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읽어야 할 책과 읽지 말아야 할 책
  • 최영미 작가·이미출판사 대표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3.10.21 07:05
  • 호수 1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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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그 자신이 읽은 것의 총체다. 사람은 그가 사귀는 친구에 의해, 그리고 그가 읽은 책에 의해 판별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짧은 인생에서 나와 생각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출신성분이 다르고 성격이 다른 천 명의 친구를 만나기는 힘들다. 그러나 내게 다른 세상을 열어주는 천 권의 책을 읽을 수는 있다. 우리는 종이 위에서 세계를 일주할 수 있다.

며칠 전에 홍대 앞의 어느 식당에서 내 책의 오랜 애독자를 만난 적이 있다. 히말라야를 등반할 만큼 용감하고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그녀는 내게 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나는 역사책을 좋아한다. 《삼국사기》 《몽골비사》 그리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각각 한 달은 걸려 읽어야 할 긴 책이지만 짧게 추천사를 적어보련다.

1. 《삼국사기》: 한국 사람이 쓴 책 중 가장 재미난 책!

2. 《몽골비사》: 서른 살 이후 내가 아마도 가장 여러 번 읽은 역사책.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2번 반을 아주 집중해서 읽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걸 발견해 두 번 읽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몇 년 전에 신문사에서 서평을 써달라고 해서 3번째 읽기를 시도했으나 원고료가 적다는 걸 알고 기고를 포기하면서 책장을 닫았다.

9세가 된 테무진을 사돈집에 맡기고 돌아서며 이수게이는 당부한다.

“사돈. 내 아들이 개한테 놀라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몽골비사》, 유원수 역주, 49쪽)

개를 무서워해, 개한테도 잘 놀라던 아이가 로마제국보다 두 배 넓은 영토를 정복하고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군사 지도자가 되었다. 어떻게 세계를 정복하려는 야망이 심어졌을까. 칭기스 카한의 진정한 개성이 궁금해 《몽골비사》를 읽었다. 《몽골비사》는 칭기스 카한(1162~1227)이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몽골의 왕족들에게 제국의 역사를 알려 교훈을 주려는 목적으로 쓰였다. 몽골어로 된 원본은 발견되지 않았고, 명대에 한자로 음역된 《원조비사》 12권이 전해진다.

선조들을 다룬 앞부분은 신화적인 요소가 가미되었지만, 비교적 사실에 충실하고 시적이면서 냉정한 문체, 디테일이 살아있는 뛰어난 묘사에 나는 매료되었다. 신랑과 함께 길을 가다 이수게이에게 납치당할 위기에 처하자 (훗날 칭기스 카한의 어머니가 될) 후엘룬은 남편에게 말한다. “당신은 살아만 있으면 숙녀와 귀부인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어요. 우선 목숨을 돌보도록 해요! 내 냄새를 맡으며 가요!”라고 소리치며 저고리를 벗어 신랑에게 던진다. 유교나 불교에 물들지 않은 원시적인 언어에 나는 반했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아시아 남성의 8%가 칭기스 카한의 후손이란다. 내 몸에 카한의 유전자가 있어 《몽골비사》가 더 매력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좋은 책만 권한다. “죽기 전에 읽어야 할 100권의 책” 어쩌구 하면서 좋은 책들을 추천한다. 나는 나쁜 책도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읽었던 엉터리 책, 나에게 가장 나쁜 영향을 주었던 이런 책은 피하세요.

자살한 사람들이 쓴 책을 읽지 말자. 나는 자살을 찬미하지 않는다. 살아서 싸워야지 왜 죽나? 생활이 어려워 죽는 것은 이해하고 동정하지만, 그 밖의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을 좋아할 수 없다. 내게 가장 나쁜 영향을 끼친 책은 전혜린의 산문집이었다. 특히 청소년들은 전혜린을 읽지 마라.

내가 역사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거짓이 아니라, 소설 같은 허구가 아니라 사실을 다루고 그래서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와 《몽골비사》 그리고 《일본서기》를 비슷한 시기에 읽으면 문화적·사회적 배경이 서로 다른 아시아 나라들의 역사를 비교해볼 수 있어 더 좋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br>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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