 관계가 아니라 공생적인 관계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대다수 전문가는 김주애의 나이가 만 10세 정도밖에 안 되는데 김정은이 벌써부터 그를 후계자로 결정할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표시한다. 그런데 김주애가 후계자로 ‘내정’된 것이지 ‘결정’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내정’과 ‘결정’을 명확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 ‘내정’은 특정인에게 어떠한 직책이나 지위를 주기로 결정은 했지만, 아직 준 상태는 아니다. 다시 말해 김주애가 김정은의 후계자로 ‘내정’되었다는 것은 그가 약 10년 후에 성인이 되면 일정한 직책을 부여받을 수 있겠지만, 그 전까지는 ‘후계 수업’을 받을 것임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김주애가 김정은의 후계자로 내정되었다고 해서 ‘권력누수’가 발생할 우려는 전혀 없다. 

북한 조선우표사가 2월17일 발행한다는 우표도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딸 김주애가 함께 찍은 사진이 담겨 있다.
북한 조선우표사가 2월17일 발행한다는 우표도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딸 김주애가 함께 찍은 사진이 담겨 있다.

김정은, 부인·딸 외부 공개…아버지 김정일과 다른 스타일 

김정은이 북한 지도부에서 김정일의 후계자로 ‘공식 결정’된 것은 2008년 말이었지만, 그가 김정일의 후계자로 ‘내정’된 것은 그의 만 8세 생일날인 1992년 1월8일이었다. 필자가 2021년 3월 미국 워싱턴DC에서 만난 김정은의 이모 고용숙 부부의 증언에 의하면, 김정은의 8세 생일날(김정일이 만 50세 때) 그에 대한 찬양가요인 《발걸음》이 김정일과 그의 핵심 측근들 그리고 김정은 앞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고, 김정일은 이때부터 “앞으로 내 후계자는 정은이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세우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냐는 김정은 이모부의 지적에 대해 김정일은 계속 “나를 닮아서”라고 대답했다. 김정은이 만 8세가 되었을 때 김정일이 그를 후계자로 ‘내정’했기 때문에 김정은도 그의 아버지의 전례에 따라 현재 만 10세로 추정되는 김주애를 자신의 후계자로 내정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김정일이 이처럼 김정은을 조기에 자신의 후계자로 내정하고도 이를 연회에 참가한 소수의 핵심 측근들에게만 공개했기 때문에 황장엽 전 당중앙위원회 비서 같은 고위 간부조차 한국에 망명하기 전까지 김정은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같은 정보 부족 때문에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공식 결정’되어 그것이 2009년 초에 우리 사회에 알려지기 전까지 다수의 전문가는 김정일이 그의 ‘장남’ 김정남을 후계자로 내세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일부 전문가는 “김정일이 자신은 권력을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측근들에게 말했다”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같은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됐다. 

만약 김정일이 1992년 김정은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정’한 후 이를 황장엽 같은 고위급 간부들을 포함해 200명 정도 되는 북한의 당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에게까지만 공개했어도 북한 외부세계에서 장남 김정남이나 차남 김정철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억측이 오랫동안 난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외부세계에서 김정남에 대한 그 같은 과대평가가 없었다면, 김정은이 2017년 이복형인 김정남을 암살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김정은은 김정일의 비밀주의적 태도로 인해 ‘마음고생’과 많은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다. 김정은이 8세가 되었을 때 후계자로 ‘내정’되었다는 사실을 만약 외부세계가 일찍 알았다면,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직후 해외 전문가들이 그의 권력 장악력을 과소평가하면서 ‘장성택 중심의 군부집단지도체계’가 출범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억측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정일은 대중 앞에서 단 한 차례도 공개 연설을 하지 않았고, 그의 부인이 누구인지 방송과 언론을 통해 공개하지 않았다. 반면 김정은은 대중 앞에서 연설하기를 좋아하고, 권력을 승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의 부인 리설주를 곧바로 공개하는 등 아버지 김정일과는 명확하게 구별되는 정치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김정은으로서는 자신의 딸 김주애를 조기에 후계자로 ‘내정’해 공개하는 것이 실보다는 득이 더 많을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자신의 과거 경험에 비추어볼 때 김주애가 후계자로 내정된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후계 문제에 대해 근거 없는 억측이 발생할 소지가 줄어든다. 그리고 김주애가 일찍부터 중요한 정치행사에 참석해 제왕학을 습득한다면, 김정은이 갑자기 사망해 김주애가 젊은 나이에 권력을 승계하게 되더라도 좀 더 안정적으로 권력을 장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김정은이 1992년 김정일의 후계자로 ‘내정’되었지만, 김정일의 비밀주의적 태도 때문에 김정일이 2008년 뇌혈관계 이상 이후 권력승계를 서두르기 전까지 북한 지도부에서 김정은의 존재를 아는 간부들은 현철해 등 극소수에 불과했다. 바로 이 같은 과거 경험 때문에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을 반면교사 삼아 그가 ‘가장 사랑하는 자제’인 김주애를 후계자로 내정하고 이의 조기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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